[박종섭 더봄] 우승보다 빛난 산체스의 양심 고백 ‘레전드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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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섭 더봄] 우승보다 빛난 산체스의 양심 고백 ‘레전드 품격’

여성경제신문 2026-02-20 1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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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이 끝난 후 서로 축하와 감사를 전하는 우승자와 준우승자. 결국 PBA는 두 명의  영웅을 배출했다. /PBA
결승전이 끝난 후 서로 축하와 감사를 전하는 우승자와 준우승자. 결국 PBA는 두 명의  영웅을 배출했다. /PBA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던 순간이었다.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2일 열린 2025-2026시즌 9차 투어 '웰컴저축은행 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전에서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접전을 벌이며 세트 스코어 3대 3 동점인 상황에서 마지막 7세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먼저 치고 나간 선수는 다니엘 산체스였다. 그는 4점을 치고 5점째를 올리는 순간 갑자기 심판에게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자리로 내려갔다. 11점이면 끝나는 마지막 세트에서 그의 실력으로 봐서는 퍼펙트 게임으로 이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중계진과 관객 모두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아해했다. 심지어 심판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산체스의 요청에 따라 비디오 판독을 진행했고, 그의 자백에 의해 무효 처리 판정이 나왔을 뿐이다.

그의 고백은 자신이 큐를 가까이 대고 예비 스트로크를 하다가 큐가 공에 닿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고백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양심선언이었다.

레전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다니엘 산체스의 경기 모습 /PBA
레전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다니엘 산체스의 경기 모습 /PBA

마지막 결승전 우승 상금은 무려 1억원이다. 8부 능선을 넘어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는 우승이 눈앞에 있었다. 우승 트로피와 상금 1억원이 눈에 어른거리는 가슴 떨리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했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양심이었다. 경기 후 산체스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비 스트로크 때 수구와 가깝게 큐를 맞댔는데 공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공을 치는 선수가 아닌 이상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큐가 공에 닿는 게 느껴졌고,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잠들기 전에 생각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파울로 이득을 취하고 싶지 않았기에 심판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레전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양심을 고백하는 것도 큰 용기다. 산체스는 당구의 품위를 끌어올린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PBA
양심을 고백하는 것도 큰 용기다. 산체스는 당구의 품위를 끌어올린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PBA

산체스는 누구인가? 한국 프로당구협회(PBA)에 이적하기 전 세계선수권 4회와 월드컵 15회 우승을 달성한 인물이다. '황제' 토브욘 브롬달(스웨덴)과 PBA를 먼저 정복한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그리고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와 함께 세계 3쿠션 4대 천왕으로 군림해 온 전설이다.

이번 일로 그가 왜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아니, 우승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는지 모른다. 비록 최종 결승전에서는 졌지만, 그에 대한 인상은 우승 이상이었다. 아니, 그것은 당구의 품격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마추어 선수들도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 보면 간혹 이런 상황을 겪는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앞으로 동네 당구 게임에서도 스스로 양심을 자백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당구가 얼마나 정직한 경기이며 신사적인 스포츠인지 그가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PBA 이적 후 첫 우승을 하며 기뻐하는 Q. 응우옌 /PBA
PBA 이적 후 첫 우승을 하며 기뻐하는 Q. 응우옌 /PBA

결국 공격권은 산체스에서 Q. 응우옌에게 넘어갔다. 경기는 끝난 것이 아니어서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을 넘겨받았지만, 다시 치열한 승부를 펼쳐야 하고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오직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산체스에게 공격권을 이어받은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경쟁자 응우옌은 곧바로 3점을 따내며 만회했고, 서로 공타를 주고받은 뒤 3이닝째 뱅크 샷 1개를 포함해 무려 8점을 몰아치며 경기를 끝냈다.

마지막 뒤돌리기에 성공한 응우옌은 두 손으로 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응우옌은 산체스에게 달려가 머리 숙여 인사했고, 스페인의 전설 산체스는 응우옌을 진심으로 안아주며 PBA 첫 우승을 축하해줬다.

응우옌은 2022~2023시즌 PBA 데뷔 이래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전까지는 2023~24시즌 9차 투어(크라운해태 PBA 챔피언십) 준우승이 개인 최고 성적이었다. 베트남 선수로선 2022~23시즌 5차 투어(하이원리조트 PBA 챔피언십) 마민껌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이다. 이번 우승으로 응우옌의 PBA 총상금은 1억9850만원으로 늘어났다.

웰컴저축은행 PBA챔피언십 2025-2026 시상식 모습 /PBA
웰컴저축은행 PBA챔피언십 2025-2026 시상식 모습 /PBA

우승자 응우옌 역시 “경기 도중 범한 파울을 스스로 알리는 모습을 보며 산체스 선수를 다시 한번 우러러보게 됐다”고 존경을 표했다. 결국 이번 경기는 승리한 응우옌은 물론, 졌지만 당구라는 스포츠의 품격을 지킨 두 명의 우승자를 배출한 셈이 되었다.

결승전을 보느라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승부였다. 도덕이 무너진 듯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러한 따뜻한 장면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감동을 준다.

여성경제신문 박종섭 은퇴생활 칼럼니스트 jsp1070@hanmail.net

박종섭 작가

금융권 실무와 대학 사회복지 강의를 거쳐 정년퇴직 후 국민연금공단 노후준비 민간전문강사로 활동했다. 교육 현장과 군부대, 기업 등에서 인성교육에 힘써 ‘대한민국 인성교육 대학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슬기로운 은퇴설계 지혜로운 재무설계> , <가슴 떨릴 때 go! 제주 한 달 살기> , <행복노트> 등이 있으며, 현재 은퇴설계 전문강사이자 칼럼니스트로서 후회 없는 제2의 인생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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