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미국 외식 문화를 상징해온 ‘초대형’ 메뉴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물가로 인한 소비 위축과 GLP-1 계열 체중 감량제 확산이 맞물리면서, 미국 식당들이 음식 중량을 줄인 메뉴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약 200개 매장을 둔 P.F. Chang's는 지난해 메인 메뉴에 ‘중간 크기’를 도입했다. KFC 역시 이달 애널리스트들에게 미국 내 약 4000개 매장에서 메뉴 크기 등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무제한 리필로 유명한 Olive Garden은 지난달부터 미국 내 900개 매장에서 기존 메뉴 7종의 작은 사이즈를 출시했고, 해산물 체인 Angry Crab Shack도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소형 바구니 형태의 점심 메뉴를 개발했다.
이 같은 변화는 생활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더 낮은 가격대 메뉴를 찾는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 기업 블랙박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외식 업계는 생활비 상승 여파로 5개월 연속 방문객과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최근 소고기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식재료·에너지·인건비 부담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체중 감량 주사 확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등이 출시한 약물은 포만감을 유도하는 호르몬을 활성화해 식사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싱크탱크 랜드는 미국인의 약 12%가 해당 약물을 사용 중인 것으로 추정했으며,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도 이용자들이 외식 시 주문량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라보뱅크 애널리스트 JP 프로사르는 “식당의 명확한 해법은 양을 줄이는 것”이라며 “양을 줄이면 가격을 낮춰 고객을 다시 유인할 수 있고, GLP-1 확산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용량 문화’는 20세기 산업화 이후 옥수수·밀·설탕·고기 가격 하락과 함께 자리 잡았다. 2024년 학술지 ‘푸드’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섭취량은 프랑스인보다 13%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양 왜곡’이 음식물 쓰레기 증가와 비만율 상승을 초래했다고 지적해왔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부 장관은 지난달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 정책의 일환으로 음식 섭취량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비자 인식도 변화하는 분위기다. 2024년 미국 외식산업협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더 적은 양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받길 원한다”고 답했다.
뉴욕의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투치 설립자 맥시 투치는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식욕이 억제된 상태에서 과식이나 음식 낭비를 유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식당은 지난해 비만 치료제 이용자를 겨냥해 이른바 ‘오젬픽 메뉴’를 요청 시 제공하기 시작했다. 기존 3개를 제공하던 미트볼을 1개만 내놓고, 가격도 3분의 1 수준으로 책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투치는 여전히 푸짐한 양의 미국식 이탈리아 요리를 찾는 고객층도 적지 않다며, 미국 외식 문화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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