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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인데…거래 방법이 없다
19일 이데일리가 단독 입수한 법안에 따르면 이번 초안은 디지털자산을 자본시장법상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인정하고 이를 연계한 파생상품 거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동시에 거래소·수탁업 인가제 도입, 불공정거래 처벌 강화 등 행위 규율은 금융회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표면적으로는 디지털자산을 금융과 유사한 감독 체계 안에 두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문제는 파생상품 시장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청산·결제 구조에 대한 규정이 초안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상 제정 법안의 초안 단계에서는 기본 구조를 법률에 명시하고, 구체적인 요건이나 기술적 세부 사항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초안에는 파생 청산 구조나 집합투자 인프라에 대한 근거 조항이나 위임 규정이 담기지 않았다.
파생상품은 거래 허용 조문만으로는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중앙청산소(CCP·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결제를 보증하고 복잡한 거래를 상계해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를 통한 다자간 네팅(netting·복수의 매수·매도 계약을 일일이 총액 결제하지 않고 상계 후 순액만 결제하는 구조)과 증거금·담보 체계가 전제돼야만 디폴트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안은 자본시장법에 전면 편입하지 않는 별도 법률 구조를 택한 만큼, 파생상품을 허용할 경우 청산 인프라도 독자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자산 전용 중앙청산소를 별도로 구축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높지 않다. 기존 한국거래소(KRX) 파생상품 포지션과의 손익 통산이 불가능해질 경우 증거금 부담이 이중으로 발생할 수 있고, 시장이 분절되면서 리스크 관리 효율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청산·결제 인프라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실질적인 운용 단계에서는 기존 자본시장 인프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파생 리스크 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국제 표준 거래주체 식별코드(LEI) 역시 국내에서는 한국예탁결제원이 관리하고 있어 감독·리스크 관리 체계 측면에서 예탁원 시스템과의 연계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 펀드 부문도 공백…“감독 권한 범위 설정 필수적”
집합투자(펀드) 부문에서도 유사한 공백이 지적된다. 자본시장법은 집합투자업을 별도의 업권으로 규정하고 자금 모집·운용·판매·배정 절차를 포괄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특히 장 종료 후 체결 물량을 펀드별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후배정을 방지하기 위해 주문·배정 기록을 남기고 변경을 제한하는 인프라가 전제돼 있다. 하지만 이번 초안에는 집합투자업에 대한 명확한 업권 정의나 운용·판매·주문배정·사후배정 방지에 관한 별도 규정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일반 펀드에 디지털자산을 편입할 경우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디지털자산법에 별도의 집합운용업을 신설하거나 혹은 규정을 두지 않을 경우 규제 차익이나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현물 ETF 승인 등을 기대하는 시장의 요구와 달리, 법안이 자산운용 산업의 기초적인 구조조차 확립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세부 인프라는 시행령이나 향후 단계적 입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법률에 기본 범위와 감독 권한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령으로 새로운 업권이나 시장 구조를 창설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한 관계자는 “통상 입법 구조는 법률에서 업권 정의와 감독 권한의 범위를 설정하고, 세부 요건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방식”이라며 “집합투자나 파생 청산 구조에 대한 정의와 위임 근거 자체가 법률 단계에서 제시되지 않을 경우 단순한 세부 미비를 넘어 설계 단계의 공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업계에선 디지털자산을 금융처럼 규율하겠다는 정책 방향과 실제 시장 인프라 설계 사이의 간극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를 비롯한 기존 자본시장 인프라와의 연계 구조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독자 규율을 도입할 경우, 규제 조항과 시장 작동 방식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안에 정통한 업계 한 관계자는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포섭하는 과정에서 핵심은 규제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정합성”이라며 “인가·처벌 조항을 앞세운 금융화가 아니라, 청산·결제·운용 인프라까지 포괄하는 체계적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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