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전북 전주시는 예로부터 부채의 고장으로 불렸다. 질 좋은 한지와 대나무 산지라는 자연적 조건 위에 조선시대 마지막 선자청이 설치되며 국가 차원의 제작 체계를 갖췄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형태가 정착된 합죽선은 조선시대에 기술과 장식이 정교화되며 궁중과 사대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전주는 그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합죽선은 단순한 여름 용구가 아니었다. 대나무를 얇게 쪼개 맞붙인 살과 한지를 덧댄 구조와 접고 펴는 동작에서 완성되는 반원형의 선은 기능과 조형이 결합된 결과다. 선비에게는 신분과 교양을 드러내는 상징이었고 서화가 더해진 부채는 회화와 공예가 결합된 움직이는 예술작품이었다. 일부는 부장품으로 사용될 만큼 귀하게 여겨져 현존 유물은 많지 않다. 합죽선은 한국 전통 미학의 선과 여백, 절제의 미를 응축한 공예품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전통의 맥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부채박물관이다. 한옥 골목 사이에 자리한 이 공간은 조선시대 합죽선과 단선(방구부채), 접부채를 비롯해 근대 유물까지 아우르며 부채의 전성기와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1950~1980년대 합죽선의 변화는 시대의 단면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전통 장인 기반이 약화되고 저가 일본 부채가 유입되면서 제작 환경은 침체됐다. 1950년대 이후 수요가 회복되며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일대에서 분업 체계가 형성됐다. 이 시기 합죽선은 길이 24~26cm 내외의 소형이 주류를 이뤘고 몸통 곡선은 단순화됐다. 선두에는 소 다리뼈가 사용됐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양은과 백동이 병용됐다.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가 재료와 형태에 반영된 결과다.
부채박물관은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이었던 고(故) 엄주원 장인의 뜻을 계기로 설립됐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보유자인 엄재수 관장이 운영을 맡아 전통 합죽선 제작 기법의 계승과 교육,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부채의 실용적 기능은 줄었지만 합죽선은 전통 공연과 의례, 예술 창작에서 여전히 활용되며 한국적 조형미를 상징하는 매개로 남아 있다. 박물관은 전시뿐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접부채 꾸미기, 합죽선 제작 체험, 오색칠보 등 다양한 전통공예 체험을 통해 전통 부채를 직접 경험하고 감상할 수 있다.
뉴스컬처 최진승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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