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조정안이 제시돼도 사업자가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현행 분쟁조정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21~2025년) 분쟁조정 처리 건수는 2021년 4229건에서 2025년 8682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조정 성립은 1795건에서 2577건으로 증가했지만, 불성립 역시 847건에서 1162건으로 확대됐다.
불성립 대부분은 사업자 거부에서 비롯됐다. 사업자 거부로 인한 불성립은 2021년 739건에서 2025년 1081건으로 증가했으며, 2025년 기준 전체 불성립 사건의 약 93%가 이에 해당한다. 조정안이 제시되더라도 강제력이 없어 사업자가 수용하지 않으면 피해 구제가 중단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의미다.
분쟁 증가의 중심에는 플랫폼이 있다. 최근 5년 접수 건수는 네이버 1837건, 쿠팡 746건, 11번가 119건으로 3사 합계 2532건에 달했다. 쿠팡은 2021년 74건에서 2025년 307건으로 4년 만에 4배 이상 늘었다. 네이버 역시 같은 기간 197건에서 717건으로 급증했고, 11번가도 14건에서 40건으로 늘었다.
분쟁 범위는 국내 플랫폼을 넘어 해외 직구 시장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2024년부터 분쟁조정이 접수되기 시작해 2025년 한 해에만 87건이 접수됐고, 테무도 2025년 4건이 접수된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자 거부 사례를 기업별로 보면 네이버가 13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우정종합건설 65건, KT 37건, 애플코리아 34건, SK텔레콤 31건 순이었다. SK텔레콤은 개인정보 유출 관련 집단분쟁조정 사건에서 조정안을 거부해 제도의 실효성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문제의 본질은 제도 설계에 있다. 현재 분쟁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형’ 구조여서 사업자가 거부하더라도 실질적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정보와 입증 능력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고, 조정이 결렬되면 소송 외에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분쟁이 늘어도 해결률이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다.
플랫폼 경제 확장으로 거래 구조가 복잡해진 점도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키우고 있다. 중개·입점·물류가 결합된 플랫폼 구조에서는 책임 주체가 분산돼 있고, 해외 C커머스까지 시장에 진입하면서 관할권과 집행 문제까지 동시에 발생한다. 기존 오프라인 거래 중심으로 설계된 분쟁조정 체계가 디지털 거래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적으로는 ‘수용률’과 ‘집행력’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우선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조정안을 반복적으로 거부할 경우 과태료나 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의 책임 장치가 거론된다. 분쟁조정 결과를 민사소송에서 유력한 증거로 인정하는 제도적 연계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플랫폼 특성을 반영한 전문 분쟁조정 트랙을 별도로 운영하고, 집단분쟁조정 범위를 확대해 동일 유형 피해를 한 번에 처리하는 구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플랫폼에 대해서는 국내 소비자 보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관할 기준을 명확히 하고, 분쟁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해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진다.
김남근 의원은 “분쟁조정 건수는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도 불성립의 대부분이 사업자 거부라는 점은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며 “플랫폼 분쟁이 급증하고 C커머스까지 가세한 상황에서 조정 결정의 실효성을 높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어 “조정 결정을 거부해도 실질적 부담이 크지 않은 구조를 방치하면 소비자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수용률을 높일 유인 체계와 운영 역량 보강 필요성을 강조했다.
분쟁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제도도 진화하지 않으면, 조정은 ‘절차’만 남고 해결 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플랫폼 중심 소비 환경으로 이동한 시장 구조가 이제 분쟁 해결 체계의 전면적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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