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인공지능(AI) 기능이 노트북과 PC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 체감 가치는 가격 상승폭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신학기를 앞두고 이른바 ‘칩플레이션’ 영향으로 노트북과 스마트폰, PC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북6는 공식 홈페이지 기준 울트라가 463만원, 프로가 351만원부터다. LG전자의 그램 프로 AI는 321만원에 출시됐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컴퓨터 소비자물가지수는 95.42를 기록해 10개월 연속 상승했다. AI 산업 호황으로 AI 전용 칩 가격이 급등한 데다 일반 PC·모바일용 D램보다 AI 연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이 우선 배정되면서 범용 D램마저 품귀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LG전자가 최신 노트북 제품군 네이밍 전반에 ‘AI’를 붙이는 등 AI를 활용한 프리미엄 마케팅이 강화되는 것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많은 소비자들이 이런 기능이 실제 사용 환경에서 과도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7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서카나(Circana)는 소비자 상당수가 AI 없이도 기기가 자신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한다고 느낀다고 답변했다. 18세 이상 미국 소비자의 86%가 스마트폰 및 기타 기술 기기에 AI가 탑재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35%는 자신의 기기에 AI가 탑재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AI 기능에 반대한 소비자 중 3분의 2는 자신의 기기로 충분히 원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자신의 기기에 AI가 탑재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의 59%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우려했다. 43%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카나는 AI는 핵심적인 의사 결정 요인이라기보다 있으면 좋은 기능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 AI 기능 뺀 중고 PC 확보 열기...가격 회피용 소비 확산
다수의 소비자가 AI 기능이 실제 사용 환경에서 과도하거나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지만 기업들은 AI에 특수성을 부여하며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고 디지털 기기 거래가 늘고 조립형 PC 수요가 증가하는 등 가격 회피형 소비 패턴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구형 PC를 분해해 램을 판매하거나 중고 물량 확보 경쟁이 붙는 이른바 ‘램테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새학기를 앞둔 홍익대학교 인근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중고 노트북과 PC 부품 매물이 줄이어 게시됐다. 작년 3분기 기준 D램 가격은 전년 대비 171.8% 상승해 금값 상승률을 크게 웃돈 상태다.
근처 대형 전자매장에서는 직원이 “신형 노트북 가격이 크게 올라 전작이 더 인기가 많다”며 “전자기업 홈페이지 내 노트북 베스트 랭킹을 보면 작년형 제품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전략 조정에 나서고 있다.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미국 PC 제조사 델이 소비자들이 AI 기능 때문에 PC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라며 2026년 출시 예정 제품들이 AI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방향이 아닐 것이라고 보도했다. 케빈 테르윌리거 델 제품 책임자는 “소비자 관점에서 확인된 것은 구매 결정을 AI 기준으로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AI가 오히려 제품 이해를 복잡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AI 기능, 관심 없는 건 아니다
AI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낮은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카나에 따르면 AI에 대해 알고 있는 소비자 중 65%는 조사 대상 기기 유형 가운데 최소 하나 이상에 AI 기능이 탑재되는 것에 관심을 보였고 가장 많이 고려된 기기는 스마트폰이었다. 이 수치는 18~24세 소비자층에서는 82%까지 상승했다.
AI PC 확장세도 예견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 PC가 2025년 말까지 전 세계 PC 시장의 31%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 세계 AI PC 출하량은 약 778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서카나는 “AI 관련 기술이 클라우드와 온디바이스 측면에서 모두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AI 기능이 현재 이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가치와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전자매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AI 기능 경쟁이 과열되면서 제품 성능이 전반적으로 상향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 기준에서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격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적정 사양의 보급형 제품을 확대하는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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