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인물이 60여 년 만에 이적행위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법원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오랜 억울함이 뒤늦게 풀렸다.
19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백상빈 부장판사)는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고(故) 송병채 씨(1909년생·1968년 사망)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형 확정으로부터 65년, 고인이 세상을 뜬 지로는 58년 만의 일이다.
독립운동가 고 송병채 씨 / 공훈전자사료관 캡처
송씨는 사회대중당 전북 이리시당(현 익산시) 창당준비위원으로 활동하던 1961년 4월, 이리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중립 통일론과 반공법 폐지를 주제로 강연회를 주선·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수사기관은 송씨가 통일사회당 간부들을 초청해 정부의 반공 정책에 반하는 발언을 유도했다고 봤다. 또한 이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반국가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혁명재판소는 반국가 선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구속영장도 없이 수사기관에 연행된 채 재판을 받은 것이었다.
재심 재판부는 강연의 핵심 주제였던 '영세중립화 통일론'이 이적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연회의 주제였던 영세 중립화통일론은 '동서냉전의 희생에서 해방된 정치·군사적 완충지대를 구축하자'는 내용인데, 이는 미국·소련의 협조를 전제로 영세중립국 형태의 통일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이러한 주장은 북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제창한 게 아니고 당시 북한이 주장했던 연방제 통일방안과도 동일하거나 유사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4·19 혁명 이후 평화통일 논의가 사회 각계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지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도 판단 근거로 언급됐다.증거 부재도 무죄 선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기록은 검찰청, 국가기록원, 국방부 감찰단 등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 유죄의 증거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며 "결국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강연회를 주선하고 관련 발언이 이뤄지도록 했더라도 이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범위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법원 이미지. 기사와 무관. / 뉴스1
재심을 이끌어낸 것은 송씨의 손자였다. 고인이 영장 없이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법원은 작년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이번 선고로 마무리됐다.
고(故) 송병채 씨는 단순한 민주화 운동가가 아닌 검증된 독립운동가였다. 1926년 순종 황제 승하를 계기로 6·10 만세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자, 그는 전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이끌어 동맹휴학을 주도하며 일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후에도 그는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 의식을 바탕으로 비밀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해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약 4년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항일 투사로서 국가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 수십 년 뒤 이적행위자로 몰렸다는 사실이 이번 재심을 계기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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