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권 가계대출의 총량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서민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지난해(1.8%)보다 낮춰 잡으면서도, 중·저신용자를 위한 민간 중금리 대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어서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대출을 억제하되 취약 차주의 자금줄은 터주겠다는 ‘투 트랙’ 전략이지만, 시장에서는 정책 일관성 훼손과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금리 대출’ 총량 규제 빗장 푸나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 주 발표할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지난해 실적보다 하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지난해 일부 은행이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초과해 대출을 취급한 만큼, 올해 관리 강도를 한층 끌어올리려는 의지다.
변수는 ‘민간 중금리 대출’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상품을 가계대출 총량 규제 실적 산정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고강도 대출 규제로 인해 자금이 절실한 중·저신용자까지 대출 절벽에 내몰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당국은 전체 대출 실적에서 중금리 대출을 어느 정도 비율로 제외할지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이다.
이 같은 검토 배경에는 지난해 거둔 가계부채 억제 성과가 자리한다. 지난해 전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년 대비 37조6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2020년 증가 폭(41조6000억원)과 비교하면 뚜렷한 감소세다. 정부는 이러한 수치적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가계부채의 양적 관리’와 ‘포용금융 확대’라는 목표를 모두 잡기 위한 포석이다.
◇“엇갈린 시그널”…정책 혼선·풍선효과 경계
은행권은 정부의 포용금융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상충된 정책 신호가 시장에 줄 혼선을 우려한다. 대출 총량제는 시중 자금 공급을 원천적으로 통제해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는 핵심 수단이다. 특정 상품을 예외로 두면 규제의 체감 강도가 낮아져 전체적인 부채 관리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안이 나와야 알겠지만, 총량 규제의 예외 범위를 넓히는 것은 자칫 금융소비자에게 ‘대출 규제 완화’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업 현장에서는 포트폴리오 왜곡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동안 은행들은 총량 관리에 맞춰 규제 부담이 적은 상품 위주로 영업을 해왔다. 만약 중금리 대출이 실적 산정에서 빠지면 은행들이 해당 상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풍선효과로 상호금융권 대출이 늘어난 것처럼, 은행 영업 비중이 중금리 대출로 급격히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10%대 금리, 포용금융 해법인가…“정교한 설계 시급”
실질적인 차주 보호 효과에 대한 의문부호도 달린다. 중금리 대출 금리가 통상 10%대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공급 확대가 오히려 취약 차주의 이자 부담을 가중할 수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금리 상품 공급을 늘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포용금융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건전성 악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는 필연적으로 연체율 상승 위험을 동반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0.44%로 전년 동기 대비 0.0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9월(0.39%)부터 3개월 연속 오름세다.
금융당국은 클 틀에서의 ‘총량 관리 유지’ 입장이지만, 예외 적용의 범위와 기준에 따라 정책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가계부채 억제와 서민 금융 지원이라는 상충하는 목표 사이에서, 이달 말 발표될 대책이 얼마나 정교한 ‘핀셋 해법’을 제시할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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