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질 뻔한 순간을 버텨낸 중심과 넘어졌던 기억을 지워낸 스퍼트. 그 두 장면이 겹치며 ‘금빛 피니시’가 완성됐다.
성남시청의 최민정과 김길리가 각자의 상처와 시간을 딛고, 19일(한국시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베테랑의 품격과 막내의 투혼이 맞물리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다시 한 번 정상의 중심에 섰다.
■ 기록을 넘어 전설로…최민정, 시간을 지배하다
먼저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계보를 잇는 상징적 존재, 최민정의 이름은 이제 ‘전설’이라는 수식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전이경, 진선유, 박승희로 이어진 에이스의 흐름 속에서 그는 2010년대 이후 세계 무대를 지배해 온 중심축이었다.
2014년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2015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출전 만에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도 정상을 지키며 일찌감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단·중·장거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능력, 레이스 후반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과 아웃코스 공략 능력은 그의 상징이 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관왕,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3개 메달, 세계선수권 4관왕 등 굵직한 성과는 이미 한 시대를 증명한다.
그러나 정점에 오래 머무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2023-2024시즌 태극마크를 내려놓고 1년간 국제대회를 쉬는 결단을 택했다.
장비 교체와 체력 보강, 레이스 패턴 재정비에 집중한 선택이었다. 복귀 무대였던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3관왕은 준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혼성 계주와 개인 종목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여자 3천m 계주 결승에서 그는 다시 팀의 중심으로 섰다.
경기 막판 네덜란드 선수가 넘어지는 혼전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흐름을 지켜냈고, 남은 바퀴 수를 계산한 과감한 스퍼트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결국 한국은 역전에 성공했고, 그는 올림픽 통산 6번째 메달을 수집하며 한국 선수 최다 메달 타이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눈물에서 금빛으로…김길리, 부활의 인코스
이 금메달의 마침표는 막내 김길리가 찍었다. 김길리에게 이번 올림픽은 ‘부활’의 무대였다.
2025 하얼빈 아시안게임 계주 결승에서 충돌로 메달을 놓쳤던 아픔, 이번 대회 혼성 계주 준결승에서의 불운한 사고는 어린 에이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스스로의 과실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언니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3천m 계주 결승 마지막 주자로 나선 그는 두 바퀴를 남기고 과감히 인코스를 파고들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빈틈을 찌르는 판단, 몸을 낮춘 채 균형을 끝까지 지켜낸 집중력은 인상적이었다.
선두를 탈환한 뒤 흔들림 없이 결승선을 통과하며 그는 동메달을 따냈던 1천m에 이어 이번 대회 멀티 메달리스트로 올라섰다.
한 명은 커리어의 정점을 확장했고, 다른 한 명은 눈물의 기억을 금빛으로 덮어썼다. 성남시청 ‘멀티 메달 듀오’의 탄생은 단순한 메달 이상의 의미를 남긴다.
세대 교체와 세대 계승이 동시에 이뤄진 상징적 장면이었고,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여전히 세계 최정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입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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