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이 시장의 단기 변수로 작동하고 있지만 실제 산업 흐름은 이미 투자 일정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LNG 수출 확대 정책과 함께 연간 950만톤 규모의 Commonwealth LNG와 1320만톤 규모 Delfin FLNG 프로젝트의 최종투자결정(FID)이 임박한 상태로, 향후 1~2년 내 관련 설비 발주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시장이 가격 사이클이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 집행 일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이번 국면의 특징이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전력 설비 투자가 이 흐름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과 가스터빈 중심으로 글로벌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원전 확대 정책과 맞물려 장기 수주 기반이 강화되는 흐름이다. 실제 발전 설비 사업은 수주 이후 공사 기간이 길어 매출이 수년에 걸쳐 인식되는 특징이 있어 단기 업황보다 프로젝트 잔고가 실적을 결정하는 구조가 뚜렷하다.
전력 CAPEX 확대는 통상 LNG 액화 설비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망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저 전원을 보완할 가스 발전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액화·수출 터미널 증설로 연결된다. 이 구간에서 SNT에너지는 LNG 프로젝트 밸류체인 중 EPC 후반부에 위치한 기자재 공급사로, 열교환기와 HRSG 납품 시점이 매출 인식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프로젝트 진행률에 따라 수주잔고가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가 빠르고, 단가가 높은 플랜트 공정 비중이 늘어날수록 영업 레버리지가 확대되는 구조다. 특히 LNG 터미널 투자는 장기 오프테이크 계약을 전제로 FID가 이뤄지기 때문에, 가격 변동보다 프로젝트 집행 여부가 실적 변수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설비 사이클 민감도가 높다.
조선은 이 투자 흐름의 마지막 단계에서 움직인다. LNG 액화 설비가 증설되면 장기적으로 LNG 물동량이 증가하고, 이는 운반선 발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FID 이후 약 12~24개월의 시차를 두고 LNG선 발주가 나타나는데, 현재 시장은 설비 투자 확대가 선박 발주로 전이되는 초기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HD현대는 대형 LNG선 건조 능력과 생산 캐파를 기반으로 물량 확대 국면에서 가장 먼저 수혜가 나타나는 구조이고, 한화오션은 특수선과 해양 방산 포트폴리오를 통해 에너지 물류뿐 아니라 해양 안보 수요까지 동시에 노출돼 있다.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과 해양플랜트 비중이 높아 설비 투자 확대가 장기적으로 매출로 반영되는 후행 수혜형 구조다. 세 회사는 동일한 조선 산업에 속하지만 발주 민감도와 매출 인식 시점이 서로 달라 사이클 반응 속도에 차이가 나타난다.
이 흐름에 미국 정책이 실질적인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미국은 해양행동계획(AMAP)을 통해 조선소 현대화와 금융 지원, 인력 양성을 포함한 산업 재건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동시에, 조선 역량이 회복되기 전까지 초기 선박을 동맹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브리지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호 산업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수출 확대와 해양 물류망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공급망 전략으로, LNG 수출 인프라 확대 정책과 맞물리면서 장기적으로 글로벌 선박 발주 지리 구조를 재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핵심 변수는 유가 자체가 아니라 투자 집행 여부다. LNG 프로젝트는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 환경에서 내부수익률(IRR)이 확보되면 장기 판매 계약을 기반으로 투자 결정이 내려지고, 이후에는 가격 변동과 관계없이 설비와 선박 발주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가 먼저 나타나고 LNG 액화 설비 증설이 뒤따르며, 이후 운송 수요 증가가 선박 발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되는 이유다.
이 투자 흐름 속에서 기업별로 수익이 발생하는 구간은 뚜렷하게 구분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과 가스터빈 중심의 전력 설비 수주를 기반으로 장기 공정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로, 프로젝트 착수 이후 수년에 걸쳐 매출과 현금 흐름이 인식되는 안정형 포트폴리오를 갖는다. SNT에너지는 LNG 액화 및 발전 프로젝트의 EPC 후반부 공정에 투입되는 핵심 기자재 공급사로, 공정 진행률 상승 구간에서 매출이 집중되고 고부가 프로젝트 비중이 높아질수록 영업 레버리지가 확대되는 구조다. 반면 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조선사는 LNG 생산 능력 확대 이후 증가하는 물동량을 기반으로 선박 발주가 뒤따르는 후행 수요 산업으로, 설비 투자와 물동량 증가가 실적으로 전이되는 시차가 존재한다.
이번 사이클의 핵심은 단순한 수요 회복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 투자 순서 자체가 고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유가 상승이 곧 설비 투자와 선박 발주 증가로 이어졌지만, 현재는 정책과 장기 계약이 먼저 투자 결정을 이끌고 이후 가격이 따라오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LNG 수출 확대와 전력 인프라 투자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발전 설비 → 액화 설비 → 운송 선박으로 이어지는 발주 시차가 명확해졌고, 기업 실적 역시 이 일정에 맞춰 순차적으로 반영되는 흐름이다.
이 때문에 산업의 변동성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유가 급등락에 따라 실적이 흔들리기보다, 프로젝트 착공과 집행 속도가 실적을 결정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특히 LNG 설비 투자는 장기 오프테이크 계약을 기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단 투자 결정이 내려지면 가격 변동과 무관하게 발주와 매출 인식이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장은 원자재 가격 중심의 경기 사이클에서 인프라 투자 일정 중심의 장기 사이클로 이동하는 전환 구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 해양 행동계획을 조선업 재건을 위한 종합 전략으로 평가하며 국내 조선업에 모멘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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