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한항공(003490)이 위성 탑재용 대형 안테나 전개 시스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하나의 연구개발 성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그동안 발사체와 위성 플랫폼 확보에 집중돼 온 국내 우주 산업이 이제 위성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구조물 기술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위성 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궤도에 올리는 능력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궤도 위에서 어떤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지가 기술력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한항공이 이번에 확보한 전개 시스템은 그 중심에 있는 기술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1월 전라북도 전주 캠틱종합기술원에서 5m급 위성 안테나 전개 시스템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발사체 내부에 접힌 상태로 수납된 안테나가 목표 궤도 환경을 가정한 조건에서 정해진 형상으로 정확하게 펼쳐지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시험 결과 전개 메커니즘은 설계대로 정상 작동했으며, 반복 작동 과정에서도 구조적 간섭 없이 안정적인 형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대한항공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전개 메커니즘의 신뢰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의미가 크다.
시험에 참가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대한항공
대형 안테나 전개 기술은 위성 산업에서 가장 까다로운 영역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발사 과정에서는 제한된 공간에 맞춰 구조물을 접어야 하고, 궤도 진입 이후에는 수 미터 크기의 정밀 구조물을 오차 없이 펼쳐야 한다.
특히 대형 안테나는 △고해상도 지구 관측 △군사 정찰 및 감시 △위성 통신 신호 송수신 △6G 기반 차세대 통신 인프라 구축 등 위성의 실질적인 임무 수행 능력을 결정하는 핵심 구성 요소다. 전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오차는 신호 수신 성능과 관측 정확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는 위성 전체의 활용도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안테나 전개 기술은 위성의 구조적 완성도를 넘어 위성의 전략적 가치를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기술의 중요성은 글로벌 우주 산업의 경쟁 구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위성 구조물과 전개 시스템 분야는 미국과 유럽의 일부 항공우주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위성 본체를 제작할 수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핵심 구조물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외부 공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기술 자립 측면에서 한계를 의미하며, 동시에 산업 경쟁력 확보에도 제약으로 작용한다.
대한항공이 독자 설계 기반의 전개 시스템 시험에 성공했다는 점은 국내 우주 산업이 이런 기술 의존 구조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한항공의 이번 성과는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은 항공 운송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랜 기간 항공기 구조물 제작과 정비 사업을 병행해 온 항공우주 제조 기업이기도 하다.
군용기와 민항기의 주요 구조물을 제작하며 축적한 초정밀 설계와 경량 구조 기술은 위성 구조물 개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영역이다. 항공기 구조물과 위성 구조물은 극한 환경에서 장기간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대한항공이 보유한 제조 기술 기반은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글로벌 항공우주 산업 전반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세계 주요 항공우주 기업들은 항공기 제조를 넘어 △위성 △발사체 △우주 인프라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위성 기반 통신과 지구 관측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구조물과 탑재 시스템 기술의 전략적 가치가 크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 네트워크 구축 경쟁이 심화될수록 위성 자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구조물 기술의 중요성도 함께 증가한다. 대한항공의 전개 시스템 개발 역시 이런 산업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의 관점에서도 이번 기술 확보는 의미가 크다. 고해상도 지구 관측 위성과 차세대 위성 통신 시스템은 국가 안보와 정보 수집 능력과 직결된다. 위성 성능의 핵심 요소를 국내 기술로 구현할 수 있을 경우 외부 기술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운용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대한항공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와 협력해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전략적 필요성과 무관하지 않다.
향후 대한항공의 역할은 위성 구조물 개발을 넘어 우주 인프라 공급 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전개 시스템 기술이 축적될 경우 보다 대형화된 구조물 개발과 다양한 위성 플랫폼 적용이 가능해진다. 이는 위성 산업생태계 내에서 대한항공의 위상을 구조물 제작 협력업체 수준에서 핵심 기술 공급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한항공이 이번에 확보한 기술은 아직 출발점에 있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항공 운송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항공우주 제조와 우주 인프라 기술을 함께 확보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위성의 성능을 결정하는 구조물을 직접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은 기업의 기술적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소다.
대한항공이 펼친 것은 하나의 안테나였지만, 그 기술이 향하는 지점은 한국 우주산업의 경쟁력 구조 전체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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