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HBM을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메모리 시장이 새로운 분기점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기업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 속에서도 중국의 가격·물량 전략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경쟁의 초점은 공정 세대를 넘어 산업 전략으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이번 ‘중국 메모리 공세’ 기획을 통해 HBM 경쟁 구조와 향방을 3회에 걸쳐 분석한다 <편집자주>편집자주>
HBM4 양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메모리 시장의 승부처가 변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HBM4 이후의 진짜 전쟁은 메모리 공정이 아니라 ‘패키징’에서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D램 세대를 얼마나 먼저 전환하느냐보다 칩을 얼마나 정밀하게 적층하고 안정적으로 양산하느냐가 성능과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는 구조다.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TSV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단순 적층만으로는 성능 향상 폭을 키우기 어려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칩과 칩을 직접 접합하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차세대 HBM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 TSV 한계 넘는 하이브리드 본딩…패키징이 성능 좌우
하이브리드 본딩은 미세 범프 없이 구리 배선을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접합 간격을 줄여 신호 지연을 최소화하고 전력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 다만 나노 단위 정렬 오차를 관리해야 하고 접합 수율을 안정화하는데 상당한 공정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이 영역이 단기간 설비 투자만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고 본다.
또 다른 변수는 GPU와의 통합 패키징 구조다. 현재 엔비디아 AI 칩에 적용되는 TSMC의 CoWoS 공정은 수요 급증으로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고성능 GPU와 HBM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과정에서 인터포저 생산 능력이 제한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메모리 성능이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패키징 용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양산 확대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4 이후 경쟁은 D램 세대가 아니라 패키징 완성도 싸움”이라며 “하이브리드 본딩과 대면적 인터포저 기술, 고객 인증 사이클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하느냐가 시장 지배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 중국이 약한 지점 '장비·수율 데이터·인증 사이클'
패키징은 단순히 칩을 붙이는 공정이 아니다. 장비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는 글로벌 소수 업체가 공급하고 있으며 공정 노하우와 장비 최적화 경험이 누적돼야 수율이 올라간다. 안정적 양산 경험을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 업체들이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는 ▲첨단 패키징 장비 확보 ▲장기간 축적된 공정 수율 데이터 ▲글로벌 GPU 고객사 인증 경험이 꼽힌다. HBM은 단순 메모리 제품이 아니라 GPU와 함께 설계·검증되는 생태계 산업이기 때문이다. 고객사 테스트를 통과하고 양산 안정성을 입증해야 비로소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가격과 물량 전략으로 하단 시장을 공략하더라도 하이브리드 본딩과 통합 패키징 영역에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패키징 공정은 실패 비용이 크고 고객 신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HBM4 이후의 승부는 ‘칩을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칩을 얼마나 정밀하게 붙이고 안정적으로 양산하느냐’에서 갈릴 전망이다. 공정 데이터와 장비 생태계, 고객 인증 경험이 축적된 기업만이 고성능 AI 시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경쟁은 더 이상 세대 경쟁이 아니다”며 “보이지 않는 공정 데이터와 패키징 기술, 장비 생태계가 얽힌 구조적 전쟁”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과 물량으로 단기 시장을 흔들 수는 있어도 생태계 장벽을 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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