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도시/미학 지도교수
경희대학교 창업학 지도교수(former)
(주)한진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동’이 아니라 ‘구조’다. 이 기업은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정확하게 연결되는 방식을 선택해온 조직이다. MBTI로 표현하자면 (주)한진은 ISTJ형 기업에 가깝다. 검증된 시스템, 명확한 책임 구조,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안정성을 중시한다. 한진의 성장성은 새로움을 좇는 데 있지 않고, 잘하는 것을 더 정교하게 설계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기업의 경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배 구조 자체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한진의 최대 주주는 (주)한진칼이며, 이 지주회사의 대표는 조원태회장이다.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진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연결되는 방식은 마치 촘촘하게 설계된 조직 디자인과 같다. 각 계열사는 독립적으로 기능하지만, 전체 구조 안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움직인다. 이는 단순한 소유 구조가 아니라, 책임과 의사결정의 방향을 명확히 하는 경영 설계다.
이러한 구조적 경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은 헨리 민츠버그의 『조직의 구조화(The Structuring of Organizations)』다. 민츠버그는 조직의 성패는 전략보다 구조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특히 복잡한 조직일수록 역할과 권한, 조정 메커니즘이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한진과 한진칼의 관계는 이 이론을 현실에서 보여준다. 지주회사가 전략적 방향과 자본 구조를 관리하고, (주)한진은 물류라는 핵심 기능에 집중하는 분업 구조는 조직 설계의 교과서에 가깝다.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구조는 경영 교육의 중요한 사례다. 많은 기업이 리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반면, 한진그룹은 시스템을 통해 리더십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인재가 바뀌어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든다. 현장 중심의 물류 교육, 안전과 표준을 중시하는 내부 학습 체계는 조직 구성원 모두가 같은 지도를 공유하도록 만든다. 경영은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조직의 학습 능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산업적 관점에서 (주)한진의 성장성은 물류 산업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물류는 속도의 산업이기 이전에 신뢰의 산업이다. 항공, 항만, 육상 운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 인프라 관리가 중요하다. 한진은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이러한 장기 투자가 가능하도록 경영의 중심을 잡아왔다. 이는 외부 환경 변화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디자인적 시각에서 보면, 한진그룹의 조직 구조는 하나의 시스템 디자인이다. 잘 설계된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지만,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한진의 물류 네트워크와 지배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각 계열사는 자신의 기능에 충실하며, 전체 그룹 차원에서는 중복과 충돌을 최소화한다. 이는 시각적 디자인이 아닌 보이지 않는 디자인, 즉 조직 디자인의 완성도다.
미래도시의 관점에서 이러한 조직 설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도시는 점점 더 복합적 시스템이 되고 있으며, 물류는 그 중심을 관통하는 기능이다. (주)한진이 가진 네트워크와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 지배 구조는 향후 친환경 물류, 스마트 물류, 도심 물류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기반이 된다. 도시의 혈관을 관리하는 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질서다.
『조직의 구조화』는 말한다. 효과적인 조직은 전략을 바꾸기 전에 구조를 점검한다. (주)한진의 경영은 이 원칙에 충실하다. 무리한 확장보다 기존 강점을 유지하고, 그 강점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직을 촘촘히 설계해왔다.
결국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방법이란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지도를 얼마나 정확히 읽고 관리하는가의 문제다. 한진칼과 (주)한진의 관계는 그 지도가 어떻게 현실의 경영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이 구조야말로, 거대기업 한진이 여전히 성장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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