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쇠락한 지방 소도시를 가게 되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한때는 거리가 북적였고, 젊은이와 어린 아이들이 넘쳐났으며, 경기가 좋을 때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과장된 농담도 있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정돈되지 않은 낡은 흔적만 보일 뿐이다.
산업의 쇠퇴를 겪은 지역의 건강지표가 좋지 않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흔히 그 원인을 산업의 쇠퇴로 인한 '경제적 박탈'에서 찾는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서는 산업 쇠퇴 지역의 건강 수준을 단순히 현재의 경제적 박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논문 바로가기: 탄광 폐쇄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석탄 채굴 역사와 절망사에 대한 생태학적 분석).
이 연구에서는 절망사(death of despair)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절망사는 자살, 알코올 관련 사망, 약물 중독 사망을 묶어 부르는 용어로, 사회·경제적 환경이 사람들의 삶의 전망과 정신건강, 건강행동을 잠식해 결국 조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연구자들은 잉글랜드·웨일즈 전역을 인구 5000~1만 명 규모의 구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의 2015–2023년 사망자료를 확인했다. 그리고 각 지역을 마지막 탄광이 언제 문을 닫았는지에 따라 네 범주(탄광 없음, 1946년 이전, 1946–1979년, 1980년 이후 폐광)로 분류했다. 이후 성별·연령·기간을 고려해 각각 자살률, 알코올 관련 사망률, 약물 중독 사망률을 분리하여 비교하였다. 이와 같은 절망사가 현재의 빈곤에 의한 것으로 단순히 설명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역수준박탈(소득 및 고용지표)로 보정하여 분석하였다. 박탈지수는 비폐광지역은 –0.15, 1946년 이전 폐광지역은 0.19, 1946–1979년 폐광지역은 0.38, 1980년 이후 폐광지역은 0.44로 최근에 폐광된 지역일수록 박탈의 정도가 컸다.
분석 결과 폐광지역은 비폐광지역보다 절망사가 더 많았다. 알코올 관련 사망은 폐광 지역에서 대체로 27~52% 높았는데, 지역박탈지수를 보정한 뒤에도 13~30% 높은 수준이 남았다. 약물 중독 사망 역시 폐광 지역에서 23~53% 높았으며, 박탈지수 보정 후에는 2~22%로 감소되지만 모든 폐광지역에서 연관성이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률 역시 폐광지역에서 7~19% 높았는데, 지역박탈을 보정한 이후에는 1~10%로 감소하였고, 1980년 이후에 폐광된 지역에서만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만으로는 폐광지역에서 관찰되는 사망 부담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 결과는 산업 쇠퇴의 장기적·누적적 영향이 지역의 기회 구조, 건강, 정체성 속에 스며들어 지속된다는 점을 반영한다. 폐광은 주요 고용원을 제거했을 뿐 아니라 지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시민 제도를 약화시키며, 지역사회 인프라를 훼손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호연결된 과정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불리함을 내재화하여, 높은 사망 패턴에 기여하였다고 설명한다.
연구자들은 절망사 예방에 대한 개입이 개인중심 모델을 넘어 세대 간 및 지역사회 수준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임상의사들은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맥락이 정신건강 악화와 알코올, 약물 오남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치료와 개입은 개인 상담이나 약물치료에만 머물지 않고, 집단적 세대 간 고통을 인정하고, 지역사회 지향적 접근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폐광지역 사례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우리도 산업 쇠퇴와 인구 유출을 겪은 많은 지역의 정신건강 악화와 알코올∙약물 오남용 문제를 다룰 때, 이를 개인의 취약성이나 현재의 빈곤만으로 설명해온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산업 쇠퇴의 영향이 시간이 지나도 지역에 누적되어 '절망사'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대응 역시 치료와 상담 같은 개인 중심 개입을 넘어 지역의 사회적 기반을 회복하는 방향까지 포함해야 한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예방은 지역이 급격히 쇠퇴하지 않도록, 그리고 쇠퇴가 시작된 지역이 다시 버틸 수 있도록 사회적·정책적 지원을 지속하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며 지역 소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목소리도 있지만, 건강의 관점에서라도 그 흐름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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