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이 창사 이후 가장 깊은 경영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단순한 업황 부진을 넘어, 그룹의 수익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 국면이다. 재계 순위 하락, 핵심 계열사 장기 적자, 주력 제품 수익성 붕괴까지 겹치며 사실상 '총체적 압박'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태광그룹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재계 순위 36위까지 올랐으나 최근 59위로 밀려났다. 그룹의 핵심인 태광산업은 2022년 첫 영업적자를 기록한 이후 적자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35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적자 폭은 전년 대비 대폭 확대됐다. 대한화섬 역시 영업손실을 내며 그룹 전반의 체력이 약화되는 모습이다.
문제는 실적 악화가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력 제품인 아크릴로니트릴(AN)은 중국 경쟁사의 대규모 증설로 글로벌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스프레드(마진)가 급락, 적자 전환했다. 청화소다(NaCN)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줄었다. 섬유 부문은 글로벌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 격화 속에 매출 감소와 적자가 겹쳤다. 업계 안팎에서는 올해 영업적자가 1,000억원에 근접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중국발 저가 공세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고,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요 회복도 불투명하다. 범용 석유화학·섬유 제품의 수익성은 구조적으로 압박받고 있다. 업황이 스스로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전략은 더 이상 현실적 선택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칫 대응이 늦어질 경우 경쟁력 약화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내부적으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사면초가'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태광산업이 꺼내든 해법이 바로 애경산업과 동성제약 인수 추진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그룹 생존을 위한 구조적 재편 카드라는 해석이 나온다.
애경산업은 생활용품·화장품 분야에서 브랜드 경쟁력과 유통망을 확보한 소비재 기업이다. 경기 변동에 민감한 B2B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안정적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소비재 사업은 수요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브랜드 자산이 축적될수록 경쟁력이 강화되는 특성이 있다. 태광그룹 입장에서는 '수익 안전판'을 마련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동성제약 역시 비중 있게 검토되고 있다. 동성제약은 염모제와 일반의약품 등 생활 밀착형 제품을 기반으로 꾸준한 매출을 유지해 왔으며, 차세대 항암 치료법 등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해 성장 잠재력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헬스케어 산업은 고령화와 건강 수요 확대라는 구조적 성장 동력을 지닌 분야다. 단기 실적 방어를 넘어 중장기 성장 축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
애경산업이 '안정성'이라면, 동성제약은 '성장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석유화학·섬유 중심의 경기 민감형 포트폴리오를 소비재·헬스케어로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계산이다.
물론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M&A를 추진하는 데 따른 재무 부담과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업황 반등만을 기다릴 경우 체력 소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결단은 '선택'이라기보다 '필수'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위기의 강도가 클수록 구조 전환의 속도와 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태광산업은 동시에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확대, 사업 효율화, 비용 구조 개선 등 본업 경쟁력 강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미세 조정만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점에서, 사업 축 자체를 바꾸는 결단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태광산업이 서 있는 지점은 분명 녹록지 않다. 재계 위상 하락, 장기 적자, 업황 구조 변화라는 삼중 압박 속에서 생존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럼에도 그룹은 움츠러들기보다 포트폴리오 재편이라는 고강도 처방을 택했다.
애경산업과 동성제약 인수 추진은 위기의 깊이를 방증하는 동시에, 그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불황의 터널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전략적 결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태광산업의 이번 승부수가 장기 생존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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