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기차를 비롯한 주요 산업 분야에서 ‘유럽산’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 보조금과 공공 계약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비율 이상을 EU 역내에서 생산하도록 의무화해, 중국과의 경쟁 심화 속에서 역내 제조업 기반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수한 법안 초안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전기차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의 최소 70%를 가격 기준으로 EU 내에서 제조하도록 규정할 예정이다. 또한 운전자에 대한 구매 보조금이 적용되거나 공공 기관이 구매·임대하는 신형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는 EU 내에서 조립되어야 한다.
배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법안은 차량 배터리의 핵심 구성 요소 일부를 EU 역내에서 생산하도록 명시했다. 다만 구체적인 품목과 비율은 최종 협의 과정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조치는 전기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건설을 포함한 중공업 분야에도 역내 생산 비율 기준이 도입된다. 초안에 따르면 창문과 문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제품의 최소 25%, 플라스틱 제품의 최소 30%가 EU 내에서 제조되어야 정부 보조금이나 공공 조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FT는 이러한 현지 부품 사용 목표가 EU가 약 2조6000억 유로 규모의 제조업 기반을 되살리기 위해 추진 중인 광범위한 산업 전략의 일환이라고 전했다. EU 제조업체들은 저가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높은 에너지 가격, 엄격한 기후 정책 준수 비용 등 삼중고에 직면해 공장 폐쇄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해 왔다.
EU 집행위가 오는 25일 발표할 예정인 ‘산업 가속기’ 법안은 공공 조달 입찰 시 탄소 배출량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는 등 산업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환경 전환과 산업 경쟁력 회복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자동차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독일의 BMW는 해당 규정이 불필요한 비용 증가와 관료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폭스바겐과 스텔란티스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현지 부품을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유럽산’ 공공 제도 도입을 지지해 왔다.
일부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전기차 산업이 배터리 기술과 핵심 소재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요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배터리 원자재 가공과 셀 생산 부문에서의 공급망 재편이 선행되지 않으면 규제 충족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일부 제조업체들은 적용 범위를 EU에 한정하지 말고 튀르키예, 영국, 일본 등 주요 제조 허브 및 무역 파트너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내 산업 보호와 글로벌 공급망 현실 사이에서 EU의 ‘유럽산’ 전략이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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