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사케, 깊은 향과 맛 담은 일본술2
일본에서는 통상 니혼슈(日本酒)혹은 세이슈(清, 청주)가 우리가 생각하는 사케에 조응하는 단어다. 일본에서 생산된 쌀과 일본에서 취수한 물을 이용해 일본에서 생산한 것만 니혼슈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의 전통주에서 가장 즐겨찾는 것은 니혼슈(日本酒)와 쇼츄(焼)다. 니혼슈는 쌀과 누룩, 그리고 물을 원료로 발효시켜 만드는 양조주이고, 쇼츄는 쌀이나 보리, 고구마 등을 발효시킨 후, 이를 증류해서 만든 증류주이다. 우리나라의 문배주같은 전통주와 비슷한 제조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다만 쌀이 주 원료가 되는 니혼슈와 달리 쇼츄는 쌀 외에도 고구마, 감자, 밤, 보리 등 다양한 곡물로 만든다.
가고시마같은 지역에서는 특히 고구마로 만든 명품 쇼츄가 유명하다.
그렇다면 사케는 처음에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졌을까? 우리나라에도 상영돼 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은 ‘너의 이름은’에는 어린 소녀가 밥을 씹어서 뱉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입으로 씹어서 타액에 의해 발효시켜 만든 술이 사케의 기원인 셈이다. 다소 기괴해 보이지만 많은 발효주가 사람의 타액으로 만들어졌다.
713년 이후의 문헌인 오오수미코쿠후도키(大隅国土記)의 기록을 보면 현재 가고시마현 동부에서 마을의 남녀가 물과 쌀을 준비해, 생쌀을 씹은 다음 용기에 뱉고 이것을 하룻밤 시간을 둬 술을 양조한다고 기록돼 있으며, 이 술을 ‘씹는 술(쿠치카미노 사케)’이라고 했다.
타액에 포함돼 있는 전분 분해효소인 아밀라아제, 디아스타제 작용으로 쌀의 전분을 당화 시켜 공기 중의 야생효모에 의해 발효시킨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케 양조방법과 같은 원리이기 때문에 사케의 기원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716년경의 하리마코쿠후도기(播磨国土記)에는 말린 밥이 물에 젖어 곰팡이가 발생했고 그걸 이용해 술을 빚었다고 한다. 누룩곰팡이의 당화작용을 이용한 양조방법으로 오늘날의 사케 제조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룩곰팡이에 의한 양조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제조법이라고 하는 설의 근거가 되는 이야기다.
고사기에 의하면 일본 15대 일왕(천황)인 오진덴노(應神天皇)가 백제인 수수보리(須須保利)가 빚은 술을 마시고 “수수보리가 빚는 향기로운 술에 나는 취해 버렸네. 무사 평안한 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술에 나는 취해버렸네”라고 말했다. 이후 수수보리는 573년 교토의 사가신사에 일본 사케의 신으로 모셔졌다. 일본 사케의 어원이 이 사가신사의 사가에서 왔다는 주장이다.
물론 백제에서 온 도래인들이 양조기술을 알려주었다는 것은 일정부분 사실에 부합되긴 하지만 일본 니혼슈의 원조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사케의 어원은 식혜 또는 삭히다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정대성 사가현립대학 인류문화학부 교수가 저술한 ‘일본에서 건너간 한국음식’에 따르면 우리말 삭다에서 삭아-사카- 사케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케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歌集)인 7~8세기의 만엽집(萬葉集, 만요슈)에서 술을 찬미하며 언급한 사카에키(榮え水, 훌륭한 물이라는 뜻)라는 말이 변형됐다는 설이 강력하다. 사케는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일본의 사찰에서 만들던 소보슈(僧坊酒)로부터 변화를 거듭하면서 ‘청주’라는 이름 그대로 맑은 술로 정립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탁주가 주를 이뤘다.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를 거치면서 널리 유통되었다. 그리고 교토를 중심으로 여러 술집이 생겼다.
근·현대 들어서 사케는 큰 위기를 맞았다. 메이지 시대 때 일본 정부의 재원을 늘리기 위해 주세 제도를 바꾸면서 많은 사케 제조자들이 원주 제조를 중단하게 됐고 이 때문에 전통 사케의 대가 끊기고 사라졌다. 태평양 전쟁 때는 쌀이 부족해지자 ‘3배 증양주’라는 것이 나오면서 사케의 품질은 급격히 악화됐다.
원주를 물에 희석하고 거기에 주정을 섞은 뒤 여러 첨가물을 넣게 됐고 이때부터 일본 내에서 사케의 맛이나 품질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널리 퍼졌다. 일본에서는 일본주라고 하면 ‘악취가 나는 술’, ‘맛 없는 술’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 일본 토속주에 대한 붐이 일면서 차츰 전통 사케들이 복원되고 기계공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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