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자 역사에서 전설로 불리는 제품을 꼽으라면 단연 해태제과의 홈런볼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한 대형마트 과자 판매대 모습. / 연합뉴스
이 과자가 지난 45년 동안 벌어들인 돈만 무려 2조 원에 달한다. 과자 하나가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린다는 것은 식품 업계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기록 뒤에는 회사의 운명을 건 과감한 결단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이 숨어 있다. 홈런볼이 어떻게 국민 과자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 뒷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시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태제과는 이 새로운 과자를 만들기 위해 약 1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지금이야 1억 원이 아주 큰 돈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1980년대 초반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과자 하나 개발하는 데 쏟아부은 셈이니, 이는 경영진 입장에서 그야말로 인생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 과자가 실패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해태제과의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과감한 투자는 출시 1년 만에 기막힌 운명을 만난다.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과자 이름인 홈런볼은 야구 열풍과 함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경기를 보며 이 과자를 먹으면 우리 팀이 홈런을 친다는 재미있는 믿음이 퍼졌다. 야구장 갈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된 것이다.
홈런볼 과자 / 연합뉴스
게다가 부스러기가 많이 나오지 않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덕분에 좁은 야구장 좌석에서 먹기에 가장 편한 과자라는 점도 큰 인기에 한몫했다. 이름과 모양, 그리고 시대 상황까지 모든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홈런볼이 큰 성공을 거두자 경쟁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인 롯데제과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홈런볼의 성공을 지켜보며 비슷한 과자를 만들기 위해 뛰어들었다.
특히 롯데제과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아예 다른 회사를 인수하면서까지 '마이볼'이라는 이름의 과자를 내놓으며 정면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홈런볼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겉모양은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었지만, 입안에 넣었을 때 입 안에서 녹는 그 특유의 맛과 식감은 아무도 따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40년 넘게 쌓아온 홈런볼만의 기술 장벽이었다. 홈런볼은 프랑스식 빵인 슈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겉면은 얇고 바삭하면서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텅 빈 공간에 부드러운 초콜릿 크림을 얇은 껍질이 터지지 않게 집어넣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껍질이 너무 두꺼우면 퍽퍽하고, 너무 얇으면 크림을 넣을 때 쉽게 부서진다.
적절한 두께와 바삭함을 유지하는 반죽 비율, 그리고 크림을 넣는 온도와 압력을 조절하는 기술은 해태제과만이 가진 일급비밀이었다. 수많은 대기업이 덤벼들었지만 이 기술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하나둘씩 포기하고 말았다.
홈런볼은 시대가 변해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신했다. 가장 익숙한 초코맛뿐만 아니라 우유 맛, 딸기 맛, 최근에는 소금우유 맛이나 멜론 맛, 피스타치오 맛까지 선보이며 젊은 세대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특히 요즘은 에어프라이어에 살짝 돌려먹는 방법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45년이라는 시간은 강산이 네 번 넘게 변하는 긴 시간이다. 그 세월 동안 수많은 과자가 새로 나왔다가 조용히 사라졌지만, 홈런볼은 여전히 과자 순위의 가장 높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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