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국경을 눕혀 그리다”…조선의 방어 전략을 한눈에 담은 ‘청구관해방총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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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국경을 눕혀 그리다”…조선의 방어 전략을 한눈에 담은 ‘청구관해방총면지도’

뉴스컬처 2026-02-18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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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조선 후기 국방 인식과 영토 인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청구관해방총면지도'는 한반도를 ‘눕혀서’ 표현한 대형 전도로, 지도 제작 전통의 다양성과 군사 전략적 시각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다. 세로 85.5cm, 가로 282cm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는 국가적 차원의 방어 체계를 한눈에 조망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2008년 보물로 지정된 이 지도는 조선의 공간 인식과 국경 방어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청구관해방총면지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면지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지도는 오늘날과 달리 북쪽을 위로 두지 않고 동쪽을 상단에 배치한 ‘동상서하(東上西下)’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방향 설정의 차이를 넘어, 조선 사회가 지리 공간을 바라보던 관념적 시점을 보여준다. 지도는 객관적 축척의 산물이기 이전에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청구관해방총면지도'는 조선의 시각 체계를 읽어낼 수 있는 시각 자료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도는 국경 방어라는 목적이 분명하다.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 지역까지 포괄하며, 의주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주요 육로를 구체적으로 표시하였다. 이는 조선이 한반도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륙과 연결되는 전략적 통로를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국경은 경계이자 교통의 요지였고, 동시에 군사적 긴장이 집중되는 공간이었다.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울타리와 그 문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는 지형 정보에 그치지 않고 방어 체계의 구조를 기록한 것이다. 울타리의 문까지 구체적으로 그려 넣은 세심함은 국경 관리와 군사 전략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반영한다. 지도는 곧 군사 보고서이자 전략 문서로 기능했다.

조선 영역 내부에는 진보(鎭堡)와 성곽이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안가에는 초(哨)와 당(塘) 등 방어 시설이 체계적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봉수는 횃불 모양, 요충지는 깃발 모양으로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상징적 기호 체계는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조선 후기 지도 제작 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 지도는 군사 정보의 시각적 코드로 작동했다.

산지는 산줄기를 이어 그리는 전통적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백두대간의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조선 지리 인식의 핵심이 산줄기 중심 체계였음을 증명한다. 산맥은 자연 경계이자 군사적 방어선이었고, 국토를 이해하는 기본 틀이었다. 지도 속에서 산은 공간 구조를 조직하는 축으로 기능한다.

남쪽 여백에는 일본 열도가 간략히 묘사되어 있다. 이는 조선이 해상 방어를 중시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구의 침입 경험과 임진왜란의 기억은 해안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도에도 그 긴장감이 반영되었다. 바다는 교역의 통로이면서 동시에 위협의 경계였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교통망은 전략적 이동 경로를 강조한다. 이는 평시의 교통로이자 전시의 병참로였다. 지도의 여백에 붉은 글씨로 기록된 국경 관련 사항 역시 행정·군사적 정보를 보완하는 텍스트 장치로 기능한다. 지도는 이미지와 문자 정보가 결합된 복합 기록물이었다.

전반적으로 지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국대전도'와 분위기와 구성이 유사하다. 두 지도 모두 대형 전도로서 산줄기 표현과 국경 확장 인식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특히 압록강·두만강 이북 지역까지 포괄하는 점은 조선의 영토 인식이 현재의 한반도 경계보다 넓게 설정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구관해방총면지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면지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흥미로운 점은 당시 섬이었던 안면도가 여전히 곶처럼 표현되는 등, 이전 시기 지도에서 보이던 불완전성이 일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적 측량 이전 단계의 지도 제작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통적 지리 지식이 축적·전승되는 과정을 반영한다. 지도는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대 인식의 축적물이었다.

‘청구(靑丘)’라는 명칭은 우리나라를 시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며, ‘관해방총’은 국경과 해방(海防)을 총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목 자체가 이 지도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한다. 이는 전도가 지닌 상징성과 정책적 목적을 동시에 드러내는 명명 방식이다.

문화사적 측면에서 '청구관해방총면지도'는 조선이 공간을 이해하고 통치하던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도는 영토를 시각적으로 통합함으로써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상징물이었다. 국경의 선과 방어 시설의 점들은 주권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늘날 이 지도는 옛 지리 자료를 넘어, 조선의 세계관과 군사 전략, 그리고 공간 인식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문화 자산으로 평가된다. 대형 화면 위에 펼쳐진 산줄기와 방어선은, 한 시대가 영토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키려 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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