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박스오피스 정상을 고수하며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의 중심에는 먹고살기 위해 유배지를 유치했으나 뜻밖에 선왕(박지훈)을 떠안게 된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처절한 딜레마가 자리한다. 살기 위해 내린 선택이 죽음의 위협으로 돌아온 상황, 두 인물이 빚어내는 이 불안한 공생 관계가 극의 엔진을 돌렸다면 그 화력을 증폭시킨 것은 적재적소에서 밀도를 채운 '히든 캐릭터'들이었다.
이들의 서사가 관객의 가슴에 온전히 가닿을 수 있었던 건 조력자와 위협자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정교하게 움직인 이들의 열연 덕분이다. 때로는 서늘한 공포로 생존의 위협을 가시화하고, 때로는 따스한 온기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사극에 최적화된 수려한 비주얼로 극의 품격을 높인 세 명의 히든 카드. 위압적인 빌런 유지태부터 선왕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 전미도와 이준혁까지, 〈왕사남〉의 앙상블을 완성한 이들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위압적인 '한명회'로 탄생한 유지태
익히 역사적 인물로 잘 알려진 '한명회'가 배우 유지태를 만나 새로운 질감으로 변주됐다. 그간 수많은 사극이 그를 노회한 책략가로 그려냈다면, 유지태는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적인 위압감을 선택했다. 그가 화면에 등장해 특유의 낮은 중저음을 꺼낼 때마다 극의 공기는 서늘하게 내려앉는다. 감정을 도려낸 무표정은 유약한 선왕의 모습과 극적으로 대비되며, 절대 권력의 그림자가 주는 공포를 시각화한다. 뼈아픈 비극의 역사를 이토록 묵직하게 증폭시킬 수 있었던 건, 유지태표 한명회가 가진 압도적인 무게감 덕분이다.
실제 궁녀인 줄...'매화' 역 전미도
주연급 배우가 비중을 넘어 작품의 결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조력자로 나설 때, 영화의 격은 달라진다. 선왕의 곁을 지키는 궁녀 ‘매화’로 분한 전미도가 바로 그러하다. 그는 화려한 수식어를 내려놓고 척박한 산골 유배지의 풍경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궁녀를 마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높은 밀도의 구현력은 전미도라는 배우의 저력을 새삼 확인케 한다.
그는 선왕을 보필할 때는 정갈하고 굳건한 아군이 되어주면서도,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인 촌장 엄흥도와는 알싸한 케미스트리를 빚어내며 극의 텐션을 조율한다. 자칫 무겁게만 가라앉을 수 있는 서사 속에서 그가 만들어낸 섬세한 감정의 변주는 관객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왕사남〉이 대중의 고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처럼 제 실력을 증명한 배우들이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몫을 단단히 해냈기 때문이다.
관객 개안시킨 비주얼...'금성대군' 역 이준혁
빌런의 위압감과 조력자의 온기를 지나온 관객의 시선은, 이제 가장 처연하고도 강직한 선에 가닿는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이자 선왕의 숙부인 ‘금성대군’ 역의 이준혁은 등장만으로도 극의 분위기를 정화한다.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그가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사극의 미학을 극대화한 그의 수려한 비주얼이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인물의 충의를 설득하는 장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준혁은 찬탈자 세조를 처단하고 어린 조카를 복위시키려다 결국 실패하고 마는 비운의 서사를 단단한 눈빛 하나에 담아냈다. 왕족의 기품이 서린 그의 외양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꺾여버린 대의를 더욱 처연하게 만든다. 비극적 결말을 앞두고도 흐트러짐 없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짧은 등장만으로도 시대의 비극을 얼굴에 새겨 넣은 이준혁의 활약은 〈왕사남〉의 품격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 결국 좋은 영화는 주연의 열연이라는 기둥 위에, 조연들의 정교한 변주라는 지붕이 얹어질 때 완성된다. 〈왕사남〉이 박스오피스 정상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진짜 이유는 유지태의 위압과 전미도의 온기, 그리고 이준혁의 처연함이 유해진·박지훈의 고독한 사투와 완벽한 합을 이뤄냈기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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