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대형 건설사들이 하도급 대금을 장기간 지급하지 않다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이후에야 원금과 지연 이자를 한꺼번에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건설업계의 고질적 ‘대금 지연 관행’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하도급 대금 미지급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를 받은 뒤 60여 개 협력사에 약 100억원 규모의 원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했다. 조사 착수 이후 한 달 이내에 대금을 정산한 셈이다.
HJ중공업 역시 170여 개 하도급업체에 수십억원대 원금과 이자를 지급했다. 일부 협력사는 설 연휴 직전에서야 자금을 수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자진 시정’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현행 하도급법 시행령은 조사 개시 후 1개월 내 미지급 대금을 지급할 경우 과징금 감경 또는 면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원청이 대금 지급을 미루다가도 조사가 시작되면 서둘러 정산하는 ‘사후 수습형’ 대응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건설업 특성상 공사비 정산 과정에서 실적 증빙이나 설계 변경을 둘러싼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원청 측 설명이지만, 협력업체들은 자금 압박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라고 호소한다. 하도급업체는 인건비와 자재비를 선지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대금 지연이 곧바로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특정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대형 건설사가 수년간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다가 조사 이후 수백억원 규모의 원금과 이자를 정산한 사례가 있었다. 반복되는 ‘지연 후 지급’ 패턴이 제재보다는 권고 중심으로 마무리되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을 주문한다. 조사 개시 이전 단계에서의 선제적 점검 강화, 상습 지연 기업에 대한 가중 제재, 협력사 신고 보호 장치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호서대 안전공학과 고승호 교수는 “명절 직전에 대금이 들어오면 협력사 입장에서는 다행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급 기한을 지키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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