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첫조명] “희귀해서 약하다고요?” 편견 깬 레어드림즈의 ‘작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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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첫조명] “희귀해서 약하다고요?” 편견 깬 레어드림즈의 ‘작은 사회’

여성경제신문 2026-02-17 12: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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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뉴스 검색 순위에는 오르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다. ‘김정수의 첫조명’은 그 숨은 이야기를 찾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했어도 직접 만나 듣고 기록한다. 키워드 하나면 알고리즘이 뉴스를 골라주고, 생성형 AI가 정보를 요약해 건네는 시대다. 그 거대한 흐름에서 비껴간 사람·사건·상황을 처음으로 비추는 것이 이 코너의 취지다. 사소해 보이는 장면 하나, 한 사람의 선택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작은 조명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희귀질환 단원로 구성된 레어드림즈(옛 희망의 소리 합창단)가 지난 1월 22일 제15회 정기연주회에서 AI 창작곡을 포함한 무대를 선보였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희귀질환 단원로 구성된 레어드림즈(옛 희망의 소리 합창단)가 지난 1월 22일 제15회 정기연주회에서 AI 창작곡을 포함한 무대를 선보였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흔하지 않아 더 빛나. 누구도 대신 못해 날.’

합창단이 직접 만든 노래의 한 구절이다. ‘레어드림즈(RARE DREAMZ)’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희귀질환자 단원들로 구성된 레어드림즈(옛 희망의 소리 합창단)가 1월 22일 제15회 정기연주회에서 AI 창작곡을 포함한 무대를 선보였다. 음악 장르의 확장도 눈길을 끌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팀이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단원은 총 29명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1997년생까지 연령대가 넓다. 희귀질환 환자가 약 65~70%이며 비질환 형제·자매와 친구들, 그리고 뇌병변·지체장애 등을 가진 단원들도 함께한다.

김진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부장은 “환자만 모인 합창단이 아니다”라며 “환자가 환자가 아닌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많지 않은데 여기서는 같이 부딪히고 싸우기도 하고 어울린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 합창단을 ‘작은 사회’라고 불렀다. 그에게 레어드림즈는 ‘집단 음악치료’이자 공동체다. 노래는 매개일 뿐 그 안에서 먼저 경험하는 것은 사회라는 설명이다.

(왼쪽부터) 레어드림즈(RARE DREAMZ)를 이끄는 김진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부장과 10년 넘게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주은 씨 모습 /김정수 기자
(왼쪽부터) 레어드림즈(RARE DREAMZ)를 이끄는 김진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부장과 10년 넘게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주은 씨 모습 /김정수 기자

“밖에서는 희귀질환을 안타깝다, 불쌍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이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매년 직접 봅니다.”

이곳에서의 성장은 공연 실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친해지고 다투고 다시 어울리는 과정까지 포함된다. 지도자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판을 깔아주는 사람’에 가깝다. 처음엔 부모 손에 이끌려 온 단원도 몇 주가 지나면 스스로 자리를 찾는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배려’보다 ‘배제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김 부장은 “이 안에 와서만큼은 소외감이나 동떨어진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며 “단원뿐 아니라 부모님들까지 한 분 한 분 말을 걸고 오늘은 누구에게 말을 덜 걸지 않았나 혼자 돌아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노래로 찾은 꿈, 성악가의 길

연습 시간 4~5시간 동안만큼은 질환 설명도, 사회적 시선도 내려놓는다. 음악을 매개로 관계를 쌓는 시간이다.

2001년생 황주은 단원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이곳을 찾았다. 10여년을 함께했다. 처음엔 주치의의 권유로 어머니 손을 잡고 왔다. 당시 그는 사람과 접촉하는 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주변의 시선과 질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 자체가 부담으로 남았다.

황 단원이 앓는 연골무형성증은 뼈 성장이 제한돼 키가 자라지 않는 질환이다. 그는 “남자는 130㎝ 정도까지밖에 안 큰다고들 한다”며 “저는 수술을 해서 키가 큰 편”이라고 말했다. 병명을 설명하는 순간이 늘 따라붙는 삶이었다.

연골무형성증을 가진 황주은 단원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성악을 하기로 결심했으며 학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현재 대학원은 오페라 전공으로 이어가고 있다. 향후 유학과 대학 교수의 꿈도 밝혔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연골무형성증을 가진 황주은 단원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성악을 하기로 결심했으며 학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현재 대학원은 오페라 전공으로 이어가고 있다. 향후 유학과 대학 교수의 꿈도 밝혔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하지만 합창단 안에서는 설명이 먼저가 아니었다. 노래가 먼저였다. 황 단원은 “노래만 불렀을 뿐인데 쉼터가 됐다. 저도 모르게 위로를 받은 것”이라며 “서로 힘든 일이 있으면 이번 주는 어땠어 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고 합창단을 나간 단원들과도 연락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원래는 위축돼 있었지만 여기 와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합창단은 그에게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합창단에서 만난 지도자와의 연결은 진로로 이어졌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처음엔 직업으로 삼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곳에서 꿈을 구체화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성악을 하기로 결심했고 학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현재 대학원은 오페라 전공으로 이어가고 있다. 향후 유학과 대학 교수의 꿈도 밝혔다.

“합창단이 길을 터줬어요. 저도 나중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싶습니다.”

‘희귀’는 약점이 아닌 정체성

합창단 이름이 ‘희망의 소리’에서 ‘레어드림즈’로 바뀐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희귀’라는 단어를 숨기지 않고 정면에 두기로 했다.

김진화 부장은 2007년 창단 초기부터 이어진 기업 후원과 역사적 맥락을 언급하며 희귀질환 인식이 낮던 시기부터 지원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희망의 소리’라는 이름만으로는 정체성이 직관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희귀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어드림즈는 희귀한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꾸는 꿈이기도 하고, 그 꿈을 실제로 이뤄간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뤄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드린다는 의미도요.”

'레어드림즈' 음원 앨범 정보 /멜론 캡처
'레어드림즈' 음원 앨범 정보 /멜론 캡처

동명의 곡 가사 속 문장 ‘흔하지 않아 더 빛나. 누구도 대신 못해 날’에 대해 그는 “희귀질환은 저희에게 하나의 프레임일 뿐”이라며 “그걸 벗어날 능력이 충분한 팀”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AI 창작곡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올해가 두 번째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단원 참여 방식을 확장하는 시도다. 5회기, 총 10시간 교육을 통해 단원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장르와 템포, 음역대를 조정한다. 결과물은 실제 음원으로 발매된다. 현재 9곡이 각종 음원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곡을 창작할 때 단원 의견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음악이어야 하니까요. 가사도 파트 배분도 단원들이 합니다. 무대에서 부르는 것에 더해 음원으로 결과가 나오니까 자부심이 커졌고 참여율도 높아졌어요.”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이 레어드림즈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황주은 단원(오른쪽)은 ‘극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김진화 부장은 이 팀이 ‘발판’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작은 사회에서 관계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회복한 뒤 바깥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김정수 기자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이 레어드림즈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황주은 단원(오른쪽)은 ‘극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김진화 부장은 이 팀이 ‘발판’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작은 사회에서 관계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회복한 뒤 바깥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김정수 기자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이 레어드림즈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황주은 단원은 ‘극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희귀질환을 가진 사람이 많다 보니 힘든 일도 있어요. 그런데 합창단을 통해 뭉치고 공유하면서 나누니까 그걸 이기고 나가게 됩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팀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진화 부장은 이 팀이 ‘발판’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작은 사회에서 관계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회복한 뒤 바깥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희귀가 모였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흔하지 않기에 더 또렷해진 존재들이 무대 위에 서는 것이죠.”

레어드림즈는 자신을 특별한 사례로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작은 사회 안에서 누군가는 성악가의 꿈을 찾고 누군가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용기를 얻는다. 희귀질환을 가진 청소년·청년들이 ‘설명해야 하는 사람’에서 ‘함께하는 사람’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이 무대 위에서 20년간 이어지고 있다.

☞연골무형성증= 연골의 뼈내골화 과정에 이상이 생겨 뼈 성장이 제한되는 선천성 질환이다. 저신장증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히며 성인이 되어도 키가 120~130㎝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지능 발달에는 영향이 없으나 척추관 협착증 등 합병증 관리가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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