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 한식을 전후해 조상의 묘를 찾는 풍경은 익숙하다. 술을 한 잔 따르고 절을 올린 뒤, 묘역 주변에 술을 뿌리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성묘 문화다. 하지만 이 장면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존재가 있다. 바로 산속에서 생활하는 멧돼지다.
사람에게는 정성과 예를 담은 행위지만, 멧돼지에게 술 냄새는 분명한 신호다. 먹이가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성묘가 끝난 뒤 묘소 주변에 남은 술과 음식 냄새는 멧돼지를 산 아래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유인 요소가 된다. 조용해야 할 묘역이 밤이 되면 멧돼지의 먹이터로 바뀌는 이유다.
그 결과 명절이나 성묘 철이 지나면 묘지가 파헤쳐졌다는 신고가 잇따른다. 흙이 뒤집히고 봉분이 무너진 흔적이 남는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이어서, 피해를 사전에 막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사람이 남긴 흔적 묘지를 먹이터로 만드는 조건
멧돼지가 묘지를 파헤치는 가장 큰 이유는 먹이다. 묘지는 보통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곳에 조성된다. 이런 조건은 토양 생물이 살기에도 좋다. 지렁이, 굼벵이 같은 먹잇감이 풍부하게 분포한다.
멧돼지는 땅을 파는 데 특화된 동물이다. 강한 앞다리와 단단한 주둥이, 발달한 송곳니를 이용해 흙을 뒤집는다. 부드러운 묘지 흙은 파헤치기에도 수월하다. 여기에 술과 제사 음식 냄새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후각이 매우 발달한 멧돼지는 먼 거리에서도 냄새를 감지한다. 묘역에 스며든 술 냄새는 단순한 잔향이 아니라, 먹이가 있다는 표시로 인식된다. 한 번 먹이를 찾은 장소는 기억에 남고,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찾게 된다. 같은 묘지가 여러 차례 훼손되는 사례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서식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산림이 쪼개지고 먹이가 줄어들면서 멧돼지는 활동 반경을 넓혔다. 깊은 산속에 머물던 개체들이 농경지, 민가 주변, 묘지까지 내려온다. 특히 밤이나 새벽처럼 인적이 드문 시간대를 골라 짧은 시간 안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겨울과 초봄 묘지 훼손 넘어 위험해지는 시기
문제는 묘지가 망가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성묘가 집중되는 겨울과 초봄은 멧돼지의 생태 주기상 가장 예민한 시기다. 짝짓기와 임신이 이어지는 시기로,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시기 멧돼지는 사람을 마주쳐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소리나 움직임을 위협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성묘객이나 산행객이 우연히 마주칠 경우, 짧은 거리에서도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개체 관리의 어려움이다. 임신한 개체가 많아 무분별한 포획이 쉽지 않다. 결국 사후 대응보다는 접근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 중요해진다. 묘지 주변에 멧돼지 기피제를 살포하거나 울타리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다. 다만 이런 조치 역시 임시방편에 가깝다.
술 뿌리지 않고 남긴 음식 되가져오기
가장 확실한 예방법은 성묘객의 행동 변화다. 성묘가 끝난 뒤 술을 묘역에 뿌리지 않고, 가져온 음식은 모두 되가져가는 방식이다. 고수레처럼 음식을 남겨두는 관습도 멧돼지를 부르는 원인이 된다.
묘 주변에 남은 음식물과 냄새는 멧돼지를 반복적으로 유인한다. 결국 조상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 묘를 훼손하고, 성묘객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묘 문화는 고정된 형식이 아니다. 환경이 바뀌면 방식도 달라진다. 술을 뿌리지 않고 간소하게 제를 올린 뒤, 묘역을 정리하고 내려오는 행동만으로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조용히 다녀오는 성묘가 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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