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디지털 금융이 일상화된 시대, 역설적으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영업 방식이 다시 호출되고 있다. 알고리즘 추천과 빅테크 플랫폼이 금융상품 유통 시장을 장악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최근 일부 카드업계에서는 ‘사람’을 통한 관계 기반 영업이라는 차별화된 실험이 포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며 발생한 마케팅 비용 상승과 고객 이탈 문제를 ‘신뢰’라는 질적 자산으로 돌파하려는 전략적 전환으로 읽힌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카드는 이러한 시장 환경의 대안으로 이달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부업형 카드 모집 프로그램 ‘로카 파트너스(LOCA Partners)’를 내세우며 관계 기반 영업 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과거 거리 모집 위주의 전업 모집인 구조를 고물가 시대 ‘N잡러’ 트렌드에 맞춘 공유 경제 모델로 재해석한 형태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모집인을 넘어, 지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금융 큐레이터' 역할을 일반인에게 부여한 것이 핵심이다.
플랫폼에 저당 잡힌 수익성… ‘수수료 늪’ 빠진 카드사들
그간 카드업계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빅테크 플랫폼에 막대한 제휴 수수료와 현금성 이벤트 비용을 지불하며 고객을 유입시키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플랫폼의 강력한 모객 능력은 단기간에 가입자 수를 늘리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카드사들의 내실은 점차 악화됐다. 플랫폼 유입 고객은 이른바 ‘체리피커(혜택만 챙기고 떠나는 소비자)’ 성향이 강한 탓이다.
실제 카드사가 플랫폼을 통해 고객 1명을 유치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수십만 원에 달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캐시백 혜택만 수령한 뒤 1년 이내에 카드를 해지하거나 휴면 상태로 전환한다. 이는 카드사의 마케팅 효율(ROI)을 저해하는 고질적인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한 카드사 마케팅 담당자는 “빅테크 플랫폼에 지불하는 광고비와 수수료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며 “이제는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영업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직접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토로했다.
여신금융협회 자료를 보면, 카드 모집인 수는 2016년 약 2만3000명에서 2025년 말 3000여명 수준까지 급감했다. 모바일 발급이 보편화되면서 대면 조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특정 카드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줄 수 없는 ‘신뢰의 가치’를 다시 재발견하고 있다. 지인 추천 기반의 가입은 플랫폼 광고보다 확산 속도는 느릴지언정, 추천인과의 정서적 유대 덕분에 실질 사용률과 카드 유지 기간이 플랫폼 유입 고객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원앱’ 전략 속 틈새 공략…신뢰 회복의 정공법
현재 주요 카드사들은 외부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저마다의 독자 생태계(원앱)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마이데이터 기반의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을 지향하며 결제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삼성카드는 통합 금융 앱 ‘모니모’를 통해 삼성 금융 계열사의 막대한 유저풀을 하나로 묶는 전략을 구사한다. 현대카드 역시 강력한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파트너십과 독자적인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통해 고객을 자사 앱에 묶어두는 ‘락인(Lock-in)’ 효과에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거대 플랫폼 경쟁 속에서, 롯데카드는 디지털 고도화와 별개로 ‘인적 네트워크 영업’이라는 틈새를 정조준하고 있다. 타사들이 온라인 영토 확장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때, 롯데카드는 오프라인 접점에서의 ‘H2H(Human to Human)’ 채널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롯데카드는 지난해 겪었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고객 신뢰 회복이라는 중대한 경영적 과제를 안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 사고 이후 고객들은 차가운 알고리즘보다는 내가 직접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의 권유를 더 믿는 경향을 보인다”며 “관계 기반 영업은 단순히 카드를 파는 행위를 넘어, 브랜드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무너진 신뢰를 뿌리부터 다시 다지는 데 최적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 유통 본질로의 회귀… 관건은 시스템화된 ‘신뢰’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금융 유통 구조의 ‘재설계’로 보고 있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고 상품 간 혜택 차이가 줄어든 시장에서 고객의 최종 선택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한 방은 결국 ‘관계’라는 고전적 가치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 수도권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소비자는 ‘진짜 정보’를 찾기 위해 인간적 유대를 필요로 한다”며 “데이터 분석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가입이라는 최종 결정을 끌어내는 심리적 안정감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서울 소재 대학 경영학부 교수도 “카드업계가 플랫폼 종속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마케팅 믹스의 다변화는 필수적”이라며 “과거 인적 영업의 폐단이었던 불완전 판매 문제를 디지털 프로세스로 통제할 수만 있다면, 인적 네트워크는 플랫폼 수수료를 대체할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저비용·고효율 채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플랫폼 의존의 한계를 체감한 카드업계가 다시 현장에서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던 금융 시장에 ‘신뢰’라는 오래된 자산이 강력한 미래 경쟁력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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