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보수의 성지?…서문시장 '불의 역사'를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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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보수의 성지?…서문시장 '불의 역사'를 안다면

연합뉴스 2026-02-17 08: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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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시장…1923년 일제 때 못 매립지에 조성

"화기 강해 화재 잦다" 속설…영남 독립운동의 거점

해방 후 '빨갱이 도시' 낙인, 박정희 이후 산업화 기지로

보수성지 무색해진 분위기, "과거에 안주해선 안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대구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 대구 읍성 서문 밖에서 형성된 장터로, 평양장·강경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그 규모가 방대했다.

대구 중구 대신동 일대에 있는 현재 시설은 1920년대 초 일제 총독부가 인근 저수지인 '천황당 못'을 매립하고, 그 땅 위에 시장이 이전되며 조성된 곳이다. 물을 흙으로 메운 자리에 불의 기운이 드센 시장이 들어선 터라 유독 화재가 잦다는 속설이 있다.

대구 방문한 박정희와 기자들 대구 방문한 박정희와 기자들

(서울=연합뉴스)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4월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으로 김영일 전 연합뉴스 사장, 왼쪽 뒤편에 박성범 전 KBS 앵커의 모습이 보인다.

역사적으로도 서문시장은 화(火)가 강한 곳이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도화선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남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젖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서문 장터의 뜨거운 에너지는 해방 공간의 혼돈 속에서 이념 갈등의 불길로 번졌다.

당시 대구는 '빨갱이 도시'로 불릴 만큼 남한 내 좌익 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그 배후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영남 좌익의 지도자로 변모한 박상희가 있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역 광장에서 경찰의 발포로 과격화한 좌익 시위는 인구 밀집지인 서문시장을 거쳐 경북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고, 박상희는 고향 구미 경찰서를 공격하다 총에 맞아 숨졌다.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박정희는 형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품고 남로당에 가담했다. 그러나 1948년 여순사건 직후 남로당 군내 조직책이란 사실이 드러나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그는 조직원을 고발하고 반공 투사로 거듭났다.

박정희 시대에 이르러 서문시장은 산업화의 병참기지로 변모했다. 이병철의 제일모직과 이원만의 한국나이롱(코오롱)이 생산하는 고품질 원단은 서문시장을 거쳐 전국으로 쏟아져 나갔다. 여기서 축적된 막대한 부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상경과 강남 유입으로 이어지며 오늘날 부유층의 주류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서문시장서 꽃다발 받는 장동혁 대표 서문시장서 꽃다발 받는 장동혁 대표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1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상인회와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상인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2026.2.11
mtkht@yna.co.kr

최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서문시장을 찾아 보수의 민심을 파고들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부터 "서문시장을 찾으면 힘이 난다"고 했던 윤석열까지, 보수의 리더들은 정치적 고비마다 이곳을 찾아 지지를 호소해 왔고,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보수 리더를 맞은 시장 분위기가 싸늘했다고 한다. 시장통에서 어묵과 납작만두를 집어 들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그들의 호소에 상인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내는 장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좌익과 반공,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격돌했던 이 뜨거운 장터에서 정치인들이 읽어야 할 것은 눈앞의 지지율이 아니다. 예전과 다른 상인들의 눈빛이 말해주듯, 표심은 구호가 아니라 노력과 결과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대구 서문시장 찾은 박근혜 대구 서문시장 찾은 박근혜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2025.5.31
mtkht@yna.co.kr

보수가 자중지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상징에 기대려 한다면 민심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상인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성과로 답해야 한다.

그 시험대의 한복판에 장 대표가 서 있다. 바뀌겠다는 말을 결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서문시장의 표심도 산업화 이후의 역사에 더는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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