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별 박사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막과 함께 4년 만의 국제스포츠 이벤트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10년 가까이 공들였던 노력을 떠올리면, 한국인으로서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온 국민이 숨죽이며 지켜본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개최지 선정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은 감동을 넘어 자부심으로 기억된다. 그 중심에 '드림프로그램'이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동계 스포츠 훈련을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말 그대로 '꿈'의 기회였다. 위도와 고도의 영향으로 실제 눈이 내리는 모로코·레소토·남아공에는 스키 리조트가, 이집트와 케냐에는 아이스링크가 각각 있지만 기후와 인프라의 한계로 아프리카와 동계올림픽을 연결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 남아공, 모로코, 나이지리아, 케냐, 마다가스카르, 베냉, 에리트레아, 그리고 사상 첫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기니비사우까지 아프리카 8개국 총 15명의 선수가 알파인 스키를 비롯한 설상 종목과 스켈레톤에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이들 중 다수는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서 나고 자란 디아스포라 출신으로, 국가 쿼터를 넘어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과 자기 뿌리에 대한 정체성 고민 속에서 아프리카 국적을 택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4년부터 강원도청이, 2018년 올림픽 이후에는 2018평창기념재단에서 주관해 온 글로벌 올림픽 유산 사업인 드림프로그램의 의미는 상당하다. 이는 단순한 유치 공약의 이행을 넘어, 참가자들의 올림픽 도전과 스포츠·문화 외교로 이어지며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2026 드림프로그램에는 아프리카 국가 중 모로코와 잠비아 청소년들이 참가했다. 2008년 이후 두 번째로 참가한 잠비아의 경우, 황창연 신부와의 인연으로 평창군의 초청을 받았다. 황 신부는 자신이 설립한 평창의 생태 마을을 잠비아 카사리아 에코시티로 확장하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13살 프레드릭과 벨샤자는, 한국인 아버지와 잠비아 어머니를 둔 민주와 함께 잠비아 참가단에 합류했다. 그 코치는 2025년 8월까지 대전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한 피터(Peter)이다. 영하 10도까지 내려찍은 지난 1월 29일, 문화탐방으로 찾은 경복궁에서 만난 이들은 프로그램이 반환점을 지난 시점이라 그런지 한국 생활에 제법 익숙해 보였다. 설상 훈련 중인 아이들은, 슬로프에 서면 여전히 공포감이 든다는 피터 코치의 푸념에 "코치가 그러면 안 되지"라며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평창의 설원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 온 감각을 깨우고 있었다. 처음 밟아보고 만져보는 눈의 질감, 그리고 스키를 신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순간의 균형감과 속도감이 그것이다. 눈을 볼 수 없는 잠비아와 겨울 한복판의 한국을 잇는 평균대 위에 선 것 같은 아이들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주고 있었다.
사실 필자는 2006년과 2011년, 드림프로그램 케냐 담당 봉사자로 참가자들의 평창 일정을 함께 한 경험이 있다. 당시 인라인스케이트 선수들이 참가해 빙상 훈련을 받았는데, 기술적으로 스피드 스케이트와 유사한 점이 많아 훈련 만족도와 효과가 특히 높았다. 케냐 선수들을 지도했던 국가대표 진선유 선수에 따르면, 무게감 있는 인라인스케이트로 단련된 선수들이 오히려 가벼운 스피드 스케이트 장비에 빠르게 적응해 스퍼트와 전력 질주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 결과, 드림프로그램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던 케냐 선수들은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나이로비 파나리(Panari) 호텔의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이는 드림프로그램이 일회성 스포츠 협력 이벤트이거나, 참가 청소년들에게 헛된 꿈만 심어준다는 비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동계 스포츠 훈련과 더불어 한국 사회와 문화를 직접 체험한 경험 그 자체가, 청소년기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드림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의 겨울 땅을 밟은 잠비아 아이들에게 이 경험은 단지 '꿈'으로만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평창에서 움튼 감각과 기억은,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좌표가 될 수 있다.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오던 스키의 균형감은 아이들의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고 친구들과 축구공을 차는 순간에도 말이다. 교사와 의사를 각각 꿈꾸는 프레드릭과 벨샤자가 잠비아에서 벰바어로 수업을 듣는 그 순간에도, 이 아이들이 언젠가 한국 정부 장학생으로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작은 씨앗처럼 자라날지 모른다. 드림프로그램의 유산은 반드시 올림픽 출전이나 메달로 환원될 필요는 없다. 이는 운 좋게 한국을 방문했던 일시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 한 시점에서 만난 한국이라는 낯선 세계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이어지는 데 있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동계올림픽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한 번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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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별 박사
현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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