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고를 일으킨 쿠팡과 관련 또 한 번 전레를 찾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매출의 90% 이상을 한국에서 올리는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을 미국 정치인과 투자자들이 나서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기업이 됐을까. 쿠팡 사태를 둘러싼 새로운 국면 앞에 한국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를 살폈다.
델라웨어 법인 설립부터 뉴욕 증시 상장까지
쿠팡은 시작부터 미국인이 소유한 미국 기업이었다. 창업주인 김범석 의장은 2010년 쿠팡을 설립하면서부터 실제 매출을 올리는 자회사는 한국에 두면서도 모회사인 쿠팡in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두는 방법을 택했다.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은 자금 확보였다. 쿠팡은 애초 흑자를 쌓아가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우는 것이 아닌, 적자를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 유치가 필수적이었다.
델라웨어주는 기관 투자자들이 승인한 지배구조, 경영권 등 결정에 대한 사법심사를 하지 않는 등 투자자에 친화적인 법률을 둔 곳이다. 창업주나 경영진이 적은 지분으로도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거대자본 유치와 창업주의 지배력 확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에 용이한 곳이 델라웨어주인 셈이다. 동시에 자본 유입 규모가 큰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해서도 미국에 본사 법인을 두는 편이 유리하다.
실제 쿠팡은 델라웨어 시절 일본 투자기관 소프트뱅크에서 2015년 10억 달러, 2018년 2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21년에는 본사를 시애틀로 이전한 뒤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해 다시 자본 규모를 늘렸다.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격적 가격정책을 시행하며 시장 지배력을 늘려갔다.
적자 경영의 그늘과 쿠팡의 대응
문제는 적자 경영의 부담이 쿠팡 안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마냥 감수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쿠팡은 갑의 지위를 활용해 을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길로 들어섰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 ‘히트 상품은 물론 가격 경쟁력의 그늘에 저임금 고강도 노동 속에서 때로 쓰러져가는 노동자와 낮은 납품단가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의 눈물이 쌓여갔다.
이와 함께 정부와 시민사회의 쿠팡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강해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 이래 쿠팡 경영진은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증인이 됐다. 2017년에는 배송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조가 만들어졌고, 2020년에는 물류센터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을 계기로 시민사회 대책위가 설립됐다.
쿠팡의 대응은 한국사회와 조화를 이루려 변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택배노동자의 연이은 산재사망을 막자며 출범한 1, 2차 택배 사회적 대화에 불참했다. 자체 상품 구매 유도를 위해 상품 검색 순위, 리뷰 등을 조작해 공정위에서 과징금 1628억 원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 의장은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국회의 출석 요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반면 본사를 둔 미국 정가에 대한 로비는 늘려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지난 8일 보도를 보면, 쿠팡은 2021년 로비 활동 등록을 마친 뒤 공격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2024년 로비 지출은 이전 2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330만 달러에 달했다. 같은 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위원회에 1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쿠팡의 미국 중심 전략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 뒤 톡톡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연방 하원이 쿠팡 사태 조사에 나서겠다 밝혔고, 그 결과가 관세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쿠팡의 미국 투자자들도 한국 정부와 국회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쿠팡 없는 삶'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쿠팡의 행보를 제어하기 위해 한국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거론되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쿠팡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러면 김 의장이 쿠팡 기업집단의 실질적 지배자로 인정돼 공정거래법상 책임과 의무를 물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쿠팡 동일인은 쿠팡inc 계열사인 쿠팡(주)다.
그간 김 의장은 미국 국적자라는 점과 ’친족 경영참여가 없다‘는 점 등 예외 요건을 충족해 동일인 지정을 피해왔다. 이런 가운데 김 의장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의 경영 참여 여부가 주목받는 상황이다.
국회 차원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여러 플랫폼 동시 사용) 제한, 최혜대우 요구를 금지하고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플랫폼독과점규제법 △입점업체 정산주기 단축, 이용사업자 단체협상권 보장 등을 담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법 등을 통해 플랫폼 기업 일반의 '갑질'을 막는 제도 마련도 논의 중이다.
다만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두 방안에 속도를 낼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쿠팡 없는 삶‘을 준비하기 위한 시민의 노력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탈팡‘을 통한 쿠팡 시장지배력 약화야말로 미국이 어쩔 수 없는 일인 동시에 쿠팡에 가장 큰 타격을 줄 방안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최근 매출 감소가 ’물류 대란‘ 등 산업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최근 매출 추세를 보면, 네이버를 중심으로 타 이커머스 업체들이 쿠팡의 물류량을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역시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 노동권 관점에서 우려되긴 하나, 이에 대한 대책을 만드는 것은 미국기업 쿠팡을 상대로 한 것보다는 어려움이 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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