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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명절은 누군가에겐 가족과 안부를 나누는 시간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고립이 가장 선명해지는 시간이다. 사회가 들썩일수록 움직임과 만남이 당연해질수록 누군가는 더욱 또렷하게 멈춰 서고 있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간한 ‘사회적 관심 계층의 생활특성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전화 통화나 대면 만남 자체가 극히 제한된 집단인 이른바 ‘교류저조층’은 전체 인구의 4.9%에 해당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모바일로 교류한 상대가 20명에 못 미치거나 교류 횟수가 500회 이하로 집계되며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됐다.
이들은 하루 평균 통화 횟수가 1.2회에 불과했으며 한 달 평균 카드 사용액도 64만6000원에 머물러 사회·경제 활동 전반에서 위축됐다. 관계의 부족이 곧 생활 반경의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고립을 고착화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명절은 이러한 격차를 극대화하는 순간이다. 대다수 시민의 이동과 소비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교류저조층은 오히려 사회적 흐름에서 더욱 이탈한다. 가족 중심의 명절 문화는 이들을 제도 밖, 관계 밖으로 밀어내며 고립을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로 환원해 왔다.
그러나 교류저조층의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밀려난 이들이 이동·소비·경제활동 전반에서 위축되는 현상은 명백한 구조적 취약성의 신호다. 이번 기획에서는 교류저조층의 삶을 들여다보고 반복되는 고립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개입과 사회적 책임이 왜 필요한지를 묻고자 한다.
데이터로 본 대한민국 교류저조층의 실태
교류저조층은 전체 인구의 4.9%였다. 남성 비중(5.1%)이 여성(4.7%)보다 높았고 1인 가구보다는 다인 가구에서 더 많이 나타났다.
이들의 한 달간 모바일 교류 대상자는 평균 11.3명으로 전체 평균(49.7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발신 통화는 하루 1.2회로 전체 평균(7.1건)을 크게 밑돌고 있었다. 출퇴근과 나들이를 포함한 하루 이동 거리는 10.3㎞, 집이나 직장이 아닌 곳에서 보내는 외출 시간은 하루 평균 1.3시간에 머물렀다. 반면 집 근처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19.3시간으로 전체 인구(16시간)에 비해 3.3시간 길었다.
경제활동 참여도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류저조층 중 근로활동을 하는 사람은 26.2%로, 전체 평균(64.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근로자 중 상시근로자 비중은 52.8%로 낮았지만 일용근로자(25.7%)와 자영업자(21.5%) 비중은 전체 평균(14.1%, 18.8%) 대비 높았다. 연중 근로일수 또한 평균 240일로 전체 평균(285일)보다 45일 짧았다. 교류저조층의 월평균 카드 사용액은 64만6000원으로 전체 인구(189만원)의 약 3분의 1 수준을 보였다.
설 연휴, 교류저조층의 삶은 어떨까
설 연휴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친척들과 안부를 나누고 한 해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두에게 이 시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친척과 또래의 근황이 한자리에 모이고 취업·결혼·승진 같은 삶의 이정표가 자연스럽게 비교되는 자리에서 누군가는 위축된다. 혹은 가족의 기대가 덕담이라는 모습으로 건네질 때 그 말은 어떤 이들에게는 응원이 아닌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은둔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는 설 연휴는 가장 피하고 싶은 시간일 수 있다. “요즘 뭐 하니”라는 질문 한마디가 지난 시간을 통째로 설명하라는 요구처럼 느껴지고 대답 대신 침묵을 택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다. 반복되는 비교와 기대,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단절은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그 무력감은 다시 사람을 좁은 방 안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과거 고립·은둔을 경험했던 A씨는 명절을 ‘휴식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체감하는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질문을 받아야 하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거나 숨겨야 하는 자리로 느껴졌다”며 “명절이 끝나면 괜히 참석했다는 생각과 함께 심리적으로 크게 소진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시간이 지날수록 친척을 만나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됐고 결국 참석을 중단했다. 참여하지 않으면서 당장의 불편은 줄었지만 동시에 ‘나는 왜 이것도 못하나’라는 자책감이 따라왔다”며 “교류가 어려운 이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만나는 행위’ 그 자체보다 만난 뒤 감당해야 할 평가와 기대”라고 덧붙였다.
A씨의 사례와 같이 명절은 관계의 단절을 잠시 드러내는 사건이 아니라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립·은둔 비율이 늘고 있는 만큼 이를 개인의 적응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구조적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선제적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사회적 고립도는 33.0%로 나타났다. 19세 이상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이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1인 가구 증가, 개인주의 심화, 탈가족화 등 사회구조의 변화가 지목된다. 개인과 이웃, 지역사회 간 연결망이 약화되면서 사회적 관계의 밀도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사회적 연결망이 약화된 상황에서 명절은 관계 회복의 기회가 되기보다 오히려 단절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명절을 앞둔 여론조사에서도 ‘교류’보다 ‘휴식’이 우선 선택지로 나타났다.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한국데이터컨설팅업체 피앰아이(PMI)가 전국 20~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계획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설 연휴 계획으로 ‘집에서 휴식’(44.7%)을 선택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이는 명절의 대표 일정인 ‘고향(본가) 방문’(33.6%) 보다 높다.
설 연휴 스트레스로는 ‘경제적 지출 부담’(41.2%)부터 ‘가사 노동·명절 음식 준비’(18.8%), ‘가족·친척 관계의 불편함’(14.8%), ‘장거리 이동·교통 체증’(10.5%), ‘사적인 질문·간섭’(10.3%), ‘연휴 후 일상 복귀 부담’(4.4%) 등이었다.
누군가의 고립을 따듯히 감싸주기 위해서는
명절 고립은 개인의 마음가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연락 한 통, 방문 한 번이 끊긴 자리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의 공백이 놓여 있다. 교류저조층의 고립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과 연결망이 동시에 느슨해진 결과다. 그렇다면 해법 역시 ‘관계를 다시 잇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명절은 고립이 가장 선명해지는 시기인 만큼 일시적 위로를 넘어선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홀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지역 기반 돌봄 프로그램, 1인 가구와 은둔 청년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활동, 심리 지원과 상담 연계 체계는 더 이상 선택적 복지가 아니다. 이에 명절 기간 한시적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적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씨는 “명절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변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됐던 것은 기대나 계획을 요구하지 않는 접촉”이라며 “답장을 재촉하지 않는 안부 메시지, 만남을 강권하기보다 가볍게 건네는 짧은 인사, 명절에 참석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된다는 신호가 심리적 압박을 크게 줄여줬다. 행동을 요구하기보다 관계가 안전하다는 경험을 먼저 주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교류저조층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정책과 사업을 통해 지원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책무이자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필요하다”며 “다만 국가가 전면에 나서는 동시에 국가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공공의 제도적 지원과 지역사회 기반의 자발적 연대가 병행될 때, 고립 문제에 보다 지속 가능한 대응이 가능하다”며 “지자체 사업도 필요하지만 이웃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족, 이웃이 주변을 돌아보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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