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철 더봄] 한무제가 열고 마르코 폴로가 감탄했다, 비단길의 성지 ‘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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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철 더봄] 한무제가 열고 마르코 폴로가 감탄했다, 비단길의 성지 ‘돈황’

여성경제신문 2026-02-16 13:00:00 신고

개관-돈황(敦煌)의 지리·역사적 의미

가욕관(嘉峪關)에서 돈황까지는 약 370㎞로서 기차로는 4~5시간이 걸린다. 돈황은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녹주(綠洲, 오아시스) 도시이며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이자 고대로부터 교역과 문화교류의 중심지다.

'실크로드(Silk Road, 독일어 Seidenstrassen)'라는 이름은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 1833~1905)이 1877년 출간한 <중국> (China)이라는 책에서 처음 명명했다. 실크로드는 천산산맥·곤륜산맥·히말라야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른 물이 형성한 오아시스로 연결되어 있다. 돈황은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오아시스다.

만리장성의 마지막 관문 가욕관을 떠나면 황량한 고비(과벽, 戈壁)사막이 펼쳐진다. 이 사막은 몽골 남부와 중국 북부에 걸쳐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 사막으로 면적은 약 129만~130만㎢에 달한다. 주로 모래가 아닌 자갈·바위·황무지로 건조한 평원과 협곡·모래언덕·염호(鹽湖) 등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돈황 고비 사막에 있는 유명한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 호수와 아름다운 탑의 저녁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돈황 고비 사막에 있는 유명한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 호수와 아름다운 탑의 저녁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고비(Gobi)'라는 말은 몽골어로 '물이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철로는 직선구간으로 오른쪽에는 광활한 고비사막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건조한 협곡을 따라 군데군데 방풍림과 오아시스 농경지 주변에 형성된 작은 마을도 보인다. 북쪽 멀리는 기련산(祁連山)의 설봉이 아련하게 보인다. 건조한 사막환경에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단지가 조성되어 과거와 현재, 현대과학과 원시적 자연환경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석양 무렵 철도 직선구간을 달리면 서쪽으로 지는 해가 기차와 경주를 한다. 오랫동안 붉은 노을을 감상하는 기억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가끔 단단한 지반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다란 열차의 행렬은 기묘한 기하학적 곡선을 그린다.

돈황에 도착하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경이로움의 대상이다. 돈황은 중국 중서부의 광활한 타클라마칸사막(塔克拉玛干沙漠, Taklamakan Desert)과 타림분지(Tarim Basin. 타리목분지, 塔里木盆地)로 들어가는 동쪽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다. 

타림분지는 북쪽의 천산산맥(天山山脈), 남쪽의 곤륜산맥(崑崙山脈), 서쪽은 카라코람산맥의 파미르고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내륙 분지다. 평균 해발고도는 1000m이며 간헐천인 타림강은 약 2179㎞로 중국에서 가장 긴 내륙하천이다.

타림분지는 신강(新疆) 위구르(Uyghur, 維吾爾) 자치구 지역으로 면적은 좁게는 40만~50만㎢에서 넓게는 약 100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 내륙 분지다. 신강 위구르 지역 원주민은 위구르족으로 현재 중국 중앙정부가 특별관리하는 지역이다. 소수민족 문제나 인권 문제로 가장 위험한 지구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타클라마칸사막이 있다. 이 사막은 80~90%가 모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람에 따라 끊임없이 모래언덕이 이동해 지형이 변하기 때문에 '유동성 사막'이라고 부른다. 모래폭풍이 자주 불고 일정한 길이 고정되지 않아 여름에는 50도 이상,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로 기온이 극단적이다. 그만큼 위험해 '불모지', '죽음의 바다' 혹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라 불렀다.

실크로드 상인들은 이 타클라마칸과 타림분지를 피해서 목적지에 따라 천산남로(天山南路)와 천산북로(天山北路)로 나뉘어 이동했다.

돈황은 하서주랑이 끝나고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남로와 북로가 갈라지는 지점 중 남로 쪽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광활한 사막과 산맥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출처=블로그 jskang4u
돈황은 하서주랑이 끝나고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남로와 북로가 갈라지는 지점 중 남로 쪽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광활한 사막과 산맥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출처=블로그 jskang4u

돈황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세 가지는 막고굴(莫高窟), 월아천(月牙泉), 명사산(鳴沙山)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환상적이고 아득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돈황은 중국 중원에서 보면 서역(西域)으로 가는 두 갈래 비단길의 출발점이다. 천산산맥과 기련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지하로 흐르다 용출된 오아시스에 건설된 도시다.

아시아를 동서로 나누면 중국·한국·일본은 동역(東域)에 속한다. 서역은 돈황으로부터 서북쪽으로 98㎞ 떨어진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의 경계를 벗어난 서쪽 지역을 가리킨다.

후한 시대 역사가 반고(班固)가 쓴 <한서> (漢書) 서역전(西域傳)에는 서역 나라들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오아시스에 성을 건설해 정주하는 민족국가를 거국(居國)이라 하고 이를 성곽국이라고 했다. 반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유목으로 생활하는 오손(烏孫)·강거(康居)·엄채(奄蔡)·대월지(大月氏) 등의 나라들은 행국(行國)이라 불렀다.

실크로드 전체 지도. 대자연과 역사를 공부하고 인생을 되새기는 길이다. /출처=블로그 jskang4u
실크로드 전체 지도. 대자연과 역사를 공부하고 인생을 되새기는 길이다. /출처=블로그 jskang4u

돈황은 기원전 88년 한무제가 장건(張蹇)을 보내어 서역 방어와 비단길 개척을 위해 돈황군(敦煌郡)을 설치하면서 처음 중국 행정구역에 편입됐다( <漢書·地理志>  참고). 이후 당나라 때까지 중앙정부가 직접 통치했다. 1955년 감숙성 주천시(酒泉市) 아래의 돈황현(敦煌縣)이 되었고 1987년 돈황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처음 군사·경제적 전략 요충지로 발전했으나 이후 문화·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가 된다. 한무제 시기 하서사군(河西四郡)의 제일 서쪽으로서 실크로드 개척의 실질적 출발점이었으며 후한 말기에는 불교가 인도로부터 전래되는 관문이 됐다.

돈황이 역사·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때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와 수당(隨唐) 시대였다. 이 시기 왕성한 교역과 함께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현재 중국이나 한국에 돈황학(敦煌學)이라는 독자적 학문 분야가 생기게 되는 계기도 이때 형성됐다.

중국 역사에서 삼국시대 이후 펼쳐지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의 혼란기는 돈황이 실질적으로 새로운 학문 형성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학술사에서 유학이 국교로 정립된 이후 400여년 동안 유학은 중국의 학문·사상·정치이념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한나라 말기 이후 민간 종교로서 도교가 형성되고 불교가 전래하면서 유·불·도(儒佛道) 삼교가 정립하게 되는 계기가 돈황에서 시작됐다.

위진남북조 시대 사상계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개인의 안위를 중시하는 위진현학(魏晉玄學)이 유행했다. 이는 노자(老子)의 도가사상(道家思想)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심이었다. 이들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변경으로 모여든 곳이 바로 돈황이었다.

이 학자들은 서역에서 들어오는 불교 경전들을 중국어로 해석했다. 인도의 불교가 전래하며 선종(禪宗)이 형성된 것은 도가사상을 중시하는 학자들이 불경을 도가적으로 해석한 영향이 크다.

당시 인도와 서역 등 각지에서 온 승려들이 교류하며 불교 경전을 연구하고 수행하며 불교사상을 전파했다. 특히 이들은 단순한 학술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석벽에 동굴을 파고 조각을 새기며 벽화를 그렸는데 그곳이 3대 불교 유적지인 막고굴(莫高窟)이다. 관리와 상인, 귀족 등 다양한 계층이 이들의 연구와 수행 및 석굴 조성에 재정을 지원했다.

돈황은 구도(求道)의 중심지이자 또 다른 구도를 위해 떠나는 출발지였다. 위진남북조 시기 중원의 지식인들은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있는 안정된 변방이 필요했다. 동시에 학문·문화·신앙 등의 정신적 만족을 거둘 수 있는 곳이 필요했는데 그곳이 바로 돈황이었다. 

역사적으로 전한시기 처음 서하사군의 하나로 돈황이 건설된 후 불교 확산과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고 인도·중앙아시아 등지의 서역 승려들이 경유하거나 머물면서 초기 석굴을 조성하기 시작했다.불교 사상과 예술의 융합이었다.

수당(隨唐)시기는 실크로드의 전성기였다. 돈황은 국제적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막고굴 벽화와 조각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사상적으로 불교·도교·유교가 융합하고 서역의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장소였다.

오대(五代)와 북송(北宋) 시기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지방 세력이 강해지면서 돈황은 자유로운 학문 활동의 장이 됐다. 많은 문서가 생산되고 민간 신앙과 불교 사상, 지역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 위치 /게티이미지뱅크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 위치 /게티이미지뱅크

몽골인들이 원(元)이라는 세계사에서 가장 넓은 제국을 이루었을 때도 돈황은 세계적 교역의 중심지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돈황을 경유해 원나라로 들어가 쿠빌라이 칸의 조정에서 17년 동안 관리로 일했다. 이때 돈황은 불교와 이슬람, 동양문화와 서방 문화가 교류하는 중심지였고 아울러 경제·문화적으로 번영했다. 

그러나 명청(明淸)시기에는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줄이고 일부 쇄국정책으로 국경과 해상을 통제함으로써 문화적 번영이 멈추고 국경 방어의 거점으로만 인식됐다. 특히 청나라 후기에는 서양 열강에 의해 막고굴이 도굴당하고 수많은 유물이 약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돈황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돈황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정립됐고 여행 붐이 일어나 많은 관광객이 돈황을 찾고 문화예술 행사로 사막의 밤하늘을 밝힌다. 진정한 사막의 '빛나는 진주(明珠)'로 다시 빛나고 있다. 

돈황에 가서 밤하늘과 사막을 보고고 모래가 우는 소리를 들어보시라. 2000년 전 구도자들이 남긴 유적과 그들의 염원을 느껴보시라. 돈황은 자연과 인간이 만든 기적의 신기루(蜃氣樓, mirage)와 같은 도시다.

☞ 하서사군= 중국 한나라 무제가 하서주랑 지역에 설치한 네 개의 행정구역이다. 무위·장액·주천·돈황군을 일컬으며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흉노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서역 무역의 거점 역할을 했다.

여성경제신문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chonwangko@naver.com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원주) 겸임교수,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안양대학교 교양대학 교수(학장), 중국 남경대학 철학계 방문학자 및 율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산동성 태산학술원 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녹문 임성주의 삶과 철학> , <중국 고대사상과 제자백가> 등 7권이 있으며 <이정의 신유학> , <정현의 주역> 등 10권의 역서를 냈다. 다산학술문화재단의 <정본 여유당전서> 사업 책임연구원 및 <목민심서> 교감(校勘)에 참여했다. 2015년 율곡학술대상을 수상했으며, 동양철학 및 동서양 철학과 역사를 주제로 한 120편 이상의 전문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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