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프랑화가 거침없는 강세를 이어가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스위스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대기업부터 중소 제조업체까지 환율 부담을 호소하는 가운데, 시장은 스위스 국립은행(SNB)의 추가 완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위스 프랑화는 지난해 14% 급등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3% 이상 추가 상승했다. 현재 달러당 0.77스위스프랑 수준으로, 2015년 이른바 ‘충격적 평가절상’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프랑화 강세는 지정학적 불안과 달러 약세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면서 프랑화 수요가 꾸준히 유입된 것이다. 문제는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상품 및 서비스 수출에 의존하는 스위스 경제 구조상, 환율 상승이 곧 기업 실적 악화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제약 대기업 로슈와 시계 제조업체 스와치그룹은 프랑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2025년 매출이 약 5%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를 보유한 리치몬트 역시 환율 역풍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실적 변동성을 경고했다.
대기업은 일부 생산기지의 해외 분산과 환헤지 전략으로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지만, 비용의 상당 부분을 스위스 내에서 지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다르다. 스위스 기계·전기공학·금속 산업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스위스메카닉 측은 “유로와 달러 대비 프랑화 강세가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으로 버티겠지만 장기화될 경우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위스 수출기업들은 최근 1년간 관세 인상과 환율 강세라는 ‘이중고’를 겪어왔다. 미국과 스위스는 대미 수출 관세를 39%에서 15%로 낮추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아직 구속력 있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여기에 프랑화 초강세까지 겹치면서 가격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취리히 소재 로이드 캐피털의 세드릭 자크 파트너는 “현재 스위스 기업들에 프랑화 강세는 일종의 ‘영구적인 관세’와 같다”고 진단했다. 환율 자체가 수출품 가격을 끌어올려 사실상의 추가 비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환율 부담은 증시에도 반영되고 있다. 스위스 대표 지수인 스위스 시장지수(SMI)는 올해 들어 2% 상승에 그쳐, 4% 오른 스톡스 유럽 600과 약 5% 상승한 FTSE 100보다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UBS는 스위스 프랑이 통화 바스켓 대비 1% 상승할 때마다 상장 기업들의 이익이 평균 0.9%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환율 변동이 기업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직접적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SNB가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 인하 카드에 다시 손을 댈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스위스 기준금리는 0%다. 추가 인하가 단행될 경우 스위스는 다시 마이너스 금리 체제로 복귀하게 된다. 스왑 시장은 올해 안에 마이너스 금리로 돌아설 확률을 약 30%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시장 왜곡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부작용 우려도 크다. 환율 안정과 금융 건전성 사이에서 SNB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따라, 프랑화 강세의 향방과 스위스 수출 산업의 체력도 함께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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