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상원 영화과 워크숍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 〈모과 Quince〉에서 연출· 각본· 편집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은 제주여성영화제 관객상을 비롯해 서울독립영화제 ‘깜짝상영작’ 등으로 국내에서 먼저 주목받은 후, 2026년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선정돼 해외에서 존재감을 넓히는 중이다. 백소혜는 “따뜻한 이야기에 유머를 넣은 영화, 외로운 이들 곁에 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감독으로서 도약을 꿈꾸며 나아간다.
브라운 트렌치코트와 셔츠, 슈즈는 모두 Lemaire.
제48회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모과〉가 초청돼 프랑스에 머무는 중이죠. 클레르몽페랑의 분위기는 얼마나 뜨겁습니까
처음 와보는 이곳 영화제는 축제 같아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줄 서서 영화를 기다리고 있고, 극장에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영화가 시작하기 전 트레일러가 상영될 때 관중이 야유하는 듯한 소리를 내요. “우우” 하면서요. 트레일러가 끝나고 영화제 로고가 뜨면 그제야 모두 환호성을 내지르죠. 이 과정이 어떤 의식처럼 보였어요(웃음).
그 영화제만의 문화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환호에 변주를 두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관중은 박수를 딱 두 번 쳐요. 영화가 끝나고 타이틀이 뜰 때 한 번,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 또 한 번.
감독님의 첫 번째 단편영화이자 〈모과〉는 아직 지망생인 중년의 시인 지망생 ‘수건’과 무명배우 ‘희지’가 끝까지 버티기 위해 몸부림치고 애틋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를 얼마나 뜨겁게 달궜나요
영화제 기간 동안 총 여덟 번 상영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건 1400석을 구비한 ‘콕토’ 극장에서의 상영인데요. 이 영화제에서 가장 큰 극장이죠. 이곳에서 무대인사를 했는데 신선한 감정이 일렁였습니다. 그 외의 상영은 영화제 끝까지 진행되고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듣는 건 어땠나요
행사가 없는 날, 극장 맨 뒷자리에 앉아 영화를 봤어요. 제 시선은 스크린이 아닌 관객에게 머물렀고요. ‘한국식 말장난이 많은 영화인데 외국인이 이 정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려했지만, 몇몇 관객들이 우는 걸 목격했습니다(웃음). 아, 문화를 떠나 꿈과 사랑이라는 주제는 만국공통의 이야기라는 걸 느꼈어요.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직접 와서 “나도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데, 우리가 문화는 달라도 느끼는 감정은 똑같아. 고마워”라고 말해 주거나, 직접 메일까지 보내는 경우도 있어서 인간은 모두 비슷한 정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배우 지망생인 희지는 부지런히 오디션을 보며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길 기다린다. 그런 희지의 마음을 헤아리듯 흰머리를 찾을 때마다 “발견!”이라 외치며 지망생인 연인을 응원한다.
〈모과〉의 시작은
2024년 여름밤에 그 이야기를 만났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당시 저는 언제까지 지망생으로 살 수 있을까 자문하며 많이 불안했거든요. 회사에 다니다가 서른 살에 영화학교에 들어갔어요. 예술학교이다 보니 제일 많이 들었던 조언이 ‘버텨라’였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결국 꿈을 이룬다고요. 그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불안해지더라고요. 끝까지 버티라 해서 버텼는데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늙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요. 내가 중년의 나이에도 지망생이라면 나는 과연 건강하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휩싸인 어느 날 밤, 〈모과〉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내가 지망생으로 산다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모습이라도 괜찮겠다는 감정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써 갔죠.
제목이 왜 〈모과〉입니까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어요. 아빠 차 조수석 앞에 항상 모과가 놓여 있었죠. 늘 그 차에 탄 채, 모과를 바라보며 등교했어요. 차에서 내릴 땐 늘 아빠에게 곤란한 말을 했어요. 이를테면 문제집 값을 달라거나, 부탁의 말들. 저는 몹시 내성적이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려운 나머지 아빠의 시선을 피해 모과에 시선을 두고 곤란한 말을 꺼내곤 했죠. 그럼 아빠는 늘 제 말을 기다려 주셨어요. 그래서 모과는 늘 인상적인 과일로 남아 있어요. 〈모과〉 전에 첫 번째 단편영화를 준비할 때 자주 들었던 곡도 백현진의 ’모과’이고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모과는 상처와 슬픈 기억을 선사했는데, 이 곡을 들으면서 지망생의 모습이 모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망생, 꿈꾸는 자들의 모습과 모과는 어떤 점에서 닮았나요
꿈꿀 때, 처음에는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기분은 아주 찰나이고, 이후의 모습은 되게 못났죠. 나보다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을 질투하는 것처럼, 간절하기 때문에 그때 행동이 굉장히 못나 보이죠. 못생긴 모과처럼요. 그럼에도 제가 어릴 때 아빠 차에 있었던 모과는 항상 싱그러운 향기를 뿜었거든요. 그래서 꿈꾸는 사람들은 꿈꾸는 동안 자주 못생겨지지만, 그럼에도 그 공간을 바꿀 수 있는 향을 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사고 과정을 거쳐 하루만에 시나리오를 썼어요. 모과라는 제목이 명확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됐죠.
블랙 가죽 재킷은 Courrèges.
수건과 희지, 두 인물의 이름도 사물의 이름을 본뜬 건가요
수건은 ‘물 수’와 ‘굳셀 건’이라는 한자 뜻을 만들어, 어디로 흐르든 원하는 방향으로 굳세게 가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희지는 흰 도화지처럼 자신이 그리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죠. 저 혼자 아는 의미지만 이렇게라도 그들의 이름에 의미를 붙여 응원하고 싶었어요.
왜 이들 관계를 연인으로 정의했나요
중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나이 드는 걸 무서워했어요.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빨라지고요. 왠지 한국은 꿈과 사랑이 젊은이의 특권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잖아요. 이 젊음이 지나면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꿈과 사랑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두려워하면서, 꿈과 사랑이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라 그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재 감독님은 꿈과 사랑이라는 특권을 얼마나 누리고 있나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고민합니다. 청춘이라면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너무 혼자인 상태로 지낸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배우 박종환과 오지후가 두 연인을 연기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매력을 발견했나요
예전부터 두 분의 팬이었습니다. 박종환 배우는 〈백역사〉(2014)에서 처음 봤어요.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박종환 배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환히 웃으며 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쳥년인데도 마음속에 늙지 않는 소년을 품은 것 같은 얼굴에 매료됐습니다. 오지후 배우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진행하는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죠. 오지후 배우를 생각하며 ‘희지’를 그렸던 것 같아요. 물론 그분을 실제로 뵌 적은 없었지만요.
오지후 배우에게 희지라는 인물을 그릴 때 당신을 참고했다는 비하인드를 밝혔나요
아뇨. 〈모과〉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나를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그렸지”라는 피드백을 주셨죠.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해서 신기했어요.
고단한 하루 끝에 만난 연인, 수건과 희지는 만나자마자 아이가 된다. 가난한 연인은 옥탑방 옥상에서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월세가 2주나 밀린 대화를 나누며 여전히 꿈을 꾼다.
각본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을 때 두 배우가 제일 공감했던 지점은
프로덕션 기간이 짧았어요.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촬영에 접근했어요. 대본을 미리 리딩하거나 연기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매 신마다 인물의 마음과 감정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죠. 더불어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 꿈과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나눴거든요. 그러면 두 배우가 살아온 삶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묻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지양했던 것은
감정적이지 말 것. 사랑하는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과정을 다룬 멜로 장르지만 지나치게 사람들이 슬퍼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도 가깝지 않도록, 이야기도 조금 관조적인 관점에서 진행되도록 했어요.
지금 〈모과〉를 다시 보고 새로운 감정이 일렁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새삼 내 세계관의 증거라고 느껴지는 장면이 있는지
우리 촬영의 목적은 ‘발견’이었어요. 촬영감독님이 제안한 방식이죠. 콘티 없이, 현장에서 우리가 발견한 자연스러움을 담는 거예요. 배우가 현장에 도착한 후부터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도록 동선 리허설을 짰죠. 그 리허설을 기반으로 촬영하면서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이 영화의 첫 신이었어요. 옥탑방에 누워 있는 남자의 등허리를 여자가 밟아주는 장면이죠. 신음소리가 은은하게 가득 차고 옥탑방 장판에 묻은 볕은 서서히 두 인물의 실루엣 그림자로 번집니다. 낮은 옥탑방 천장에 짚은 손에서부터 카메라가 천천히 내려가며 배우 얼굴을 비춰요. 이 장면이 제 세계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추구하는 작업방식이 잘 담겨 있어요.
조금 즉흥적인 성향도 있군요
맞아요. 제가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는데 미리 계획한 것보다 현장에서 발견한 게 더 좋다고 느껴지면 직감적으로 판단해서 포착하는 편이에요. 자유롭죠. 〈모과〉의 강정훈 촬영감독님도 즉흥적이라 합이 잘 맞았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꿨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꾼 건 아니에요. 그땐 누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제나 “영화”라고 대답했을 뿐이죠. 그러나 영화감독은 천재만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영화 감독이 될 생각은 못했어요. 대신 영화 다음으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공부에 뛰어들었어요. 그렇게 일로 이어졌고요.
천재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화감독이 본인의 업이 됐는데
스스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현장에서 누가 감독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낯설어요. 감독님 말고 이름을 불러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웃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는데, 감독님이 영화에 매료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속 시끄러운 아이였어요. 항상 고민과 생각을 안고 살았는데,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내 안의 짐을 떨칠 수 있었어요. 늘 침대에 누워 그날 본 영화 장면을 떠올리면서 천장을 응시하며 그려보곤 했어요. 나를 주인공 삼아 상상하기도 했죠.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를 기억하나요
초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본 〈백만장자의 첫사랑〉. 넓은 스크린으로 보며 현빈이 정말 잘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언지 묻고 싶네요
정말 어렵네요. 세 개를 꼽는다면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2006),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2011), 〈더 원더스〉(2014).
늘 동경했던 여성감독이나 창작가가 있나요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가장 닮고 싶었던 감독은 이탈리아의 ‘알리체 로르와커’예요. 이분도 저처럼 커리어의 시작이 다큐멘터리였죠. 사람들이 그분 영화를 ‘매지컬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할 만큼 마법 같은 영화를 만듭니다. 이 감독의 영화는 어떤 이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들어요. 다큐멘터리처럼요. 대표작은 〈더 원더스〉(2014)와 〈행복한 라짜로 Lazzaro Felice〉(2018)입니다. 제가 닮고 싶은 영화의 모습을 만들어내죠.
어떤 걸 창작해야 ‘감독님’이라 불려도 쑥스럽지 않을까요
저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인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누군가 〈모과〉를 보고 남긴 리뷰가 기억나는데요.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다.’ 공감했죠. 내가 원하는 건 직업인으로서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라 너무 목표를 명확히 잡지 않고 스스로 ‘나는 영화감독 상태다’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가까운 목표가 장편영화 제작인데요. 만약 장편을 완성해도 스스로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모과〉의 수건과 희지를 현실에서 만난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요
스포일러지만 마지막에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아주 작은 다툼 때문이에요. 일용직 노동자인 수건은 손을 다쳐 보상금을 받아요. 그래서 두 사람은 맛있는 밥을 먹고 모텔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죠. 다음 날, 이들은 희지의 동창생을 우연히 마주치는데 “너 남자친구도 배우야?”라는 동창생의 물음에 희지는 자랑스럽게 “이 사람은 시인이야”라고 소개합니다. 그러자 수건은 “저는 시인이 아니고요, 시인 지망생이에요”라고 다시 소개하죠. 희지는 왜 당신이 시인이 아니냐고 묻지만, 수건은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시인이라고 할 수 있냐고 해요. 이 장면을 떠올리며, 수건을 언젠가 만났을 때 “수건 씨,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래요”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달리 말해 본인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두 사람이 헤어질 때, 희지가 수건에게 “잘 살아, 나도 잘 살아 볼게”라는 말과 함께 “당신은 꿈꾸는 동안 조금 못났지만 그래도 멋있었어”라고 말합니다. 희지의 말을 스스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모과〉 다음에는 어떤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가족영화에 대한 열망이 늘 마음속에 있어요. 가족이란 랜덤으로 팀이 된 거잖아요. 이 끈끈한 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요. 어떤 과정으로, 어떤 방식으로 팀이 돼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가족을 팀으로 보는 이야기의 제목도 모과처럼 과일이 될까요(웃음)
그건 아직 모르겠네요(웃음).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 그 중심은 가족과 꿈, 사랑, 어떤 것이 됐든 인생이 짙게 묻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클레르몽페랑 영화제를 마치고, 영화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감독으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텐데요. 끝과 시작의 경계에 선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아요
니체의 말 중에 ‘나는 내 생각으로부터 너무 달궈져, 내 마음에 스스로 화상을 입히고 있다. 그러니 먼지투성이인 방 밖을 나갈 수밖에’라는 말을 좋아해요. 모든 이야기는 집 밖을 나서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문을 여는 게 굉장히 어려울 수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 두려움을 뚫고 집 밖을 나서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합니다. 외톨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죠.
당신의 영화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담겼어요
네, GV에서 모더레이터인 평론가께서 해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지망생이란 멈춰 있는 상태 같지만 이 영화에서 지망생인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죠. 앞으로도 버티는 시간 속에서 계속 움직이고 애쓰는 이야기를 탐구하고 싶어요. 도종환 시인의 〈모과〉라는 책에 나오는 말도 생각나네요. ‘모과는 상처가 많을수록 향이 짙어진다’는 내용이 있어요. 꿈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계속 상처를 얻는데, 그럴수록 더 아름답게 성장하는 지망생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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