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면서,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 있게 지배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회장 권한의 과도한 집중과 장기 집권 구조 개편을 예고했다. 이를 두고 금융사의 공적 역할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라는 평가와, 관치금융의 재현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직썰> 은 한국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형성과 변화를 짚고, 현재 논쟁의 역사적 맥락과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직썰> |
[직썰 / 손성은 기자] 1997년 11월, 한국은 외환 유동성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 사건은 한국 금융산업의 구조를 근본부터 바꿔 놓았다. 정부 주도의 시중 유동성 공급 창구였던 은행 중심 금융 생태계는 사실상 종말을 맞았고, 복합금융그룹 중심의 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80년대 관치금융과 재벌 중심 금융, 1990년대의 제한적 금융자율화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금융지주 체제로 수렴됐다. 오늘날 금융지주 중심 구조의 출발점은 IMF 사태였다.
◇IMF 구제금융…관치금융의 한계가 드러나다
외환위기는 정부 주도로 형성된 은행 중심 금융 구조의 취약성을 한꺼번에 노출시켰다. 위기 이전 한국 금융시스템에서 은행은 사실상 산업정책 수행 기관이었다. 정책 방향에 따라 대기업과 특정 산업으로 자금이 집중됐고, 은행의 여신 판단은 독립적 리스크 관리보다 정책 판단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들어 금융자율화와 금융실명제 도입 등 제도 개편이 이어졌지만, 여신 관행과 지배구조 전반에서 정부 영향력은 여전했다. 대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은 빠르게 늘었지만, 은행 내부의 리스크 관리 체계는 충분히 구축되지 못했다.
그 결과는 1997년 한보철강 부도를 기점으로 한 대기업·금융권의 연쇄 부실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이른바 ‘조상제한서’로 불리던 시중은행 체제는 해체됐다.
◇관치와 결별 선언…금융지주 체제의 출범
IMF 구제금융 이후 금융산업 구조조정은 전면적으로 진행됐다. 다수의 은행과 종합금융사, 투신사가 퇴출되거나 합병됐고, 은행권에서는 대규모 인력 감축과 점포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금융감독 체계도 재편됐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출범으로 부실 금융기관 정리와 구조조정이 일원화됐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기존 은행 중심 구조와 업권별 칸막이 체계로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금융그룹 차원의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시행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선진 금융체제 도입 요구가 맞물리면서 금융지주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2001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으로 출범한 한빛은행을 모태로 우리금융지주가 설립됐다. 같은 해 신한은행을 중심으로 신한금융지주도 출범했다. 금융산업의 중심축은 개별 은행에서 복합금융그룹으로 이동했다.
◇‘관치의 연장선’…지배구조 논쟁의 씨앗
문제는 금융지주 체제가 정부 주도로 출범했다는 점이다. 관치금융과의 결별을 목표로 도입된 제도였지만, 실제로는 정부 영향력이 상당 기간 유지된 초대형 금융그룹이 만들어졌다.
대표적 사례가 우리금융이다. 우리금융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그룹으로, 한동안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였다. 금융권에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정책 당국이 최대주주로 존재하는 구조에서 회장 선임과 주요 인사가 정책 시각과 분리되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금융지주 체제는 제도적으로 관치금융을 청산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소유가 분산된 구조 속에서 주주 감시 기능은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고, 공적자금과 감독체계가 결합된 거대 금융그룹이 형성됐다.
IMF 사태가 만든 이 구조는 이후 한국 금융지주 지배구조 논쟁의 출발점이 됐다. 논쟁의 초점은 단순한 관치금융 논란을 넘어, 금융그룹 내부에서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가라는 문제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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