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가는 K-뷰티, 인종차별 마케팅 논란
"2026년에 여전히 이런 마케팅"…'흙톤'·'흑형'도
"차별적 요소 마케팅 반복시 인종차별 관념 강화"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몽골 아기 블러셔'라니…."
지난달 국내 한 화장품 마케팅에 등장한 '몽골 아기 블러셔' 표현을 두고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몽골 아기 블러셔'란 붉은 색감의 볼연지를 몽골 아이들의 붉은 뺨에 빗대어 마케팅에 활용한 용어다. 이 붉은 뺨이란 몽골 지역의 추위와 건조한 기후 탓에 피부가 갈라지고 튼 흔적이다.
이에 "인종차별이잖아"(다음 카페 이용자 'ne***'), "내가 몽골 사람이었으면 약간 비하하는 거로 들릴 것 같음"(커뮤니티 '더쿠' 익명 이용자),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왜 고정관념인지도 모른다"(People don't even know why a stereotype is even a stereotype)(인스타그램 이용자 'ne***') 등 비판이 이어졌다.
14일 현재 해당 표현은 제품 페이지에서 '햇볕에 살짝 달아오른 듯한 색상'으로 슬그머니 수정된 상태다.
K-뷰티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가운데 여전히 인종 감수성 부족을 드러내는 사례들에 비판이 나온다.
◇ "몽골인으로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몽골 아기 블러셔' 논란은 지난달 19일 몽골인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할리운 씨가 릴스에 "한국 브랜드가 몽골 아이들을 고정관념으로 묘사한 거야?"(Did Korean brand just stereotype mongolian kids?)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며 점화됐다.
조회수 27만회를 기록한 해당 영상에서 할리운 씨는 "몽골인으로서 나는 붉은 뺨이 혹독한 날씨 아래 유목 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관련 있다고 말 할 수 있다"며 "솔직히 2026년에도 여전히 (마케팅이) 이런 식이라는 게 실망스럽다"(As a mongolian, I can say that red cheeks are often associated with people who lived a nomadic lifestyle because of harsh weather conditions. To be honest I'm quite disappointed we're still doing this in 2026)고 지적했다.
몽골 국적 네티즌들도 "그 블러셔 색상 설명은 이상하고 불필요하다"(that blush color description is weird and unnecessary), "한 국가의 이름을 (제품에) 붙이는 것 자체가 매우 이상하다"(Very weird just naming one countries name), "몽골인으로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As a Mongolian, I have mixed feelings) 등 동조하는 댓글을 달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서도 "외국 아기 머리색을 상품명으로 쓰거나 혼혈 렌즈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아기 뺨이라고 불려도 과연 괜찮겠느냐", "k-쌍수나 k-필러라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겠냐" 등 비판이 이어졌다. "서양에서 '한국인 눈'(korean eye) 화장을 하면 난리가 날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몽골인 노민(25) 씨는 '몽골 아기 블러셔'에 대해 "과거에는 볼이 빨개진 일부 아이들이 놀림을 받아 시골 출신임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사람들이 각 나라의 문화적·환경적 배경을 이해하고 이러한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무심코 사용해온 '살색'이라는 표현과 겹쳐진다.
과거 한국에서는 연필이나 물감의 연한 베이지색을 당연하게 '살색'이라 불렀으나, 이는 백인이나 황인종의 피부색을 '표준'으로 전제해 인종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에게 소외감을 준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거쳐 2002년부터 '살구색'이나 '연주황색'으로 명칭이 수정됐다.
◇ '외국 아기 입술 혈색'…"시대 역행하는 단어"
K-뷰티 업계에서 인종차별적 표현 논란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지난해 9월 한 화장품 브랜드가 쿠션 제품 색상에 '흙톤'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흑인의 어두운 피부색을 빗댄 명백한 인종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흙톤'이라는 표현은 해외 소비자들도 보는데 부적절하다"(bb***), "어두운 피부를 더럽다는 이미지로 연결하는 사고방식"(b2***)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2016년에는 한 화장품 브랜드가 "까매도 용서되는 건 혜리뿐"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가 어두운 피부를 결점처럼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논란이 커지자 사과문을 게시했다.
또 비슷한 시기 '흑형 로션'이라는 이름의 크림이 등장해 흑인을 캐릭터화한 이미지와 함께 제품 효과를 강조하며 인종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4년 8월에는 '외국 아기 입술 혈색'이라는 문구가 블러셔 마케팅에 활용되며 논란을 낳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입술 색이 인종에 따라 다양함에도, 국내에서 '외국 아기'가 사실상 백인 이미지만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엑스에는 "인종차별적이고 시대를 역행하는 단어인데 아무런 자각 없이 사용한다"(do***), "(해당 제품을) 살 마음이 싹 사라지다"(is***) 등 반응이 올라왔다.
'미백'과 '화이트닝'이라는 용어 역시 문제로 떠올랐다.
백인의 흰 피부를 미의 기준으로 전제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에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는 점차 '브라이트닝'(brightening) 등 중립적 용어가 쓰이고 있다.
2020년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자사 제품 마케팅에서 '화이트', '화이트닝' 등 피부톤 우열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인종차별적 표현 걸러내는 시스템 필요"
뷰티 브랜드 스타트업 마케팅 담당자 김모(28) 씨는 "대부분의 마케팅 문구는 소비자에게 색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몽골 아기 블러셔'처럼 특정 국가나 이미지를 활용하면 색감이 한 번에 떠오르기 때문에 바이럴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없이 관행처럼 쓰여 온 표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대상화하거나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은 결국 브랜드 신뢰를 해칠 수밖에 없다"며 "K-뷰티가 이미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경쟁하는 만큼,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인종차별적 표현이 포함되지 않도록 검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차별적인 요소가 포함된 마케팅이 반복되면 인종차별적 관념을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이 정도 표현은 괜찮은 것이구나',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규제 수준의 표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각국에서 해당 표현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K-뷰티일수록 이러한 검증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부 자극적인 인종차별 마케팅 표현이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온라인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먼저 눈길을 잡아끈 뒤 내용적으로 이를 무마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이즈가 끝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으면 브랜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목을 끈 이후에는 소비자 인식과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한 일종의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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