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획, 세포, 그리고 유령: 이태원 언덕 위, 물감의 원초적 생명력과 신체적 리듬이 충돌하는 강렬한 2인전.
- 디-스탠스: 용리단길에서 마주하는 세 작가의 서로 다른 회화적 온도와 팽팽한 예술적 긴장감.
- 임박한 회화: 서촌 옥인길의 밀도 높은 공간에서 색채의 층으로 재구성한 일상의 감각적 기록.
미술계에 비수기가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명확하다.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 날씨는 사람을 집 안에 가둬두고, 전시는 관객을 기다리다 지친다. 그래서 프리즈 아트페어를 비롯한 굵직한 전시와 대형 이벤트는 어김없이 봄과 가을을 노린다.
하지만 컬렉션의 규모가 작을 뿐, 미술을 향한 마음만큼은 결코 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마이크로 아트 컬렉터들. 이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늦겨울의 한산함을 좋아한다.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볼 수 있잖아!”라며, 서울의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쪽은 회화다. 오래된 매체지만 동시대 작가들의 손에서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붓질의 온도, 색의 층, 화면 위에 남은 흔적들. 거창한 이벤트 대신, 작지만 밀도 높은 회화 전시를 찾기 좋은 계절이다.
획, 세포, 그리고 유령
〈획, 세포, 그리고 유령〉의 포스터 사진이다. / 출처: 갤러리에스피 제공
이태원 언덕을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갤러리SP는 1989년 ‘서울판화공방’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동시대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온 공간이다. 긴 역사만큼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 젊은 작가를 함께 소개하는 프로그램 기획이 탁월하다.
이번 전시는 1998년생 장순원과 2000년생 정주원, 두 명의 젊은 회화 작가의 2인전으로 제목부터 강렬하다. 〈획, 세포, 그리고 유령〉은 화면 위에서 면과 선이 얽히고, 붓질은 무언가를 형상화하기 직전의 상태로 머문 채 맴돈다. 무엇을 그렸는지 보다, 무엇이 생겨나려는지 상상하며 보게 되는 회화다.
무엇을 그렸는지 보다, 무엇이 생겨나려는지 상상하며 보게 된다. / 출처: 갤러리 에스피 제공
붓질의 제스처에서 감지되는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이 화면 위에 고스란히 남는다. / 출처: 갤러리에스피 제공
원초적인 붓질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회화’라는 오랜 매체를 젊은 작가들이 어떻게 다시 쓰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결론을 주지 않아서 더 흥미롭다. 붓질의 제스처에서 감지되는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이 화면 위에 고스란히 남는다는 점도 매력적. 물감은 마르고, 체온은 식지 않는다.
장소: 갤러리에스피 Gallery SP
기간: 1월 22일~2월 28일
디-스탠스 Di-Stance
〈디-스탠스〉의 포스터 사진이다. / 출처: 라흰갤러리 제공
요즘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용리단길 골목에 자리한 라흰갤러리는 신진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온 공간이다. 전시뿐 아니라 스튜디오를 포함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작가의 단기적 주목보다 장기적인 성장을 지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같은 ‘회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지만 김상소, 임윤묵, 장승근의 결은 놀랄 만큼 다르다. / 출처: 라흰갤러리
서로 다른 온도의 회화가 한 공간에서 팽팽하게 맞서며, 그 긴장감이 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 출처: 라흰갤러리
이번 전시는 김상소, 임윤묵, 장승근 세 명의 젊은 회화 작가가 참여한 단체전이다. 같은 ‘회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지만, 화면에서 느껴지는 결은 놀랄 만큼 다르다. 소설·연극·영화 등 픽션의 장면을 재구성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김상소, 반복되는 붓질로 묵묵하게 일상의 감정을 환기하는 임윤묵, 그리고 불안과 위태로움을 과감한 제스처로 밀어붙이는 장승근까지. 서로 다른 온도의 회화가 한 공간에서 팽팽하게 맞서며, 그 긴장감이 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장소: 라흰갤러리
기간: 2월 12일~3월 28일
임박한 회화
〈임박한 회화〉의 포스터 사진이다. / 출처: 페이지룸8 제공
서촌 옥인길 골목에 위치한 페이지룸8은 전시와 출판의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표방한다. 전시뿐 아니라 예술 서적과 프린트 프로젝트까지 함께 선보이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작지만 단단한’ 공간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곳들 중 하나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장면과 감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에 옮겼다. / 출처: 페이지룸8 제공
회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작가들이 일상을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이 머릿속에 스며 들 듯 들어온다. / 출처: 페이지룸8
이번 전시는 김주현, 김지윤, 박정원 세 명의 작가가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장면과 감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에 옮겼다. 회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작가들이 일상을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이 머릿속에 스며 들 듯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김주현은 의도를 드러내기보다 오로지 색채를 쌓는 데 집중한다. 캔버스에 겹겹이 쌓인 색의 층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숨은 감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김지윤의 작업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 풍경의 한 순간을 붙잡아 둔 듯하다. 작가가 마주한 장면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박정원의 회화는 스크래치와 스탬핑 등 독특한 흔적을 통해 화면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남긴다.
장소: 페이지룸8 PAGEROOM8
기간: 1월 27일~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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