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 살 땐 이거지”…현금부자들이 백화점 앞 OO매장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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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샤 살 땐 이거지”…현금부자들이 백화점 앞 OO매장 가는 이유

투데이신문 2026-02-14 14:12: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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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매장 앞 오픈런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최근 주요 백화점 상권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매장 입장 전, 인근 상품권 매매소를 먼저 들르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다. 고가 명품을 구매하기 위한 ‘사전 절차’로 상품권 교환이 사실상 정착한 셈이다.

1000만원 이상 결제 시 통상 2~3% 수준으로 유통되는 상품권 할인율은 곧바로 수십만 원의 차익으로 이어진다. 명품 가격이 연이어 인상되며 일부 가방과 주얼리는 2000만원을 훌쩍 넘는 상황에서, 1%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반면 카드 일시불 결제 시 포인트 적립률은 0.5~1% 수준에 머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적립 조건보다 ‘즉시 할인’이 훨씬 직관적이고 확실한 이익으로 다가온다.

14일 유통·금융권에 따르면 고물가와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명품 소비는 견조하다. 각 사 감사보고서를 종합하면 ‘에루샤’ 3사의 한국 법인 매출은 2024년 약 4조6000억원에 달했다. 명품의 소비는 줄지 않았지만, 결제 방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카드 포인트보다 매력적인 ‘현금성 할인’의 힘

상품권 결제 확산의 배경에는 혜택 구조의 변화가 자리한다. 과거 카드사들은 고액 소비층을 겨냥해 장기간 무이자 할부, 캐시백, 포인트 적립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가맹점 수수료 인하 기조가 이어지고 조달 금리가 상승하면서, 카드사가 설계할 수 있는 혜택의 ‘폭’은 눈에 띄게 좁아졌다.

카드채 금리는 4%대를 웃도는 반면, 대형 가맹점 수수료는 1%대 중반에 묶여 있다. 결제액이 커질수록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할 마케팅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이를 보전할 수익 기반은 충분치 않다. 실제 지난해 9월 말 기준 8개 전업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6.5% 감소했고, 누적 순이익도 14.9% 줄었다.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은 1.45%로 상승하며 자산 건전성 관리 부담도 커졌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카드사들은 고액 일시불 경쟁에서 점진적으로 발을 빼고 있다. 무이자 할부 축소, 고가 가맹점 대상 프로모션 축소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수익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수익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고액 결제에 과도한 혜택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며 “이익이 남지 않는 시장에서 무리한 경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상품권은 시장에서 2~3% 할인된 가격에 유통되며, 일부 백화점에서는 VIP 등급 산정 실적에도 동일하게 반영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등급 유지’와 ‘즉시 할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온라인·오프라인 상품권 유통 채널이 다변화되면서 접근성도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절약을 넘어선 소비 전략으로 해석한다. 고액 소비자는 가격 인상 기조 속에서 체감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결제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상품권 시장의 유동성을 키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상품권 매장 간판ⓒ투데이신문
상품권 매장 간판ⓒ투데이신문

‘할인’은 상품권, ‘시간’은 카드…결제의 이원화

그렇다고 카드의 역할이 축소된 것만은 아니다. 상품권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이 있다. 바로 ‘시간의 유예’다. 수천만 원대 제품을 한 번에 결제해 할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소비자는 한정적이다. 상당수 소비자는 자산을 운용하거나 현금 흐름을 관리해야 한다. 이때 카드 할부는 여전히 유효한 선택지다.

최근 카드사들이 무이자 할부를 줄이고 유이자 할부 비중을 높이는 흐름은 조달 비용 상승을 반영한 구조 조정의 성격이 강하다. 카드사는 일시불 혜택 경쟁 대신, 유이자 할부를 통해 조달 금리를 상회하는 수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을 재편하고 있다. 이는 카드사가 단순 결제 중개자를 넘어 ‘유동성 공급자’로서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품권이 ‘현재의 구매 가격’을 낮춰주는 수단이라면, 카드는 ‘미래 소득을 앞당겨 쓰는 권리’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금융 기능을 수행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브랜드가 가격 결정권을 쥐고 할인을 배제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스스로 5% 안팎의 할인 효과를 내는 상품권을 결제 수단으로 삼아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라며 “결제 시장 역시 즉시 결제가 가능한 자산가는 ‘가격적 실익(상품권)’을, 유동성이 필요한 소비자는 ‘지불의 시차(카드 할부)’를 선택하는 분화 과정에 있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신용카드학회장)는 “명품 고액 결제에서 상품권 활용이 느는 것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고금리 부담에 따른 카드사의 혜택 축소 흐름과 직접 연관된다”며 특히 최근의 무이자 할부 축소 현상에 대해 “단순한 서비스 감축이 아니라, 유동성 관리 중심의 ‘신용 공급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카드사가 결제 수수료 수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본연의 신용 사업 모델에 집중하며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명품 매장 앞 상품권 매매소의 긴 줄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가 아니라, 고금리와 저수수료 구조 속에서 카드사와 소비자가 각자의 이해를 반영해 선택한 결과다. ‘가격을 낮추는 소비자’와 ‘리스크를 낮추는 카드사’의 전략이 교차하면서, 명품 결제 시장은 할인과 시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보다 정교하게 재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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