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는 마음, 내일로 기꺼이 향하기 위한 내면의 근육, 삶을 지탱하는 힘.
사랑을 말하는 영화 속 장면들을 모았다. 우리의 세계가 각양각색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며.
짐 자무시 <패터슨>
“As if the rest of the song didn’t have to be there”
짐 자무시 <패터슨>
“마치 노래의 나머지는 노래 속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짐 자무시는 사랑을 극적인 사건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남자의 반복되는 하루를 따라가며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찾아간다.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운전하고, 점심시간에 시를 쓰고, 저녁이면 개를 산책시키고,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는 사람. ‘패터슨’의 삶은 눈에 띄지 않게 성실하고 조용히 반복된다. 그가 하는 일은 주어진 시간을 정확히 통과하는 것이다. 버스 운전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승객들의 대화를 듣고, 도시의 리듬을 몸에 새기며 세상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그 골몰하는 순간들 사이사이 사랑은 고요히 번뜩인다. 그가 시를 쓰는 방식 역시 그렇다. 패터슨의 시는 성냥갑, 폭포, 반복되는 이름 같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 관찰은 사랑의 다른 이름처럼 다가온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오래 바라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는 보여준다.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애정이 되는 순간들을. 사랑은 특별한 순간에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세상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이다.
알랭 기로디 <미세리코르디아>
“무상의 사랑을 잘 아니까. 영원히 침묵하며 사랑할 수 있어요.”
알랭 기로디 <미세리코르디아>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나. 어디까지가 사랑의 범주인가. 욕망, 질투, 분노, 의심, 죄책감, 집착 등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속 인물들이 분출하는 모든 감정은 곧 사랑으로 귀결된다. 제목으로 쓰인 ‘자비’마저(미세리코르디아는 자비를 뜻한다).
엄마와 친구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을 넘어 망상에 빠지는 ‘뱅상’. 그와의 갈등 끝에 충동적으로 뱅상을 죽이고 은폐한 ‘제레미’. 제레미를 향한 의심과 관심 사이에서 은근한 욕정을 드러내는 뱅상의 엄마 ‘마르틴’. 그리고 곁에 두고 싶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제레미를 비호하는 사제 ‘필리프’까지. 진실을 막고, 금기를 깨는 이들의 욕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매일 보는 낙으로’ 평생 비밀을 지키겠다 하며 ‘무상의 사랑’을 표현한 필리프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마음 앞에서 옳고 그름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중요치 않다. 그것이 용납할 수 없는 파멸에 이른다 해도 말이다.
<미세리코르디아>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감정의 발현 자체가 곧 ‘사랑’이 아닐까. 그것이 꼭 아름답고 성스럽지 않더라도. 곱게 포장된 세계 밖에도 사랑이 있음을, 그 또한 사랑임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자비에 돌란 <로렌스 애니웨이>
“우리의 사랑은 안전하지 않았지만, 어리석은 건 아니었어. ”
자비에 돌란 <로렌스 애니웨이>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의 사전적 의미를 곱씹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얼마나’ 아끼고, ‘어떻게’ 귀중히 여겨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의 실마리를 최근에 다시 본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80~1990년대 몬트리올을 배경으로, 교사이자 소설을 쓰는 청년 ‘로렌스’와 그의 연인 ‘프레드’가 10여 년에 걸쳐 써나간 서사를 담은 영화.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단단해진 둘만의 세계는 “남은 일생을 여자로 살고 싶다”는 로렌스의 고백으로 커다란 균열을 맞이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던 시기, ‘평범하지 않은’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주변의 시선, 사그라지지 않는 내면의 고통과 순간적인 환희가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 속에서도 서로를 오롯이 포용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는 사랑의 본질을 강렬하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또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사랑에 주어지는 온갖 잣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듯했다. 자기만의 크기와 깊이를 지닌 마음이라면, 어떤 형태든 사랑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안전할’ 필요도, ‘어리석을’ 수도 없는 모든 사랑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를 로렌스와 프레드에게서 배웠다.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It’s this secret world that exists right there in public, unnoticed, that no one else knows about.”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거기에는 비밀스러운 세계가 존재해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세계.”
늘 영화 <프란시스 하>가 그리는 ‘프란시스’와 ‘소피’의 관계가 바로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일 거라 생각해왔다. 혼자서는 완전하지 않은 나의 세계를 빈 부분에 꼭 맞는 퍼즐 조각처럼 채워주는 존재, 나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인. 그리하여 우정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끝내 설명할 수 없는 관계. 영화는 첫 시퀀스부터 두 사람만의 공고한 세계를 비추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둘의 관계는 프란시스의 삶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위태롭게 흘러간다. 영화의 중반,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던 시절을 지나 소피가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해 떠난 뒤, 프란시스는 관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순간에 대해 들려준다. “파티에서 각자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웃고 있는데, 눈을 돌리다가 서로에게 시선이 멈추는 거예요.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없이, 단지 이번 생에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서. 언젠가 끝날 인생이라 재밌고 슬프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비밀스러운 세계가 존재해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세계.” 이때 프란시스가 말하는 세계란 의심할 여지 없이 소피와 함께하는 세계일 것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 불러야 할까. 이 물음에 답하듯 영화는 엔딩을 얼마 남기지 않고 군중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머무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 짧은 순간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살아오며 만난 나의 여자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정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던 얼굴들을.
마이크 밀스 <비기너스>
“You’ve lost so much. What if I can’t make up for?”
마이크 밀스 <비기너스>
“넌 너무 많은 걸 잃었어. 내가 그걸 채워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영화 <비기너스>는 일흔여섯 나이에 동성애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버지 ‘할’과 그의 죽음 이후 상실을 통과하는 아들 ‘올리버’를 나란히 비추며 사랑을 맞이하는 마음에 대해 묻는다. 사랑을 시작하는 일만큼은 초보자일수록 쉬울지도 모른다. 이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초반의 설렘보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서로의 생에 깊이 들어가는 일에 따르는 책임, 이별의 고통을 먼저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올리버에게 사랑은 특히 두려운 일이다. 아버지의 커밍아웃은 자신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존재론적 혼란과 어머니의 외로움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는 슬픔을 남겼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연애를 묵묵히 지켜보며 그 여생에 동행하는 이유는 헤어짐 이후에 남을 후회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올리버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이전에 미처 애도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빈자리까지 마주하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간 파티에서 ‘안나’라는 이름의 여자가 쪽지를 건넨다. “슬픈데 왜 파티에 왔어요?(Why are you at a party if you’re sad?)” 농담과 파티용 분장,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눈에 밴 슬픔을 알아본 그 앞에서 올리버는 조금씩 솔직해진다.
내게 사랑의 정의는 수시로 바뀌지만, 닮고 싶은 사랑의 태도만큼은 오래도록 안나의 그것이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며, 주저하기보다 용기 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안나의 애정과 관심으로 변한 올리버는 이제 안나의 두려움에 먼저 손을 내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이란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그의 지난날까지 끌어안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서로의 미래를 변화시킨다고 믿게 되었다. 과거는 여러 형태로 찾아와 현재를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 내밀한 상처까지 함께 들여다보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나날이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는 이들 앞에서 문득 깨달았다. 시작을 두려워하기엔 우리는 매일이 처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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