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 넘게 이어진 자산가격 상승세 속에 누적된 밸류에이션 부담이 AI 불안을 계기로 본격적인 재평가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AI 투자 수익화 여부에 대한 의구심과 더불어, 기존 산업의 수익모델을 잠식할 수 있다는 ‘파괴적 혁신’ 우려가 동시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이를 두고 “AI 열광(AI-phoria)에서 AI 공포(AI-phobia)로의 전환”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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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기존산업 잠식…소프트웨어 ETF 또 2.8% 급락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지수는 전장 대비 1.34% 내린 4만9451.98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벤치마크인 S&P500 지수는 1.57% 빠진 6832.76을, 기술주 비중이 큰 나스닥 지수도 2.04% 내린 2만2597.15에 장을 마쳤다.
낙폭의 중심에는 대형 기술주가 있었다. 최근 실적이 크게 나쁘지 않았던 종목들까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개별 기업 이슈를 넘어 기술 섹터 전반의 밸류에이션과 성장 기대를 재점검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애플은 5% 이상 밀렸고 아마존과 메타도 2% 이상 떨어졌다.
특히 시스코 시스템즈는 마진 전망 둔화를 이유로 12% 급락했다. 메모리칩 가격 상승이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는 신호가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소프트웨어 업종 역시 최근 2주간 “인공지능(AI)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잠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면서 매출 성장 지속 가능성과 가격 결정력에 대한 의심이 동시에 커진 상태다. 대표적인 AI 관련주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4.8% 하락했고, 오라클은 2% 이상 밀리다 약보합(-0.43%)을 기록했다. 아이셰어즈 확장 테크-소프트웨어 ETF(IGV)는 2.8% 떨어지며 최근 고점 대비 약 32%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다.
톰 에세이 세븐스리포트 대표는 “이번 강세장 이후 AI와 기술 주도 랠리에 대해 이렇게 불확실한 전망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라며 “기술주가 회복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번 약세를 단순한 조정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지속 급등 전망…샌디스크 5.2%↑
다만 기술주 전반이 흔들린 가운데서도 메모리 관련주는 강세를 보였다. 미국 메모리업체 마이크론은 장중 438.77달러까지 오르다 소폭 상승 마감했다. 샌디스크 주가는 5.2% 급등했다.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버 최고경영자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난 분기 메모리 가격이 40~50% 상승했고, 이번 분기에는 계약 가격이 두 배로 뛸 수 있다”며 “공급 부족은 단기 변동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이 촉매가 됐다.
이는 메모리 업체의 가격 결정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AI 서버 증설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업황 개선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차세대 HBM4를 둘러싼 경쟁과 관련해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회사 측은 이미 대량 생산이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흐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긍정적이다. D램·낸드 가격 상승과 제한적인 증설 기조는 전형적인 업황 상승 국면의 특징이다. 다만 HP와 델 등 PC 업체는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마진 압박을 받을 수 있고 결국 비용은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수요 둔화 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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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확보하자에 금·은 동반 급락…국채에 자금 쏠려
눈에 띄는 점은 금과 은의 동반 급락이다. 금 가격은 3% 이상 떨어진 온스당 4936달러에 거래되고 있고, 은 가격은 10% 가까이 급락 중이다. 통상 주식시장이 흔들리면 금이 안전자산으로 부각되지만, 이날은 오히려 귀금속이 급락했다. 주식 손실이 확대되자 일부 투자자들이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매도해 현금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레버리지 축소와 포지션 정리가 동시에 진행된 장세였다는 해석이다.
제임스 스틸 HSBC 수석 귀금속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 급락이 현금 확보를 위한 금 매도로 이어졌다”며 “춘절을 앞두고 중국의 금 수요가 약화된 점도 시장 지지력을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금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 유입됐다. 10년물 국채금리는 무려 8.1bp(1bp=0.01%포인트) 빠진 4.102%까지 떨어졌고, 연준 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도 5.4bp 하락한 3.458%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날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며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했지만, 변동성이 커지자 일단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시장 관심은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로 옮겨가고 있다. 월가 컨센서스는 전년 대비 2.5% 상승으로, 12월(2.7%)보다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원 CPI 역시 비슷한 흐름이 예상되지만, 월간 기준으로는 0.3% 상승이 전망돼 서비스 물가의 끈적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게 평가되고 있으나, 7월 인하 기대는 여전히 가격에 반영된 상태다. 다만 일부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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