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시기·국적 등 따라 '구화교'와 '신화교'로 분류
전통 화교 한때 8만명 넘었으나 현재 "1만∼1만8천명선"
"고령화로 명맥 유지 힘들어"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주목받은 '중식 대가' 후덕죽 셰프는 귀화한 화교 출신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안성재 셰프를 두고는 미국 국적자임에도 화교 출신이라는 주장이 돌기도 했다.
화교는 어떤 사람들이고 우리나라에는 화교가 얼마나 있을까. 온라인에서 국내 화교 인구를 검색해보면 적게는 2만여명에서 많게는 60여만명까지 천차만별 결과를 볼 수 있다.
이에 정부의 비자 발급 통계와 관련 연구 등을 토대로 현재 국내 화교 규모를 가늠해봤다.
◇ 한국 화교는 임오군란 때 유래…한중 수교 후 '신화교' 개념 등장
국어사전상 화교(華僑)의 의미는 '외국에서 사는 중국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화교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올 때 함께 온 청나라 상인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화교 이민사가 140여년에 이르는 셈이다.
지역별로는 중국 산둥(山東)성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4년 발간한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 연구에세이에 따르면 주한대북(타이베이)대표부가 2002년 말 한국 각지의 화교협회 호적 인구 통계에 근거해 출신지를 조사한 결과, 산둥성 출신이 90%를 차지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지역의 화인(華人, 조상이 중국 민족이지만 현지 국적을 취득한 집단)이 주로 광둥(廣東) 출신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국내 화교의 절대다수가 중국 산둥성 출신인데도 대부분 국적은 중국이 아닌 중화민국(대만)이다.
1949년 국내에 대만 대사관이 설치된 데다 한국과 중국 간 오랜 국교 단절로 대만 국적 취득이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국내 화교의 개념은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크게 변화했다.
수교를 계기로 그동안 제한적이었던 중국인 유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거주 중국 국적자와 조선족을 '화교'의 범위에 넣어야 하는지 문제가 제기됐다.
국내 화교 인구 통계가 집계 주체에 따라 들쑥날쑥한 것도 이때 시작됐다.
학계에선 일반적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에 체류하면서 대만 국적을 지니고 한국 영주 자격을 갖춘 이들을 '구(舊) 화교'로, 태생과 국적이 모두 중국이면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국내 유입된 이주자를 '신(新) 화교'로 분류한다.
그러나 구화교와 신화교 구분 없이 모두 화교로 보기도 하고, 대만 국적자로 한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대와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 남편과 결혼해 3년 이상 거주한 (대만인) 아내도 화교에 포함하는 등 집계 주체에 따라 적용 기준이 제각각이다.
◇ 화교 숫자는…법무부 "1만여명"·한성화교협회 "1만5천~1만8천명"
이렇다 보니 화교 인구수 통계 숫자도 제각각이다.
비자 제도 변경도 화교 인구 가늠을 어렵게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일반적으로 화교는 장기 체류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F2 비자, 그중에서도 5년 이상 합법 체류한 이들에게 주는 F2-99 비자로 주로 거주했다.
그러다 2002년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영주거주비자(F5)가 신설됐다.
F5는 국내 체류 및 취업 활동에 제한이 없어 사실상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상위 비자로 간주된다. F2 비자 취득 5년이 지난 외국인에게만 발급돼 상당수의 F2 소지 화교들이 F5로 전환했다.
이밖에 범죄 등의 이력으로 장기 체류 비자를 받을 수 없는 일부 화교는 단기 비자인 F1 자격으로 국내에 머물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2025년 12월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에 따르면 대만 국적의 F5 비자 소지자는 1만8명, F1과 F2 비자 소지자는 각각 387명과 2천354명으로, 총 1만2천749명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들 모두를 전통적 개념의 화교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결혼 이민 등 전통적인 화교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지만, 다른 요건을 충족해 해당 비자를 받은 대만 국적자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올해 1월 기준으로 F1·2·5 비자 소지자 가운데 국내에서 출생해 거주 중인 대만 국적자를 추리면 1만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화교 단체 내부에서 파악한 숫자는 또 다르다.
재한 화교들의 호적 등 각종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단체인 한성화교협회는 전통적인 의미의 화교 수를 1만5천명 안팎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성화교협회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협회도 알지 못하나 대략 1만5천명 안팎, 많아야 1만8천명 수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화교협회는 대만 국적의 이민 1세대와 대만 출신으로 국내 화교와 결혼해 3년 이상 거주한 여성도 화교 범주에 넣어 집계한다.
한국 화교와 관련해 연구 논문을 여럿 발표한 이정희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는 구화교 인구를 "1만~1만5천명 선"으로 제시했다.
우심화 아신대학교 중국역사학 교수는 2021년 발표한 '한국 화교학교의 현황과 전망' 연구 보고서에서 2021년 3월 법무부 국내 등록 외국인 국적별 현황을 토대로 한 대만 국적자는 1만8천104명이며 여기에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화교를 더하고 대만 등지에 거주하는 화교 수를 제외하면 대략 1만여명의 화교만이 국내에 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 일제 강점기 '8만명' 기록도…제도적 차별 등으로 감소
이렇게 보면 현재 화교 인구는 대략 1만명대 선으로, 2000년대 2만~3만명 통계는 물론, 일제강점기의 8만명대 기록에 비하면 많게는 5분의 1로 쪼그라든 수준이다.
인천발전연구원이 2003년 발표한 '한국화교의 경제활동 및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식 통계상 민간화교 이주자는 1883년 209명에서 1910년 1만1천818명, 1920년 2만3천989명, 1930년 6만9천109명 등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화교 인구는 1942~1943년 8만2천661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남북분단 직후 남한의 화교 인구는 1만7천687명에 그쳤다. 당시 화교 인구의 80% 이상이 북한 거주 화교였기 때문이다.
국내 화교는 이후 자연 증가하며 1972년에는 3만3천명까지 늘어났지만 다시 줄어들었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나 사업 참여를 제약하는 등 화교 견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상당수 화교가 미국, 대만, 호주 등으로 재이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1970년의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으로 화교를 포함한 외국인은 가구당 661㎡(200평) 이하의 주택 한 채와 165㎡(50평) 이하의 점포 한 채만 소유할 수 있었다. 여기에 두 차례 화폐개혁이 현금을 주로 보유하던 화교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
이정희 교수는 "(화교는) 우리 정부의 제도적 차별 때문에 공무원이 될 수도 없고, 기업 취업도 쉽지 않았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화교 학교를 마친 뒤 대만 등지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고 1970년대까지는 대만이 더 잘 살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과거 화교들이 주로 운영하던 중식업에 한국인들이 진출하면서 생계가 어려워진 것도 재이주가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이후 화교 숫자는 2000년대까지 2만여명 선을 유지하다 2006년 기준 2만5천844명(사단법인 신아시아연구소 '한국 화교 사회의 위상 변화'. 2008)까지 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화교 인구는 그때보다도 1만명가량 더 줄었다.
한성화교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 때 해외로 갔다가 비자 발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최근 들어 귀화 신청자들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귀화하는 데 2년가량 걸리긴 하나 아주 어렵지 않고, 대만 국적으로는 국내서 취업하거나 해외 출장을 가기가 어렵다 보니 귀화 결정이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한중 수교 후 등장한 '신화교'…조선족까지 포함 시 100만명대
화교의 의미를 이른바 '신화교'까지 확장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태생과 국적이 모두 중국으로 1992년 이후 국내로 이주한 중국인을 가리키는 신화교는 취업이나 유학 등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경우가 많다.
조선족과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며 이들까지 화교로 보면 많게는 100만명 이상으로도 집계된다.
이정희 교수는 "작년 기준으로 신화교는 100만명 규모로, 이 중 중국 국적 조선족이 60만~70만명, 한족이 30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신화교는 한국에 오래 거주하며 한국 사회에 동화된 구화교와 달리 중국인 정체성이 강하다.
2015년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가 발간한 '사회과학연구 제23호'에 수록된 '한국화교집단에 대한 분석 : 정체성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신화교의 한국 사람이나 거주 지역에 대한 애착이 다른 국적의 한국 체류 외국인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신화교의 경우 다른 국적의 체류 외국인보다 본국인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으며 중국 국적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신화교들이 상대적으로 중국인으로서 강한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화교와도 확연히 구분된다"고 밝혔다.
이는 구화교에 비해 한국 체류 기간이 짧은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한국인으로 동화된 구화교는 1992년 이후 온 신화교와는 다르고, 다르게 대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화교인구는 지속해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언급한 우심화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은 화교학교인 한성화교중학(한국한성화교중고등학교)의 재학생은 2021년 500여명으로, 1999년 대비 45% 이상 감소했다.
2021년 기준 화교 학교 학생 중 화교는 3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는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학생과 한국인 학생이다.
우 교수는 보고서에서 "국내에 분산돼 살고 있는 1만여명의 화교 가운데는 고령자가 있고, 화교의 해외 유출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화교 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도 "대를 이어갈 화교가 줄어들고, 대부분이 노인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가면 전통 화교는 명맥을 유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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