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설탕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제당 3사가 4년 넘게 설탕 가격을 담합해오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과징금이 부과됐다. 이번에 부과된 과징금은 담합 사건 역사상 역대 두 번째 규모로, 전 국민이 경제 불황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식탁 물가를 볼모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는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사업자가 B2B(사업자 간) 거래 설탕 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합의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083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설탕 판매가격 변경 계획을 사전에 공유하고 합의했다.
이들의 수법은 치밀했다. 원재료인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원가 상승분을 즉각 반영하기 위해 인상 시기와 폭을 맞췄다. 만약 가격 인상을 거절하는 수요처(음료·과자 제조사 등)가 있으면 3사가 공동으로 압박을 가하는 ‘집단 대응’ 방식까지 동원했다. 반대로 원당 가격이 내릴 때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3사는 직급별로 촘촘한 ‘담합 채널’을 가동했다. 대표급과 본부장급 모임에서 큰 틀의 가격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영업팀장들이 월 최대 9차례씩 만나 구체적인 거래처별 협상 시기와 대응 방안을 조율했다.
이번 사건이 더욱 공분을 사는 이유는 이들이 이미 2007년 동일한 혐의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 ‘상습범’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들은 2024년 3월 공정위가 현장 조사를 시작하며 수사망을 좁혀오는 중에도 약 1년 이상 담합을 유지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조사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공동 대응을 논의하는 등 국가 행정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까지 포착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 처벌 경험 때문에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구두 연락만 취하는 등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다”며 “약 1년 7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담합의 전말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고공행진 중인 식료품 물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설탕은 과자, 음료, 빵 등 식품 산업 전반에 쓰이는 필수 기초 소재로, 설탕 가격 담합은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체당 평균 과징금 부과액은 약 1,361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정위는 앞으로 ‘가격 변경 현황 보고명령’을 통해 이들 업체의 가격 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계획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은밀하게 지속된 약탈적 담합을 제재한 것”이라며 “현재 조사 중인 밀가루, 전분당, 계란, 돼지고기 등 민생 밀접 품목에 대해서도 법 위반 확인 시 엄정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소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과점 구조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설탕 산업은 고율의 관세와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는 특성상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가 무역장벽을 세워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보장해줬음에도, 기업들이 이를 담합의 토양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뉴스로드] 박혜림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Copyright ⓒ 뉴스로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