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끝나는 스토킹, 저는 5년 시한부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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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끝나는 스토킹, 저는 5년 시한부 인생입니다'

BBC News 코리아 2026-02-12 19:44: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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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인으로부터 상해와 스토킹범죄 피해를 입은 민지(가명)씨가 BBC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BBC/최유진
전 연인으로부터 상해와 스토킹범죄 피해를 입은 민지(가명)씨가 BBC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가해자는 출소하면 반드시 저에게 보복할 겁니다. 제가 죽어야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제 인생이 5년 시한부 삶처럼 느껴집니다."

이른바 '인천 스토킹' 피해자 김민지(가명)씨가 말한 '5년'은 전 남자친구이자 스토킹 가해자인 A씨가 법원에서 선고받은 형량이다.

민지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진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며 "뉴스에서 스토킹 피해자 사망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만 살아남은 것 같은 죄책감도 든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는 언젠가 가해자가 돌아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슷한 시기, 부산 연제구 오피스텔 살인 사건 피해자의 동생 정유리(가명)씨는 "저의 삶은 언니가 세상을 떠난 그 순간에 멈춰있다"며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2024년 9월 3일 저녁, 집에서 평소처럼 쉬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안부 전화인 줄 알고 받았는데, 엄마가 막 울면서 '언니가 죽었다, 어떻게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춘 것 같았어요. 꿈꾸는 것 같았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유리씨의 언니 가영(가명)씨는 배달 음식을 받기 위해 문을 열었다가 대기하고 있던 전 연인 김모씨(32) 휘두른 흉기에 살해됐다.

반복되는 교제폭력·스토킹 범죄

최근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스토킹·교제 살인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대구에서도 스토킹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피의자가 피해자 집에 침입해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서울 중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40대 남성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관계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경찰에 입건된 스토킹 범죄 사건은 최근 3년간 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BBC는 피해자 민지씨와 유족 유리씨와의 인터뷰, 그리고 수사 및 재판 기록 분석을 통해 교제폭력과 스토킹범죄 피해가 반복되는 이유와 제도적 실효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최근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스토킹 및 교제 살인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Getty Images
최근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스토킹 및 교제 살인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주의: 이 기사에는 스토킹 범죄 등 다소 불편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돼 있습니다.

[사건 타임라인]

  • 인천 스토킹 사건 피해자(김민지·가명)와 가해자 A씨: 2023년 7월 교제 시작 → 교제 초반 통제·감시 →2023년 8월~11월 차량 내 폭행·상해 → 2023년 12월 법원 잠정조치(접근·연락 금지) → 2024년 5월까지 연락·접근 지속(잠정조치 위반 94회)
  • 부산 연제구 살인 사건 피해자(정가영·가명)와 김모 씨: 2023년 7월 첫 만남 → 11월부터 교제 시작 → 2024년 6월 폭행 및 휴대전화 파손 → 2024년 6~8월 3차례 경찰 신고→ 2024년 7월 긴급 주거지원으로 거주지 이동 → 2024년 9월 3일 살해

출처: 피해자 진술 및 법원 판결문

'시작은 달콤하게'...그리고 '통제'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교제폭력 관계의 시작은 일반 연인들의 관계처럼 달콤했다. 인천 스토킹 사건이나 부산 연제구 살인 사건도 그랬다.

민지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23년 7월 15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통화하고, 맛집을 다니고, 여행도 함께했다.

민지씨는 "초반부터 A씨의 과도한 집착이 있었다"고 했다.

진지한 사랑처럼 보이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제 한 달 즈음부터 A씨의 집착이 노골화됐다. 민지씨는 "A씨가 저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민지씨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장을 늦게 하면, A씨는 민지씨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민지씨는 "당시 회사 홈페이지에 저의 이름과 소속, 연락처가 공개돼 있었는데, 가해자는 그 정보를 이용해 저의 회사 팀장·과장 이름까지 들먹이며 회사로 전화해 저를 옥죄었다"고 했다.

민지씨가 헬스장에 운동을 가겠다고 하면 A씨는 "레깅스 입고 가는 거냐", "다른 남자들에게 OO보여주려 가는 거냐" 등의 성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민지씨는 "헤어지자고 말하기도 했지만, 가해자는 저의 가족과 회사까지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관계를 끊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헤어지자는 말에 더 커진 '집착'

부산 연제구 살인 사건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30대 남성 김씨는 20대 여성 가영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구애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23년 11월부터 교제했다. 교제 과정에서 폭력적 성향과 통제적 행동으로 갈등이 반복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영씨는 2024년 6월과 8월 등 총 세 차례 교제폭력 등으로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연인 가영씨가 친구와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폭행한 뒤 가영씨의 휴대폰을 파손하기도 했다.

가영씨는 여러 차례 결별을 통보했지만, 김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영씨는 김씨의 집착과 스토킹이 이어지자 2024년 7월 경찰의 긴급 주거지원을 통해 거주지를 임시로 옮기기도 했다.

2024년 8월 가영씨는 김씨에게 '연락하지 말라, 만날 생각이 없다'는 취지로 분명한 이별 의사를 전한 뒤 김 씨의 SNS 연락도 차단했다.

하지만 김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물론 가영씨의 집 주변을 수시로 맴도는 등 스토킹행위를 지속했다.

여동생 유리씨는 "언니는 보복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못했다"고 했다.

"언니가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그 남자는 언니 집 앞에 찾아와서 현관문을 발로 차고, 막 두드리고…언니가 밤새 공포에 떨었다고 하더라고요."

감금, 폭행, 상해

인천 스토킹 피해자 민지씨에 따르면 폭행은 주로 차 안에서 시작됐다.

"첫 폭행은 사귄지 한달 안에 시작됐습니다. 저의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량에 저를 감금한 뒤 2시간 정도 무자비하게 폭행했어요."

이후에도 A씨는 수시로 민지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검사했고, 거슬리는 문자가 보이면 "차에 가서 좀 맞자. 차에 타"라며 폭행을 반복했다고 민지씨는 말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가해자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차 안에서 피해자를 폭행한 사실은 있다", "세 번, 네 번 정도"라고 혐의를 인정했다.

민지씨는 같은 해 11월 말 '회사 앞'에서 벌어진 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A씨는 갑자기 민지씨의 회사 앞으로 찾아와 만남을 요구했다. 민지씨가 거부하자 A씨는 민지씨의 머리채를 잡고 "차 안 타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차에 타자마자 2시간 동안 폭행이 시작됐고, 코뼈가 부러지고 눈 흰자에 핏줄이 터졌어요."

민지씨는 응급실에 갔고, 코뼈 골절로 붓기가 가라앉은 뒤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보복이 두려워 끊어내지 못한 인연

두 사건 모두에서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단어가 바로 '보복'이다. 민지씨는 "처음부터 신고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보복에 대한 공포였다"고 말했다.

민지씨는 "A씨가 '건달을 많이 알고 있고, 월급 절반이 그쪽으로 들어간다'는 식의 말을 반복했다"며 "'나를 신고해봤자 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덧붙였다.

협박은 뜬구름 같은 위협이 아니라 "가족을 죽이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저한테 했던 협박은…'OO를 찢어버리겠다, 치아를 뽑아버리겠다, 배를 흉기로 찔러 죽여버리겠다, 너희 집에 올라가서 엄마 아빠를 해치겠다'처럼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런 협박이 현실이 될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A씨는 민지씨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면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수면제를 먹고 쓰러졌다'는 연락이 A씨의 가족을 통해 온 적도 있었다고 민지씨는 회상했다.

특히 A씨는 흉기를 자신의 목에 대고 있는 사진을 민지씨에게 보내며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지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해자의 협박과 집착, 스토킹행위는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부산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교제폭력·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1년간 3회 이상 신고 시 A등급, 2회 이상 신고 시 B등급으로 분류된다
BBC
부산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교제폭력·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1년간 3회 이상 신고 시 A등급, 2회 이상 신고 시 B등급으로 분류된다

'신고했지만, 잠정조치 없었다'

부산 연제구 오피스텔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 가영씨는 임시 주거지로 옮기는 등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가해자는 가영씨의 주거지를 알아내 수시로 찾아왔고, 새벽 4시에도 초인종을 누르며 '브레이크 없는 집착'을 이어갔다.

가영씨는 이별하는 과정에서 김씨의 스토킹행위가 이어지자 경찰에 세 차례 신고했다. 당시 잠정조치 등 적극적인 보호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동생 유리씨는 "경찰이 가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하면 가중 처벌될 수 있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며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가 왜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부산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은 교제폭력·스토킹 범죄 등의 피해자가 1년간 3회 이상 신고 시 A등급, 2회 이상 신고 시 B등급으로 분류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체계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 가영씨는 가해자에 대해 세 차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B등급으로 분류돼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202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8월 25일 마지막 신고를 받고 피해자를 설득해서 긴급 주거 지원이나 관계기관 보호 조치를 했더라면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부산경찰청 측은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가 '아무런 피해가 없다', '전에 신고한 적도 없다'고 말해 다소 관리를 미흡하게 한 점이 있었다"며 "그간 피해자들은 보복의 두려움 등으로 진술을 꺼려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 방식 등을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배달음식 수령 틈타 범행

2024년 9월 3일 오후. 유리씨의 언니 가영(가명)씨는 배달 음식을 받기 위해 문을 열었다가 대기하고 있던 전 연인이 휘두른 흉기에 무참히 살해됐다.

앞서 9월 3일 새벽 3시쯤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집착을 이어가던 김씨는 친구로부터 가영씨가 자신의 중학교 후배와 교제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분노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오전 9시쯤 김씨는 그 후배의 직장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가영씨와 헤어져 달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날 오후 2시 41분. 그는 흉기를 소지한 채 가영씨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이후 4시간 이상 오피스텔 건물 안팎을 배회하며 가영씨의 집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오후 6시 26분쯤 가영씨의 오피스텔 건물 입구에 또 다른 남성이 도착했다. 가영씨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온 배달기사였다.

가영씨는 주문 당시 결제 방식을 '만나서 카드 결제'로 요청했다. 하지만 김씨는 오피스텔 건물에서 만난 배달기사에게 "계좌이체로 바꾸겠다, 여자친구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 한다"고 말해 기사가 문 앞에 음식을 놓고 떠나도록 유도했다.

오후 6시 34분 가영씨가 음식을 수거하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김씨는 문 안으로 뛰쳐들어가 흉기로 가영씨를 여러 차례 가격했다.

부산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의 범행은 불과 2~3분 만에 이뤄졌다.

오후 6시 40분 김씨는 범행 직후 옥상으로 올라가 경찰에 전화해 "여자친구를 죽였다"고 자수하며 자살 시도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가영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 후 끝내 숨을 거뒀다.

김씨는 법정에서 "자살 또는 자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휴대했고 피해자와 말다툼 끝에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정조치 94회 위반'

인천 스토킹 사건에서 가해자 A씨는 2023년 12월 22일 스토킹 혐의가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잠정조치를 받았다.

민지씨는 신변보호를 위한 스마트워치를 경찰로부터 지급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A씨는 구속되기 전인 2024년 5월까지 수십 통의 문자는 물론 전화 시도 등 여러 방식으로 연락을 이어갔다. 심지어 A씨는 민지씨를 찾아가 강제 만남을 갖기도 했다.

항소심 판결문은 "잠정조치 결정을 거의 100회 위반한 사실은 명백하다"며, 잠정조치 이전부터 피해자가 만남 강요·이별 거부 등을 여러 차례 신고했고, 결국 잠정조치에 이르렀음에도 피고인이 욕설과 비난, 전화 시도 등을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민지씨가 2023년 12월과 2024년 1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적도 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 대해 약 10개월간 지속·반복 폭행과 상습 협박, 가족에 대한 위협, 감금과 중상해, 결별 이후 끈질긴 스토킹으로 피해자를 괴롭혔다고 질타했다.

민지씨는 "잠정조치 위반이 94번이나 있었지만,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BBC는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 지역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당시 A씨의 94회 잠정조치 위반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물었다.

해당 경찰서 측은 "2년이 넘은 사건이라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들 전부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면서 "담당자가 바뀌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잠정조치 10명 중 1명은 위반

경찰청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경찰의 잠정조치 신청 건수는 1만4786건으로, 이 중 법원이 잠정조치 결정을 내린 건 1만2151건으로 집계됐다.

잠정조치 위반건수 1104건으로 나타났다. 법원이 잠정조치를 결정한 사건 10건 중 약 1건에서 위반이 발생하는 셈이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잠정조치를 위반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경찰청은 잠정조치 위반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의 원칙은 무엇인지를 묻는 BBC의 질의에 "잠정조치 위반은 그 자체로 범죄이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현행범체포, 수사 등을 진행한다"며 "위반 시 가해자의 위험성을 높게 평가해 구속하거나 유치,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 등을 적극적으로 신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스토킹하던 5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A씨가 2025년 6월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스토킹하던 5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A씨가 2025년 6월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쌓여있는 스토킹 개정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스토킹을 강력범죄 유형으로 처벌할 마땅한 법안이 없었다. 경범죄 처벌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스토킹행위를 처벌해왔지만, 과태료 10만원 미만 등의 처벌 규정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스토킹에서 비롯된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결국 2021년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안은 스토킹범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행위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고(제18조), 흉기 등을 이용해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법안에는 피해자 보호조치로서 응급조치,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 등의 내용도 담겼다.

이후 심각한 스토킹 피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처벌 규정 강화 및 피해자 보호 규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고,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이 여러 개 발의되기도 했다.

여야의 정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부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기도 했지만, 피해자 보호 확대를 위한 법안 마련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 들어 발의된 스토킹범죄 처벌 관련 법안은 총 34건에 달한다. 대부분의 법안은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 본회의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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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에서 비롯된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결국 2021년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교제폭력 처벌의 한계

더 큰 문제는 법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부산 연제구 교제 살인 사건에서 당초 김씨는 살인, 특수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재판받았고, 스토킹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후 최근 김씨의 스토킹 혐의에 대한 별도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 사건은 초기 단계에서 적절한 법 적용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이른바 '교제폭력처벌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교제폭력처벌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경찰은 실무상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해 피해자 보호조치에 나서는 경우가 있지만, 교제관계 속에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를 적절하게 예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행법은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반복적'일 경우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판단 기준이 다소 모호해 수사·기소·재판 단계마다 해석이 달라지거나, 연인 사이의 다툼의 경우 초기에 강제조치가 늦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BBC는 경찰청에 '스토킹·교제폭력 대응에서 가장 시급한 제도 개선이 무엇이라고 판단하는지를 물었다. 경찰청은 "교제폭력 관련 입법을 가장 시급한 제도로 판단해 추진 중에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교제폭력 사건에 직권 개입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 교제폭력 상황에 스토킹처벌법을 적극 적용해, 일회성 폭력이라도 긴급응급조치(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를 직권으로 명령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최선혜 사무처장은 "가정폭력처벌법의 경우 그 대상이 가족 구성원 대상으로만 한정돼 있고, 스토킹처벌법의 경우에는 그 행위가 스토킹범죄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연인 등 모든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피해자를 적절하게 보호할 법이 없는 상태"라며 조속한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9월 21일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이 범죄 피해자보호 대응체계에 대한 현황을 점검하면서 스마트워치 작동을 체험하고 있다
뉴스1
2022년 9월 21일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이 범죄 피해자보호 대응체계에 대한 현황을 점검하면서 스마트워치 작동을 체험하고 있다

스마트워치의 실효성

스토킹 가해자로부터 생명·신체에 위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자는 경찰에 신변안전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받을 경우 경찰은 피해자에게 맞춤형 순찰이나 스마트워치를 제공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는 실시간 위치추적 기능이 탑재돼 있어, 긴급 상황 발생 시 SOS 버튼을 3초간 누르면 주변의 경찰에 자동으로 연결되고 즉시 출동이 이뤄진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는 피습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스마트워치 지급 이후에도 살인 범죄로 이어진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5년 8월 말까지 스마트워치를 제공받은 피해자가 살인(미수 포함) 범죄를 당한 건수는 총 23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월 울산의 한 병원 주차장에서는 스토킹 피해자가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지만 가해자로부터 흉기에 목과 배 등을 수차례 찔리는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2023년 7월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서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옛 연인을 찾아가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피해 여성은 신변보호를 위해 지급된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지 나흘 만에 참변을 당해 피해자 보호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발견하고 신고할 경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가해자가 피해자를 먼저 발견하고 범죄행위를 할 경우 피해자를 보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경찰관은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로 신고할 경우 피해자의 위치가 경찰에 즉시 뜨기 때문에 현장 출동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효력이 있다"며 "다만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충전하지 않거나, 집에 놓고 외출하는 경우 등에는 신속 대응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현재 법무부는 가해자가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하면 피해자가 스마트폰 지도에서 '실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는 BBC에 "가해자가 접근할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실시간 위치를 스마트폰 앱 지도상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2026년 6월 시행할 예정"이라며 "이번 개선으로 피해자는 가해자의 위치를 사전에 인지하고, 안전한 장소로 대피가 가능하게 돼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역시 "법무부 '위치추적관제시스템'과 경찰 '112시스템'을 연계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며 "사업 완료시 출동경찰관이 피해자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지도상에 확인할 수 있게 돼 신속한 피해자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선제적 모니터링 체계

현장에서 스토킹 피해 업무를 담당해온 경찰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일선에서 스토킹피해자 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한 여성 경찰관은 "스토킹 피해 위험이 분명한 경우 피해자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하거나 신속한 분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후 피해자가 '남자친구랑 화해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가정폭력 같은 경우 저희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즉시 분리에 나서더라도 '남편과 다시 잘해보겠다'고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찰이 잠정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법원에 신청하더라도 법원에서 잠정조치 결정이 나오기까지 며칠이 소요가 된다"며 "그 기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이후에도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징역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교도소에서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거나 제3자를 통해 접근을 시도하는 경우, 감옥에서 만기 출소 후 재범행에 나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국가가 지속적인 위험성 평가를 통해 사후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킹처벌법 및 예방 법안을 발의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상 지속적 또는 반복적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사법기관의 판단이 상이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스토킹범죄의 피해자 보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다양한 스토킹 유형에 대응할 수 있는 촘촘한 법 개정과 실효적 분리를 넘어 선제적 모니터링 체계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연제구 살인 사건 피해자의 여동생 유리(가명)씨가 BBC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BBC/최유진
부산 연제구 살인 사건 피해자의 여동생 유리(가명)씨가 BBC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죽어야 끝날까'

부산 연제구 오피스텔 살인 사건에서 1심인 부산지방법원은 살인·특수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김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김씨가 각각 항소했고, 부산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쳐 징역 30년에 보호관찰 5년의 형량이 확정됐다.

유리씨는 "언니는 절대 돌아오지 못하는데,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살다가 30년 후 출소한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했다.

인천 스토킹 사건에서 1심 법원은 A씨에게 상해·폭행·협박·감금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과 A씨가 항소했고, 항소심은 A씨에게 징역 5년에 40시간의 스토킹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대법원은 2025년 10월 30일 이 형량을 확정했다.

민지씨는 "가해자는 아직까지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고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며 "지금도 가장 무서운 건 보복"이라고 말했다.

"이제 5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으니 다시 도망쳐야죠. 도망치는 수밖에 없으니까...요즘은 '제가 죽어야 끝나나'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요."

추가 보도: 최유진, 이선욱

※가정폭력·스토킹·교제폭력 피해 신고는 경찰청(112), 상담은 여성긴급전화(1366, 지역번호 + 1366), 카카오톡(women1366) 등을 통해 365일 24시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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