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산 블록화에 맞서 국내 기업들이 현지 생산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 원산지 기준을 강화한 유럽연합(EU) 방위 대출 프로그램(SAFE·세이프) 조건을 맞추기 위해 공장을 설립하고, 유럽 부품사들과 공급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등 정공법을 택한 모습이다.
1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무기 공동구매 회원국에 저리 대출을 제공하는 세이프 대상 국가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벨기에, 덴바크, 스페인, 포르투갈 키프로스 등 8개국을 승인했다. 세이프는 오는 2030년까지 8000억 유로(약 1370조원)를 국방 분야에 투입해 유럽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탄약·미사일·포병·드론·미사일·인공지능(AI) 등에서 최신 장비를 조달하는 게 골자다. 다만 이 기금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기 생산 및 부품 수급의 65% 이상을 유럽산으로 하는 원산지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유럽 수출길 확대를 꾀하는 국내 방산기업들의 현지 거점 설립도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1일 루마니아에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를 생산할 현지 공장(이하 H-ACE Europe)을 착공했다. 첨단 조립라인과 성능·검증 시험시설, 1751m 길이의 주행 시험로 등이 들어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 공장에 조립·통합·시험과 정비(MRO)를 포함한 전 생애 주기 지원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특히 현지 30여개 부품사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 현지화율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회사 관계자는 "루마니아 공장의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해 향후 보병전투장갑차(IFV), 장거리 정밀타격체계, 무인지상체계(UGV) 등 첨단 지상체계 생산·지원까지 확장하는 유럽 지역 허브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현대로템도 지난해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2차 이행계약을 체결한 것을 계기로 현지 방산업체 부마르와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에 납품하는 K2 전차 약 250대를 부마르 공장에서 생산하고, 향후 수주 상황에 따라 생산 캐파를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미국 캘리포니아에 약 8500㎡ 규모 철도차량 전장품 생산공장 '현대로템 스마트 일렉트릭 아메리카(HRSEA)'를 설립하는 등 해외 거점 확보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유럽 방산 공장 설립은 수주 규모는 물론 현지 시장 이해도, 언어, 노동 숙련도, 부품 생태계 등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매우 많아 난이도가 매우 높은 작업"이라며 "다만 무역 블록화 현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계속해서 현지 공장 설립 후보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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