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실적을 평가하는 가장 간단한 잣대는 두 가지다.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가, 그리고 그보다 이익이 더 빠르게 늘었는가다. 매출 증가 속도보다 이익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면, 그 기업은 단순히 장사가 잘된 것이 아니라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HD현대의 2025년 실적이 바로 그런 경우다. HD현대는 12일 공시를 통해 작년(연결 기준) 매출 71조2594억원, 영업이익 6조99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대비 5.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04.5% 급증했다. 영업이익률은 8.6%로 전년의 4.4%에서 4.2%포인트 뛰었다.
숫자의 겉모양은 단순하다. 그러나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매출이 한 자릿수로 늘었는데 이익이 두 배가 됐다는 것은 비용을 줄여서 만든 성과가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가 이익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만든 마진 레버리지=이번 실적의 중심에는 조선 부문이 있다. 중간지주회사 HD한국조선해양은 2025년 매출 29조9332억원, 영업이익 3조9045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17.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72.3%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13%까지 상승했다.
조선업은 수주와 매출 사이에 1~2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산업이다. 2022~2023년에 확보한 고선가 수주 물량이 2025년에 본격적으로 손익계산서에 반영되면서, 고정비 구조 산업 특유의 마진 레버리지 효과가 그대로 나타났다.
계열사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HD현대중공업은 매출 17조5806억원, 영업이익 2조375억원을 기록했고, HD현대삼호는 매출 8조714억원, 영업이익 1조3628억원을 올렸다. 두 회사 모두 안정적인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확보했다.
과거 조선업은 수주 규모가 실적의 전부였다. 이제는 수주 단가와 생산성이 실적을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조선 부문은 더 이상 변동성 산업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현금창출 사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력기기, 구조적 성장의 정석=조선이 회복의 주역이었다면, 전력기기 부문은 성장의 축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25년 매출 4조795억원, 영업이익 995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2.8%, 영업이익은 48.8% 증가했고, 영업이익률은 24.4%에 달한다.
전력기기 시장은 단순한 경기 순환 산업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장,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라는 장기 트렌드 위에 서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고압 변압기 수요 확대가 실적을 강하게 끌어올렸다.
매출이 늘수록 이익률이 함께 상승하는 전형적인 고부가 산업 구조다. 그룹 전체에서 가장 질 좋은 이익을 만들어내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정유, 외형보다 마진으로 증명=정유 부문의 성과는 더 극적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매출이 28조249억원으로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4740억원으로 83.7% 늘었다. 정유업은 매출이 아니라 정제마진이 성패를 가르는 산업이다. 2025년 실적은 외형이 줄어도 마진이 개선되면 이익은 커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다. 원유 도입 다변화와 공정 최적화 등 운영 효율이 누적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만들어졌다.
서비스와 건설기계, 안정적 캐시카우=해양서비스 계열사 HD현대마린솔루션은 매출 1조9827억원, 영업이익 350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17.7%로, 반복 매출 비중이 높은 애프터마켓(AM) 사업의 힘을 입증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건설기계)은 매출 8조2367억원, 영업이익 4674억원을 올렸다. 북미와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한 판매 확대와 엔진 사업 성장으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했다.
진짜 변화는 재무제표에 있다=손익계산서보다 더 중요한 신호는 재무상태표에서 나타났다.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92.6%에서 2025년 말 159.4%로 낮아졌고, 순차입금비율은 51.2%에서 11.3%까지 급감했다.
이는 단순한 차입금 축소가 아니다. 조선과 전력기기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실제 현금흐름으로 이어져, 그룹의 재무 체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익이 늘었지만 차입도 함께 늘어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이익이 늘면서 차입이 급격히 줄어드는 기업은 드물다. 2025년의 HD현대는 명확히 후자다.
‘양’이 아니라 ‘질’의 전환=이번 실적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더 많이 팔아서 번 것이 아니라, 더 잘 팔아서 번 해.” 저가 수주는 줄이고 고마진 프로젝트를 늘린 결과, 매출 성장률은 완만했지만 이익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외형 중심 경영에서 마진 중심 경영으로의 전환이 숫자로 증명된 셈이다.
HD현대 관계자는 “수익성 중심의 사업 운영을 통해 실적 안정성을 높여 나갈 것”이라며 “마진이 높은 수주와 생산 효율화 기조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시장에의 2026년 이후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첫째, 조선 부문의 고선가 수주 잔고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 둘째, 전력기기 슈퍼사이클이 몇 년 더 이어지는가. 셋째, 정유 부문의 마진 변동성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가.
현재 구조만 놓고 보면, HD현대는 최소 수년간 안정적인 고이익 구간에 진입한 모습이다. 6조원의 영업이익은 일회성 성과가 아니라, 그룹 체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에 가깝다. 이제 HD현대의 성적표를 읽는 기준은 매출 규모가 아니라 현금흐름과 마진이다. 2025년 실적은 정점이 아니라, 이익 중심 경영의 출발선일 가능성이 높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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