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여당 주도로 ‘대법관 증원’과 ‘대법원 판결 헌법소원(재판소원) 허용’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법원이 제기한 ‘국민 권리 침해 우려’에 대해 시민단체 소속 전문가들은 사전심사 등 설계에 따라 기본권 구제와 소원권 남용 방지를 함께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12일 정치계에 따르면 전날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여당을 주도로 의결됐다. 이 두 법안의 골자는 각각 대법관 정원 14→26명 확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정 요건 아래 헌법 소원을 허용하게 함(재판소원)이다.
여기서 헌법소원은 공권력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국민이 직접 헌재에 기본권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다. 현행 헌재법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 기본권 침해 사례에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안 취지로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반면 야당과 재판부는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아침 조희대 대법원장은 “재판소원법이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국회와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단체에 소속돼 시민들의 권리 구제를 지원해 온 법조계 전문가들은 재판소원법이 4심제와 동일시되기에는 일부 비약적인 면이 있다고 봤다. 4심제화에 대한 우려는 제도를 손질하면 해결할 수 있는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유승익 명지대 객원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제도 도입 초기에는 재판소원 청구가 늘 수 있지만 헌재가 필터 기능을 제대로 하면 운영상 충분히 조절 가능한 문제”라며 “비록 인용률은 낮을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구제되는 중요한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제도 자체를 막아두는 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김희순 팀장 역시 통화에 “재판소원법으로 모든 재판이 4심제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평가로 보인다”면서 “재판소원법이 4심제를 도입하는 결과로 이어질지 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기본법 구제 차원에서는 제도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날 통과된 재판소원법 역시 모든 재판에 대해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니다. 제도 도입으로 헌법소원 청구 건수가 지금보다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각하 요건을 명확히 규정한다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등 재판소원권을 인정하는 국가들은 엄격한 사전심사와 수리 기준을 통해 무분별한 재판소원 제기를 걸러내고 있다. 단순히 불복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남용되면 시민이 불필요한 소송 부담에 노출되고 사법 시스템 전체가 과부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특히 소수 재판관으로 구성된 소부(Kammer)가 사전심사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으로 기능하는 것을 막고 있다. 3명의 재판부가 소부를 담당하게 되며 전원일치의 판단이 나와야 재판소원이 인정된다.
법원행정처 역시 전날 법사위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독일의 사례를 언급했다. 법원행정처는 재판소원이 도입돼도 독일처럼 인용률이 극히 낮을 것이며 결국 많은 사건이 ‘희망고문’으로 끝나고 불필요한 소송비용만 과다하게 지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2020년 기준 독일 헌법소원 사건의 99.5%가 불심사결정됐다. 총 처리건수 5361건 가운데 90건만이 인용된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소원의 혜택은 권력자 또는 높은 소송비용을 지출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고 대부분의 사건은 사전심사 단계에서 무의미하고 허탈하게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주장했다.
다만 독일의 낮은 인용률을 제도 실패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사전심사가 촘촘하게 작동해 헌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만 본안으로 올리고 나머지는 걸러낸다는 점에서 제도가 설계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은 미처리 사건 누적으로 인한 과부하를 방지하고 헌법재판기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심사 제도를 강화해 왔다. 독일 연방정부도 “사건 적체로 인한 과부하 위험이 커 법원이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사전심사 운영의 필요성을 설명해 왔다.
결국 대부분 사건이 사전심사 단계에서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그것이 곧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재판소원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뜻이다. 선별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수록 재판소원이 4심제로 변질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물론 우려도 존재한다. 헌법전문가 김진한 변호사는 논문 ‘독일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의 사전심사 제도’(2023)에서 헌법소원 심사 대상 사건이 방대함에도 사전심사를 맡는 소부가 3명의 재판관으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을 우려 지점으로 꼽았다.
사건을 선별해 헌법소원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또 소부 결정에 전원일치 요건이 적용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장치만으로 자의적 판단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내에서 재판소원 제도를 논의한다면 독일 사례처럼 사전심사 재판관 구성과 운영 원칙을 세밀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설계가 뒷받침될 경우 재판소원은 기본권 침해 구제라는 본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제도가 ‘4심’으로 변질되는 우려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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