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도로 위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차량은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가감속을 이어가며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전히 ‘인간의 주의 의무’에 머문다. 기술의 진보는 시속 100km로 질주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보험의 엔진은 아직 예열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본보는 이번 연재를 통해 자율주행이 현실이 된 이후 더욱 선명해진 기술과 법, 보험 사이의 위태로운 간극을 짚는다.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기계적 판단은 과연 누구의 책임으로 귀속돼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의 경직된 책임 구조가 이 거대한 변화의 하중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는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2026년 대한민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고령층인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년층에게 자율주행은 단순한 첨단 기술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이동권’의 확장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자율주행 산업의 마지막 관문인 보험 제도는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술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있지만, 사고 시 책임과 위험을 배분할 금융 시스템은 데이터 공유라는 사회적 합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운전 제어권이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하는 과도기에서 법적 책임 구조는 여전히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고, 사고 발생 시 보험 리스크를 정량적으로 예측할 통계 기반도 제한적이다. 기술의 안전성 검증과는 별개로, 이를 금융 시스템 안에서 요율로 환산하는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분석이다. 시장의 신뢰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그 위험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투명하게 배분하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누적 200만km 주행에도…아직 목마른 보험업계
12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의 누적 주행거리는 2025년 말 기준 약 200만km 수준으로 집계된다. 수치상 사고율은 0.1% 수준으로 현저히 낮은 편이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이를 요율 산정의 직접적 근거로 활용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험 수리적 관점에서 핵심은 단순한 사고 빈도가 아니라 통계적 유의성과 환경의 다양성이다. 일반 자동차 보험은 수십 년간 축적된 방대한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령, 차종, 지역, 주행 패턴에 따른 위험도를 정밀 산출한다. 반면 자율주행 데이터는 아직 표본 규모와 환경 스펙트럼 측면에서 한계를 보인다.
특히 현재까지 축적된 주행 데이터는 날씨가 맑은 낮 시간대나 통제된 시범운행 구간에 집중되어 있어, 실제 도심의 복잡한 돌발 상황이나 악천후 시의 손해액 분포를 정밀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은 사고가 나지 않을 확률이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 발생할 손해의 극단값을 관리하는 상품”이라며, “모수(Parameter)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리스크 방어 차원에서 보수적인 요율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제조사 “핵심 로그는 비공개”…‘정보 비대칭’의 벽
보험 시장 확대의 또 다른 걸림돌은 제조사와 보험사 간 데이터 접근성의 불균형이다. 자율주행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면 인공지능 알고리즘 판단 로그와 라이다·레이더 등 센서 기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대부분 제조사 서버에 집중돼 있으며, 외부 접근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사고가 운전자 개입 실패인지, 시스템 결함인지, 제어권 전환 과정의 오류인지 명확히 가리기 어렵다. 보험사가 기계 결함이나 소프트웨어 판단 오류를 독립적으로 검증하지 못하면, 불확실성은 곧 리스크 비용으로 전환된다. 결국 보험료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보 비대칭 구조가 고착될 경우, 기술적 책임은 제조사에서 멀어지고 부담은 보험사와 소비자에게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정 기업 중심의 데이터 독점은 자율주행 생태계 전반의 리스크 표준화와 책임 구조 정립을 지연시키는 병목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공적 데이터 허브와 DSSAD...신뢰의 제도화 시도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2027년까지 약 1조원 규모의 ‘자율주행 기술개발 혁신사업’을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핵심 과제 중 하나는 공적 데이터 검증 체계 구축이다. 특히 자율주행 사고기록장치(DSSAD)의 국제 기준을 국내 법체계에 반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DSSAD는 기존 사고기록장치(EDR)보다 훨씬 광범위한 데이터를 담는다. 사고 전후 차량 제어 상태, 시스템 작동 여부, 주행 환경 정보 등을 독립된 저장 영역에 기록해 사고 분석의 객관성을 높이도록 설계됐다. 제조사와 보험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술에 대한 신뢰가 제도적 신뢰로 전환되려면, 누구나 검증 가능한 데이터 증거가 필요하다”며 “DSSAD 법제화 여부가 자율주행 책임 범위 설정과 합리적 보험 요율 산정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초고령사회의 자율주행, 이동권 문제로 확장
자율주행 보험 논의는 산업 차원을 넘어 인구 구조 변화와 직결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대중교통 축소가 가속화되면서 ‘교통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고령층의 이동권은 의료 접근성과 일상 유지에 직결되는 기본권적 문제로 부상했다.
자율주행 셔틀은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되지만, 사고 발생 시 피해 구제와 책임 분담 체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서비스 확산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험업계의 신중함은 기술 불신이라기보다, 핵심 데이터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은 데 따른 구조적 한계”라며 “센서가 인지한 객관적 상황 정보까지 포함한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제학자 또한 “위험을 통제하는 주체와 그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 간 정합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장은 작동하지 않는다”며 “정부 주도의 공공 데이터 허브 모델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결국 자율주행의 확산을 좌우하는 것은 도로 위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투명성과 신뢰 체계라는 것이 업계의 일관된 평가다. 초고령사회에서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경쟁 못지않게 데이터 거버넌스의 정비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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