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토피아 세상…아파트 공화국, '번식' 멈춘 사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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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노석준의 메타토피아 세상…아파트 공화국, '번식' 멈춘 사회-②

연합뉴스 2026-02-12 14:00:05 신고

3줄요약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에 따르면 이달 국내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 9차 전용 152㎡로, 지난 11일 85억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사진은 이날 촬영한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2025.12.24 hama@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에 따르면 이달 국내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 9차 전용 152㎡로, 지난 11일 85억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사진은 이날 촬영한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2025.12.24 hama@yna.co.kr

◇ 사회학적으로 본 아파트: 집이 아닌 '입장권'

강남 아파트 가격은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상승해 왔다. 특히 재건축 가능성이 높은 단지와 소위 '학군·교통·상권'이 집약된 일부 지역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저금리 시기 유동성 확대의 영향을 타고, 상류층의 지위와 계급을 상징하는 자산으로 굳어졌다. 그 결과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과 대출 여력을 가진 소수 고소득층을 제외하면, 해당 지역으로의 진입은 대부분의 청년 세대에게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에 가깝게 인식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더 이상 주거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진입권, 혹은 계급을 증명하는 입장권에 가깝다. 어느 지역, 어느 브랜드, 어느 평형의 아파트에 거주하는지가 자녀의 교육 경로, 가족의 사회적 평판, 결혼 시장에서의 평가, 그리고 노후에 빈곤으로 떨어질 위험까지 가늠하는 지표가 돼버렸다.

과거 주거가 삶의 단계에 따라 옮겨 다니는 가변적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아파트는 완성된 형태의 고가 상품이자, 인생 궤적 전체를 결정짓는 고정된 좌석처럼 기능한다. 청년 세대에게 이 진입 장벽은 '넘을 수 없는 성벽'에 가깝다.

획일화된 아파트 양식은 생활 방식뿐 아니라 삶의 궤적까지 표준화시킨다. "어느 정도 평수, 어느 정도 가격대의 아파트를 소유해야 부모가 될 자격이 있다"는 암묵적 기준은 출산을 자연스러운 삶의 단계가 아니라, 경제적 성공 이후에나 누릴 수 있는 보상처럼 만들어 버렸다. 결혼·출산은 '성인이면 언젠가 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 '주거와 자산이 준비된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고위험 프로젝트'로 인식된다.

역설적으로 아파트는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그 비싼 비용과 과도한 상징성 때문에 종족의 영속성을 가로막는 진화의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집은 더 이상 안정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평생에 걸친 경쟁의 출발선이 됐다. 문제는 이 경쟁 구조가 번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위험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한국의 아파트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는 순간, 그 위험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혼과 출산 이후 필요한 것은 생활비만이 아니다. 높은 교육비, 급등한 주거비, 계층 하락에 대한 불안까지 모두 개인과 가정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상대적으로 좋은 입지의 넓은 아파트는 이 복합적인 사회적 리스크를 줄여 주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으로 인식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삶의 한 단계가 아니라, 고위험 투자 행위가 된다. 그리고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실패 확률이 높은 번식을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환경이 번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의식적인 결심과 상관없이 번식 욕구 자체가 위축되는 것이다.

◇ 한국의 특이성: 인공물이 만든 진화의 역전

진화생물학에서 환경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들은 대체로 자연의 산물이다. 기후 변화는 지구 시스템의 변화이고, 전염병은 생태계의 균형 속에서 발생하는 결과다. 이런 요인들은 외부에서 개체군을 압박해 번식률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이러한 자연적 요인과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 번식을 억제하는 환경은 기후나 질병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물과 인공적 제도다. 한국의 아파트라는 구조물은 한국 사회에서 생존과 사회적 인정, 경제적 안전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동시에, 그 아파트를 어렵게 확보한 순간부터는 미래의 자녀에 대한 비용과 위험을 계산하며 번식을 포기하게 만드는 대상이기도 하다. 하나의 인공물이 생존 조건과 번식 억제 장치라는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 모순 구조인 셈이다.

현재 많은 청년·신혼 부부에게는 '집을 가지기 전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자기 소유의 안정적인 주거가 없으면, 아이를 낳는 것은 곧바로 불안정과 위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가진 후에도 아이를 낳기 어렵다'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앞으로 자녀에게 들어갈 교육비, 돌봄 비용, 사교육과 주거 업그레이드를 위한 부담을 계산해 보면, 지금의 아파트보다 더 저렴한 지역이나 더 작은 평형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때 느끼는 정신적 불안과 사회적 낙오감에 대한 공포가, 출산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제동 장치로 작동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매우 치명적인 구조다.

인류는 한 번도 '주거를 소유하지 못하면 번식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봉건 사회에서 농노와 도시 빈민은 열악한 환경에 살았지만, 최소한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와 공동체 속에서 자녀를 낳았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격변기, 도시의 슬럼과 판잣집에서도 사람들은 불안과 빈곤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주거는 초라했지만, 번식을 위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 유럽 봉건 사회 하층민의 집은 비좁고 위생 상태도 나빴으며,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여전히 그들의 보금자리였고,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많이 낳는 장소였다. 집의 형태와 소유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머물 수 있는 자리'와 공동체의 틀 자체였다.

한국은 이제 국제 기준으로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생활 수준, 교육 수준, 도시 인프라 등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과거의 유럽이나 개발 단계에 있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실제적인 부의 수준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아파트가 개인의 신분을 드러내는 동시에 전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주거를 소유하지 못하면 번식할 수 없다'는 집단적 실험이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 집 마련이 곧 '부모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처럼 여겨지는 현상, 그리고 그 집이 특정 지역·브랜드·평수의 아파트여야 한다는 강박은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환경이다. 이러한 인공적 환경이 인간의 번식 메커니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저출산은 단순한 경제 문제나 가치관의 변화가 아니라, 인공물이 만든 진화의 역전 사례라 부를 만하다. (3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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