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시급히 입법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한 데에는 "정치의 실패"라며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자책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시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해 아쉽지만 이제라도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환영한다는 인권단체 의견이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의 저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추천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문 전 대통령은 홍 교수의 저서를 "차별이란 무엇이며 왜 나쁜지, 차별이 어떻게 구조화하며 은폐되는지, 차별금지가 역차별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맞는 말인지,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두루 살펴보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심각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성숙하면 혐오와 차별이 적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라며 "다원화된 세상에서 혐오와 차별을 계속 방임한다면 우리 사회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갈등과 분열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그는 "세계 많은 나라에 있는 차별방지법을 우리가 지금까지 입법하지 못한 것은 정치의 실패"라며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일부 종교계 등의 뿌리 깊은 불신과 반대를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입법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인권단체들은 문 전 대통령의 의견 표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이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날 입장을 내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던 순간들을 지나쳐온 시간은 아쉽지만 문 전 대통령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필요성 천명을 환영한다"고 했다.
단체는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과 노골적으로 짙어져가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아지고 있다"라며 "차별금지법의 '나중에' 역사를 끝내고 '지금 당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부와 국회의 신속한 결단을 촉구한다"고 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의 의견에 책임 있는 태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성수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까지 입법이 미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분인데,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재임 시절에 밀어붙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된다거나, 최소한 안타깝다는 말은 덧붙여 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라며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 책무'를 방기한 것은 너무나도 뼈아픈 일이었고, 다시 기회를 잡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는데 간신히 10명 채워서 발의됐고, 특히 민주당 내에서 전혀 동력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라며 "정말 이제라도 생각이 바뀐 분들이 있다면 다시 힘을 모아 달라"고 강조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차이 등을 이유로 발생하는 차별행위를 규율하는 취지의 법안이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를 명시한 법률들을 제정하고 있으며, 유엔사회권위원회(UNCESCR)는 2017년 10월 한국 정부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직접 권고한 바 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응답자 88.5%가 찬성했다는 '혐오차별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21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평등법) 발의가 여럿 나왔지만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정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진보당 손솔 의원과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손솔 의원은 지난달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논의돼 온 법으로 결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해서 제정되지 못한 법이 아니"라며 "국회는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헌법상 평등권을 실현하는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고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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