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리더의 생각]서신 공화국과 커피하우스에 대해 우리는 잘못 알고 있다
“아!
커피 맛이란 정말 기막히지/ 수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무스카토 와인보다 부드럽지/ 커피, 커피를 마셔야 해/ 누가 날 즐겁게 해주려거든/ 아, 내 커피잔을 채워주면 돼요.”
이슬람 문화권에서 흘러온 커피는 강렬한 향과 맛으로 유럽인을 사로잡았다.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도 커피에 빠졌다. 바흐는 커피를 예찬하는 세속 칸타타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커피 칸타타’라고 불리는 이 작품(BWV 211)은 10곡 내외로 이루어졌다.
이 칸타타는 커피를 마시는 딸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와, 그럴수록 커피를 더욱 마시고 싶어 하는 딸의 실랑이를 그린다. 서두에 인용된 가사는 딸이 부르는 아리아 ‘커피는 어쩜 그렇게 맛있을까’에서 펼쳐진다. 커피 칸타타는 바흐가 활동한 도시 라이프치히의 커피하우스에서 공연을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당시 대유행한 커피하우스에서 흥을 돋우는 일종의 홍보 음악이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커피 칸타타를 다룬 글에서 “커피가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나아가 프랑스대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전했다(커피 예찬, 조선일보, 2025.06.08.).
다른 글은 커피를 매개로 한 커피하우스에서의 논의가 학문과 산업 발전을 촉진했다고 전한다. “커피는 이렇듯 활기와 이성을 끌어올리는 에너지원으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활약해왔다.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유행하던 17세기는 시민사회의 여명기였다. 커피하우스에서 정치적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며 각성한 시민들이 의회파를 꾸려 왕당파에 승리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커피 잔 사이로 넘쳐나는 정보, 무한하게 뻗어가는 논쟁과 실험은 학문과 산업 발전의 윤활유였다.” (윤선해, 깨어 있는 이성의 상징, 커피, 한국일보, 2024.12.14.)
커피와 유럽 지성사 사이의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서술한 책이 있다.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라는 부제가 붙은 〈판타 레이〉다. 이 책에서 커피의 활약을 전한 두 문단을 다음과 같이 발췌한다.
“17세기 유럽에 전파된 커피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진 커피하우스를 통해 유행처럼 번져갔다. 사교를 담당하던 선술집에서 술에 빠져 있던 유럽 사람들은 새로이 등장한 커피의 각성제 효과를 만끽하며 비로소 맨정신으로 새로운 사상과 학문, 예술을 꽃피워 나가기 시작한다. (중략) 유럽은 오랫동안 술에 취해 있었고, 유럽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통해 깨어난 것은 커피 대유행의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된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자, 유럽 지식인들은 동네 카페를 벗어나 국경을 넘어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성에 의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를 ‘서신 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라고 부른다.” 기본 사실부터 살펴본다. 커피하우스가 유럽에서 유행한 때는 17세기 중반이다. 바흐는 커피가 유럽에 확산된 이후 태어났고, 바흐가 활동한 라이프치히에서도 커피하우스가 성업 중이었다.
◇커피는 르네상스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 가지를 쳐내기로 한다. 커피의 역할을 에스프레소처럼 압축한 첫 인용문의 이 문장, “커피가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나아가 프랑스대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과 부합하나? 인공지능(AI)의 도움을 청해보자. 챗GPT는 이렇게 답한다. “이 명제는 ‘조건부로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지적·사회적 인프라를 형성한 매개 요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더 들어가서는 “커피는 르네상스를 직접 만든 동력은 아니지만, 17~18세기 유럽의 지식 교류 방식과 공적 토론 문화를 바꾸며 계몽주의와 프랑스대혁명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 촉진제였다”고 설명한다.
‘르네상스’에 대해 미심쩍게 여긴 독자가 계시리라. ‘커피는 유럽에 17세기 중반에 퍼졌는데, 르네상스는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융성하지 않았나?’ 챗GPT는 “르네상스와의 연결은 약하다”며 “커피가 유럽에 본격 확산되기 전인 15세기 이전에 이미 르네상스는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이어 “르네상스의 핵심 동인은 고전 재발견과 인문주의, 후원 시스템, 인쇄술”이라고 분석한다.
이제 〈판타 레이〉에서 주장한 ‘커피가 와인 대체, 취했던 유럽의 각성, 사상과 학문, 예술의 발전, 이성에 의한 새로운 세계관 전개, 서신 공화국 형성’이라는 연쇄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점검할 때다. 어떤 서술이 사실인지 주장인지 판단하는 간단한 방법이 ‘반례가 있는지, 강력한 반례인지, 반례가 많은지’ 찾아보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강한 반례가 있다. 커피는 원래 이슬람 문화권의 기호 음료였다. 무슬림은 유럽인에 앞서 오랫동안 커피를 마셨다.
신혜경 전주기전대 교수는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커피점은 1554년에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하던 시절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고 전한다. 신 교수는 “물론 그 전에도 메카나 카이로 등 이슬람 지역 여기저기에 커피하우스는 많이 있었으나 일반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커피는 르네상스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 가지를 쳐내기로 한다. 커피의 역할을 에스프레소처럼 압축한 첫 인용문의 이 문장, “커피가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나아가 프랑스대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과 부합하나? 인공지능(AI)의 도움을 청해보자. 챗GPT는 이렇게 답한다. “이 명제는 ‘조건부로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지적·사회적 인프라를 형성한 매개 요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더 들어가서는 “커피는 르네상스를 직접 만든 동력은 아니지만, 17~18세기 유럽의 지식 교류 방식과 공적 토론 문화를 바꾸며 계몽주의와 프랑스대혁명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 촉진제였다”고 설명한다.
‘르네상스’에 대해 미심쩍게 여긴 독자가 계시리라. ‘커피는 유럽에 17세기 중반에 퍼졌는데, 르네상스는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융성하지 않았나?’ 챗GPT는 “르네상스와의 연결은 약하다”며 “커피가 유럽에 본격 확산되기 전인 15세기 이전에 이미 르네상스는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이어 “르네상스의 핵심 동인은 고전 재발견과 인문주의, 후원 시스템, 인쇄술”이라고 분석한다.
이제 〈판타 레이〉에서 주장한 ‘커피가 와인 대체, 취했던 유럽의 각성, 사상과 학문, 예술의 발전, 이성에 의한 새로운 세계관 전개, 서신 공화국 형성’이라는 연쇄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점검할 때다. 어떤 서술이 사실인지 주장인지 판단하는 간단한 방법이 ‘반례가 있는지, 강력한 반례인지, 반례가 많은지’ 찾아보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강한 반례가 있다. 커피는 원래 이슬람 문화권의 기호 음료였다. 무슬림은 유럽인에 앞서 오랫동안 커피를 마셨다.
신혜경 전주기전대 교수는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커피점은 1554년에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하던 시절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고 전한다. 신 교수는 “물론 그 전에도 메카나 카이로 등 이슬람 지역 여기저기에 커피하우스는 많이 있었으나 일반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커피하우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이스탄불의 커피점은 단골손님을 끌기 위해 커피 음료에 마약과 향료를 섞기도 했고 매춘도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퇴폐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커피하우스의 역사와 변화: 토론과 공론의 장에서 ‘함께 있되 혼자 있는’ 공간으로, 2016.12.23.)
그러나 커피의 각성 효과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사상과 학문, 예술, 정치 체제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위 서술은 사실보다는 주장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유럽의 학문은 편지 교류로 발전했으나
서신 공화국에 대해서는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통신이 발달하기 전까지 근대 유럽의 학문 세계는 학자들 간 편지로 아이디어와 이론을 교환하면서 발전했고, 이 학문 공동체가 서신 공화국이라고 불린다. 일례로 영국의 뉴튼이 독일의 라이프니츠에게 미분의 개념을 암호로 숨긴 채 자랑한 것도 편지를 통해서였다.
유럽 서신 공화국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이탈리아 출판인 알도 마누치오(1449~1515)다. 라틴어식 이름인 알두스 마누티우스로도 알려진 그는 인쇄공장을 세우고 값싼 소형본 책을 널리 보급했다.
마누치오는 네덜란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를 비롯해 유럽 각지의 지식인들과 편지로 교류했다. 그의 학자 인맥은 당대에 가장 폭이 넓었다. 프랑스의 어떤 학자가 이탈리아의 다른 학자와 교류하고 싶다면 먼저 마누치오에게 편지를 보내 소개를 부탁했을 정도다.
이로부터 우리는 〈판타 레이〉의 ‘커피가 와인 대체, 취했던 유럽의 각성, (중략) 서신 공화국 형성’이라는 연쇄가 역사를 뒤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서신 공화국이 형성되고 발전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다음인 17세기 중반에 커피하우스가 교류의 장이 됐다. 서신 공화국은 그에 앞선 출판 혁명에 영향을 받았다. 유럽의 출판 혁명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가 15세기 중반에 활판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로부터 우리는 〈판타 레이〉의 ‘커피가 와인 대체, 취했던 유럽의 각성, (중략) 서신 공화국 형성’이라는 연쇄가 역사를 뒤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서신 공화국이 형성되고 발전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다음인 17세기 중반에 커피하우스가 교류의 장이 됐다. 서신 공화국은 그에 앞선 출판 혁명에 영향을 받았다. 유럽의 출판 혁명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가 15세기 중반에 활판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이루어졌다.
요컨대 다양한 책이 전에 비해 다량으로 출간·보급되면서 지식인들의 뇌를 자극했고 지식과 의견, 가설을 교류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하면서 서신 왕래에 빅뱅이 일어났다. 커피는 그 다음에 전해졌다. 재론하면, 유럽은 출판 혁명과 서신 공화국을 거쳐 커피를 마시게 됐지, 커피를 마시면서 숙취에서 깨어나 사고하고 그 결과를 편지로 교환하는 서신 공화국을 이룩한 게 아니다.
챗GPT는 이 두 문단에서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찾아낼까? 아무 힌트 없이 두 문단을 제시하고 평가해달라고 챗GPT한테 부탁했다. 놀랍게도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서신 공화국은 15~16세기 인문주의자들(에라스무스 시대)부터 이미 존재, 커피하우스보다 인쇄술·라틴어·학술 공동체가 핵심 기반, 따라서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돼 서신 공화국으로 발전’이라는 직선적 서술은 부정확하다.”
이어 ‘종합 판단’에서 “커피하우스를 계몽주의적 소통 문화의 한 매개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면서 “그러나 서신 공화국을 그 결과물처럼 설명한 것은 역사적 순서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평가 요약’ 항목에서는 “커피하우스는 서신 공화국을 ‘확장’했을 수는 있어도, ‘탄생’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가 사고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AI는 사고한다. 지식인 평균보다 더 정확하게 사고한다. 다만 조건부로 사고한다. 부정확한 글을 제시받고 그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에만 그 정확한 사고력을 발휘한다. 인간이 먼저 정확하게 사고할 때에만 인간은 AI를 활용해 그 사고를 더욱 정치하게 가다듬을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더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