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쇼스타크의 소설 '상실'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 초절임 생강 = 차성환 지음.
"어느 날 생강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강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봐왔지. 아름답고 슬프고 외롭고 또 이상한 일을 겪었단다. 이제 나를 여기서 꺼내줘." ('초절임 생강' 중)
2015년 '시작'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차성환 시인이 7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그의 산문시 전반에는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언어적 비약이 펼쳐지다가도 죽음을 내포하는 섬찟한 문장들이 곳곳에 벼려져 있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상상과 유쾌한 말장난 속에도 쉬이 숨겨지지 않는 비정한 정서가 초절임 생강처럼 맵고 쌉싸름한 여운을 길게 남긴다.
"시뻘건 촛농이 흘러넘쳐 마을을 덮치자 참다못한 사람들이 식칼을 들고 몰려와, 이 새끼야 네 제삿날 되고 싶냐 어서 불을 꺼. 그래 이 불은 내가 아니면 끌 수 없는 불. 우리는 초 기둥 옆에서 잿더미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생일 축하해." ('생일' 중)
문학동네. 104쪽.
▲ 상실 =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폴란드의 기자이자 작가인 나탈리아 쇼스타크의 장편소설이 정보라 작가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한 가정의 아버지가 가족들 몰래 큰 빚을 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가족 드라마다.
경제적 위기에 몰린 부모는 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고, 열네 살 마리안나와 열한 살 야쿱은 할머니 댁에 맡겨진다.
하지만 할머니인 알리아치는 그다지 살가운 인물이 아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공증사무소에서 일하며 자신의 생계를 꾸리는 독립적 여성으로, 갑자기 떠맡게 된 손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마리안나는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옛집에 몰래 숨어 사는 무능한 아빠를 마주하고 충격에 빠져 가출을 감행하고, 사사건건 부딪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함께 마리안나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두 여성은 '온전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털어내고 서로의 존재를 응시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지탱해오던 가족이란 시스템이 붕괴한 후 마주하게 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스프링. 376쪽.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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