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가 공급 부족에 따른 주거비 폭등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과거 강력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부동산 시장의 고삐를 죄었던 인물들이 새삼 재조명받고 있다. '시장 파괴자'라는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주거 정의'라는 목표를 향해 직진했던 그들의 행보는 '불패'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우리나라 집값 문제의 해법과도 맞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스웨덴 '공급확대' 독일 '세입자보호' 오스트리아 '부자과세' 프랑스 '공공주택'
집값 안정화 정책의 성공 사례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인물은 북유럽 복지 모델의 설계자로 불리는 고(故) '타게 에를란데르' 전 스웨덴 총리다. 1946년부터 1969년까지 23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스웨덴 내에서 역대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운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스웨덴식 복지 국가의 청사진인 '국민의 집(Folkhemmet)'을 실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불거진 서민들의 주거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 번영도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주택 공급 정책을 펼쳤다.
에를란데르 전 총리가 내놓은 공급 정책은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밀리언 프로그램(Million Programme)'이었다. 이 정책은 1965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10만 가구씩, 총 100만 가구의 현대식 주택을 전국에 건설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처음 이 계획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스웨덴 여론 안팎에선 "인구 800만명 수준이던 스웨덴의 국력을 고려할 때 현실성 없는 무모한 도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자체에 저금리 융자를 제공하고 조립식 공법(Prefabrication)을 전격 도입해 건설 속도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하며 계획을 현실화했다.
매년 공급 물량이 쏟아내는 정책 덕분에 시행 후 얼마 되지 않아 스웨덴 내 만성적 주택 부족 문제가 단숨에 해소됐다. 또 최신 설비를 갖춘 표준화된 주택이 보급되면서 국민 전반의 주거 질이 상향평준화되기도 했다. 특히 국가가 토지 수용권과 공급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구조 덕에 민간 투기 세력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이는 수십 년간 스웨덴 주택 가격이 실물 경제 흐름 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결정적 토대가 됐다.
독일에도 집값 안정화를 실현시킨 '철의 군주'가 존재한다. 주택 공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기존 주택의 가격을 통제하는 시스템 구축이라는 교훈을 남긴 고(故) '구스타프 하이네만' 전 독일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독일의 제3대 연방대통령을 지낸 그는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부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극심한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의 공공성을 법적 체계로 정립하는 것을 1순위로 삼았다.
특히 주거권이 헌법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다고 보고 집주인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법적 방어벽을 설계했다. 대표적인 세입자 보조 정책으론 집주인이 자의적으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도록 설계된 '비교 임대료 제도(Mietspiegel)'가 꼽힌다. 이 제도는 지자체가 해당 지역의 표준 임대료를 산정해 공표하고 이를 초과하는 인상 시도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오늘날 독일이 유럽 내에서 자가 점유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정적인 임대차 시장을 유지하는 비결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 내에는 공공주택을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도시모델'로 승격시켜 집값의 하향평준화를 유도한 인물도 있었다. 주인공은 고(故) 칼 제이츠 전 오스트리아 빈 시장이다. 1923년부터 1934년까지 빈 시장을 지낸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도심 슬럼화와 주거비 폭등 문제가 겹치자 '사회적 주택'이라는 급진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노동자 계층의 주거권 확보가 도시 재생의 핵심이라는 판단 하에 국가적 재정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대규모 공공 주거 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제이츠 전 시장이 추진한 정책의 핵심이자 가장 혁신적인 승부수로는 '사치세' 도입이 꼽힌다. 그는 일반 서민의 생필품이 아닌 고가음식, 호텔, 하인고용, 경주마, 샴페인 등 상류층의 전유물에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부과해 막대한 공공주택 기금을 조성했다. 당시 평가액 기준 상위 0.5%의 호화 주택에는 연간 유지 비용의 약 45%를 세금을 거둬들였다. 사치세를 통해 확보된 재원은 '칼 마르크스 호프'와 같은 거대 공동주택 단지를 건설에 재투입됐다. 노동자의 궁전으로 불리는 '칼 마르크스 호프'는 단일 주거 건물로는 세계 최장인 1.1km에 달하는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며 건물 내에는 유치원, 도서관, 병원 등 공공 인프라까지 갖춰져 있다. 임대료 수준은 빈 평균 시세의 절반에 불과하다.
'유럽의 심장부'로 불리는 파리에서는 안 이달고 시장 주도 하에 집값 안정화 정책이 한창 추진 중이다. 스페인 이민자 출신으로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된 그는 "파리는 모든 시민의 것"이라는 신념 아래 도심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2030년까지 파리 시내 주택의 35%(공공주택 25%, 중산층용 사회주택 10%)를 국영 및 사회주택으로 확보하겠다는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목표 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이달고 시장이 가장 집중하는 정책은 부유층 밀집 지역의 민간 건물을 시 예산으로 직접 매입해 서민용 사회주택으로 개조하는 '사회적 혼합(Social Mix)'이다. 특정 지역이 부유층만의 공간이 되는 것을 법적으로 방지하고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도심 내에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동네 품격이 떨어진다"는 상류층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공공 지분을 극대화해 도심의 활력을 유지하는 그의 정책은 전 세계 대도시 행정가들에게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 '자가비율 90%' 호주 '주거펀드' 뉴질랜드 '외국인 투자 금지'
아시아에도 국가가 시장을 완벽하게 통제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킨 파격적인 정책 모델이 존재한다. '집이 있어야 국민이 국가를 지킨다'는 철학을 내세워 주거 혁명을 이끈 고(故) 리콴유(Lee Kuan Yew) 전 싱가포르 총리, 실무 주역인 림 킴 산(Lim Kim San) 전 주택개발청(HDB) 청장이 대표적 사례다. 리콴유 전 총리는 1960년 주택개발청(HDB)을 설립하고 토지수용법을 통해 국가가 땅의 90% 이상을 소유하는 토지 국유화 정책을 펼쳤다.
정부는 확보된 땅에 아파트를 지어 국민에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분양했으며 중앙적립기금(CPF)이라는 강제 저축 제도를 활용해 서민들이 월급의 일부로 집값을 장기 분할 상환할 수 있는 금융 사다리도 마련했다.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리콴유 전 총리의 철학에 따라 외부 자본에 의한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외국인이 주택을 취득할 때 매매가의 최고 60%에 달하는 취득세를 부과하는 등 징벌적 규제로 투기 수요를 원천 차단했다. 덕분에 싱가포르는 전 국민의 약 80%가 정부가 공급한 HDB 아파트에 거주하고 자가 점유율 90% 수준에 육박하는 '주거 복지 천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집값 안정화를 실현시킨 주역들은 지금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현 호주 총리도 그 중 하나다. 공공주택에 거주하며 청소부인 홀어머니 아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주거불안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주거복지 실현에 만전을 기했다. 앨버니지 총리가 주도한 핵심 주거 정책 중 하나는 100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호주 주택 미래 펀드(Housing Australia Future Fund, HAFF)' 설립이다.
이 정책은 정부가 조성한 거대 기금을 운용해 발생한 수익을 매년 사회주택 및 저렴한 주택 건설에 영구적으로 재투자하는 '지속 가능한 금융 모델'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권의 향방이나 경기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매년 안정적인 주택 공급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무한 동력을 마련한다는 게 정책의 취지다. 해당 정책은 가정폭력 피해자나 고령층 등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전용 주택을 우선 공급함으로써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주택 기능을 극대화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질랜드에도 집값 안정화를 위한 파격적인 정책 사례가 존재한다.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 필 트와이어퍼드 전 뉴질랜드 주택·도시개발 장관은 2018년 재임 당시 '외국인 투자 개정안(Overseas Investment Amendment Act)' 통과를 주도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법안은 외국인이 뉴질랜드 내 기존 주택을 구매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개정안 통과 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매집 행위에 급제동이 걸렸고 투기 거품 또한 점차 사라졌다. 해당 법안은 외국인의 자산증식 수단이 된 부동산을 자국민의 실거주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 효과를 낳은 현대적 규제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의 집값 안정화 정책에 대해 시장의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주택난 앞에서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의 부동산 정책들은 결국 시장의 논리로만 풀 수 없는 주거난 앞에서 국가가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며 "서로 다른 사회적·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주거는 기본권'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나라의 부동산 정책 모델을 우리에게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특수한 시장 구조와 가구 형태를 고려해 장기적인 주거 안정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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