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항공 여객·화물 수요 증가가 이어지면서 항공 MRO(유지·보수·정비) 업계가 이른바 ‘슈퍼사이클’을 맞았지만, 정비사 부족으로 일선 현장에서는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비 인력 확보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정부의 MRO 허브 전략이 ‘껍데기 호황’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항공 MRO 인력 부족 가속
11일 보잉이 매년 발표하는 ‘정비사 수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상업용 항공기 운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는 204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71만명의 신규 정비사가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분석기관 올리버와이먼은 202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 정비사 수가 항공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2028년에는 정비사 공급이 필요한 인원보다 약 20% 부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여객 수요와 항공기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정비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지만, 숙련된 정비 인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일명 ‘성장 속 인력 병목’이 장기 과제가 될 것으로 지적했다.
현재 정비사 부족 사태는 국내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국내 대형 항공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해 온 한 현직 정비사에 따르면, 운항 편수는 코로나19 앤데믹 이후 빠르게 회복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중정비 인력과 고경력 엔지니어는 충분히 복원되지 못한 상태다. 특히 라인 정비와 달리 동체 구조 수리나 기체 개조 같은 작업은 장기간 현장 경험이 필요해 단기간 충원으로는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공기를 띄우는 정비와 항공기를 분해해 구조를 바꾸는 정비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며 “라인 정비는 비교적 빠르게 인력을 투입할 수 있지만, 중정비와 구조 수리는 최소 수년 이상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신규 채용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작업을 맡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숙련 인력 부족, 구조적 병목으로
또 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는 인력’의 부족이다. 항공기 중정비는 단순 작업 인력만으로 수행되지 않는다. 구조 설계를 검토하고 제작사 기준에 맞춰 수리 방식을 승인받는 엔지니어, 특수 공구와 장비를 설계·관리하는 기술 인력, 전자·항공전자 분야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지원 인력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채 작업자 중심으로만 인력 수급이 논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직 정비사는 “겉으로는 정비사가 늘어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중정비를 주도할 수 있는 고경력 인력은 제한적”이라며 “행가와 장비가 있어도 이를 운영할 숙련 인력이 부족하면 항공기를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정비 인력의 이탈도 부담 요인이다. 현직 정비사는 “항공기를 띄우고 내리는 라인 정비는 비교적 빨리 숙련될 수 있지만, 여객기를 화물기로 바꾸고 동체를 자르고 붙이는 구조 정비는 5년, 10년 이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개조 정비가 고난도 작업이지만 임금·평가에서 라인 정비보다 유리하지 않아, 젊은 정비사들이 “굳이 힘든 구조 정비로 가지 않고 라인 정비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신규 MRO 시설이나 화물기 개조 라인을 구축하려고 해도 필요한 숙련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구조·개조 분야 인력 저변이 점차 좁아지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항공정비 인력 부족은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집계한 항공종사자 자격증명 통계에 따르면, 비행기 부문 항공정비사 자격 신규 취득 인원은 2021년 1496명에서 2023년 702명으로 2년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같은 통계에서 2024년 3분기 기준 전체 항공정비사 자격 보유자는 비행기 2만1991명, 헬리콥터 2139명, 전자·전기·계기 169명, 기타 594명 등 약 2만5000명 수준으로 집계되지만, 신규 유입 규모를 보면 정비 인력 풀 확장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된 모습이다.
◇ 시설 확충보다 인력 체계 관건
한편 정부는 ‘제4차 항공정책 기본계획(2025~2029)’에서 항공 MRO를 미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해외에 맡겨온 중정비와 엔진·부품 정비를 국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공항 인근 정비 인프라를 확충하고, 전문 인력 양성과 실무 중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비 품질과 안전관리 체계도 함께 고도화해 단순 물량 확대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2030년까지 MRO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과 달리, 최근 항공정비사 자격 신규 취득 인원은 2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목표와 인력 공급 추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구체적 해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다.
정비 현장에서는 시설을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어떤 정비를 국내에서 수행할지에 대한 전략과 그에 맞는 인력·설비 설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비사는 “해외 물량을 단순히 국내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작업 인력만 늘려서는 병목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설계·설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와 지원 인력이 함께 갖춰져야 하고, 산업 정책과 교육 정책, 노동 정책이 맞물리지 않으면 MRO 경쟁력은 쉽게 확보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항공 수요는 이미 팬데믹 이전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를 떠받칠 정비 인력 기반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항공 MRO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시설 투자도 중요하지만, 인력 구조와 보상 체계, 장기 양성 시스템에 대한 실질적인 재설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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